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 여름, 정부는 ‘불개입, 노사자율 해결’을 원칙으로 내세웠다. 정부는 78일간 노사분규가 진행됨에도 사실상 손을 놓았다. 노동계는 정부가 ‘기획 파산’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고, 사용자측마저 정부의 외면에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그러면서 노조원을 압박하고, 농성장 이탈을 유도하는 ‘토끼몰이식’ 경찰력 투입은 여전했다. 정부 차원의 중재와 조정이 사라진 상황에서 경찰력을 앞세운 힘에 의한 해결방식만 강요된 것이다. 결국 경찰의 압박 속에 노사는 타협했다. 물론 쌍용차가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여부는 미지수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공공기관에 대해서는 다른 태도를 취했다. 민간기업에는 ‘불개입과 노사자율’을 외치면서 공공기관에는 ‘공세적 개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정부 부처가 총동원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도 ‘공기업 선진화’라는 미명하에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정부는 공공기관 직원의 호봉을 폐지하고 차등 성과급제를 중심으로 임금체계 개편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당초 기획재정부는 7일 ‘공공기관 연봉제 표준 모델안’을 발표하려 했으나, 노동계의 반발로 발표를 유보했다. 노사가 자율로 결정해야 할 임금협약에 대한 정부의 개입은 사실상 불법이다. 우려스러운 점은 정부의 불법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공공기관의 단체협약 특정항목을 일일이 지목하고 개정을 요구해 온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기관장 경영계획서 이행실적 평가지침’, ‘공공기관 단체협약 개정 현황 모니터링 계획’이라는 제목의 지침과 계획은 그렇다고 치자.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에 월 단위로 단체협약 개정 현황을 점검해 제출하라고 압박까지 했다. 정부가 법적 시비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식 지침’을 떳떳하게 공공기관에 내려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체협약을 개정하지 못한 공공기관장은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정부가 공공기관 노사의 갈등을 부채질하고 있는 셈이다.

노동계는 기재부의 공세적 개입의 논리적 근거를 노동부가 제공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전문성이 없는 기재부 산하 공공기관의 단체협약을 분석해 개정사항을 제안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의 회계와 직무를 감찰해야 할 감사원마저 노사관계 감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감사원은 공공기관에 ‘선진화 점검표’를 내려 보내 이행상황을 점검했는데, 여기에는 임금·단체협약과 복리후생제도가 포함됐다. 독립된 헌법기관인 감사원이 노사관계에 불법적으로 개입하는 표적감사에 나섰다고 하니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공공기관 노사관계에 불법적으로 개입하다 보니 정부출연연구기관장이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부정하는 막말마저 하지 않는가. “노동3권을 헌법에서 빼는 것이 소신”이라고 말한 박기성 노동연구원장은 정부의 기류를 대변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한국노총과 한나라당이 맺은 공기업 경영평가 관련 합의를 무시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양측은 협약의 노사자치 존중, 경영평가시 노동계 의견수렴 등에 합의했지만 정부는 이를 철저히 무시했다.

공공기관은 설립 목적상 국민들에게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다. 정부는 국민을 대신해 공공기관이 공공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는지 감독하는 게 임무다. 그러면서 공공기관의 경영 자율성은 보장해야 한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규정된 책임경영체제와 자율적 운영규정이 존중돼야 한다는 것이다. 낙하산 인사와 코드정책 탓에 정권 핵심실세의 ‘비리와 비자금 창고’로 전락했던 과거 정부의 공공기관으로 후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공공기관 노사의 임금·단체협약은 헌법에 명시된 노동3권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다.

만일 정부가 이를 외면하고 불법적으로 개입할 생각이라면, 아예 공공기관 사용자를 대신해 교섭장에 나와야 한다. 노동계도 ‘노정 직접교섭’을 요구하고 있지 않는가. 이런 요구를 외면하면서 정부가 불법적·공세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이명박 정부가 그토록 강조해 온 '법과 원칙'과 '노사자율'을 '빛 좋은 개살구'로 만드는 것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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