지난 8일 한국노총은 하반기 노동관계의 최대 현안인 복수노조와 전임자 문제에 관한 특별기자회견을 열었다. 다음날 각종 언론에서는 주요 머리기사로 다루면서 객관적인 사실 전달보다는 각자의 입장에 기자회견의 취지를 다양하게 풀이했다.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자리에 있었던 필자로서는 장석춘 위원장의 ‘노사정 대표자회의 공식 제의’를 매우 의미 있게 받아들였다. 수개월 후 대표자회의의 제안이 또 하나의 사회적 대화기구로서 매우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기대하면서 제안의 의미를 짚어 보고자 한다.

우선 그동안 우리는 각자 이익 주체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노사관계 제도의 변경이나 국가적 위기 상황의 극복 과정에서 사회적 대화기구가 이뤄 낸 결과를 직접 경험해 왔다. 가까이는 올해 초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민정 합의가 있었다.

그 이전에는 조기에 IMF 외환위기 체제를 극복한 원동력이 노사정 간의 합의였다는 데 이론이 없다. 이에 반해 정부나 의회가 힘으로 일방적으로 추진할 경우 그 결과는 언제나 불행했다. 1996년 연말 날치기로 통과된 노동관계법은 불과 3개월 만에 재개정됐고, 이는 결국 당시 정권의 지지율 하락과 정권교체로 이어졌다. 이후 정권은 최소한 노동관계법만은 국회법에 정한 절차를 지키고 있다.

다음으로 노사정 대표자회의에는 노사 이해관계 당사자가 참여하게 되므로 절차적 정당성도 당연히 확보된다. 이해관계의 1차 당사자는 노동조합과 사용자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복수노조와 전임자 논의는 주로 제3자인 정부나 의회가 주도해 왔다.

물론 정부가 우수한 행정력을 바탕으로 완벽한 제도를 만들거나 의회가 민의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했다면 위 주장은 설득력이 없을 것이나, 아쉽게도 그렇지 않아 보인다. 예를 들어 올해 7월 시행된 비정규직법 사용기간 제한 시행 과정에서 현 정부의 능력과 의회의 역할은 이미 검증받았다.

지난해 말부터 정부는 ‘100만 해고 대란설’을 운운했고 의회는 아무런 논의 과정도 없이 정부를 따라 비정규직법 개정을 추진했다. 피해를 입은 비정규 노동자들의 현실은 안타깝지만, 수개월이 지났건만 대란설은 간 곳이 없다. 대란설의 논의 과정에 대한 공통의 의견은 정부와 의회가 현장을 전혀 알지 못하면서 탁상에서 정책을 추진했다는 비판이었다.

이러한 탁상행정에 맞서 양대노총이 보여 준 노력은 평가받을 만하다. 산하 사업장내 비정규 노동자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해 정부의 주장이 허위임을 객관적 증거로 반박한 것은 물론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 부당하게 계약해지를 당한 비정규 노동자를 위한 구조에 힘쓰고 있다.

복수노조와 전임자 문제는 비정규직법보다 훨씬 더 어려운 사안으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13년간의 유예가 이를 가장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해관계 당사자가 논의의 중심에 있어야 할 것이고, 정부와 의회에는 공정한 논의의 틀을 만들어야 하는 책임이 있다.

마지막으로 이번 대표자회의에는 노동계 전체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한국노총의 기자회견에 대해 민주노총에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은 반가운 일이다.

과거 비정규직법, 노사관계선진화입법 논의 과정에서 민주노총의 불참으로 양 제도의 민주적 정당성에 논란이 있어 왔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해관계 당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응원이 필요한 시기로 생각된다. 그리고 회의의 방향은 전체 노동자와 조합원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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