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은 공무원이 기존의 공무상 재해로 인한 상병(디스크)이 재발해 고통을 호소하며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자살한 사건에 대해 '공무원연금법'상의 유족보상금을 지급받지 못한다고 판결했다. 일반 근로자들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법')에 의해 업무상재해를 인정받는 것과는 달리 공무원은 '공무원연금법'에 의해 공무상재해를 인정받는다. 산재법과는 다른 공무원연금법의 공무상재해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공무원연금법상 공무상재해의 정의와 인정기준

산재법이 제37조에서 업무상재해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의한 것과 달리, 공무원연금법에서는 공무상재해에 대한 정의가 모호하다. 산재법에서는 업무상재해를 크게 업무상 사고와 업무상 질병으로 나누고, 기타 사고나 질병으로 분류되지 않는 재해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공무원연금법은 제25조에서 “공무로 인한 질병·부상과 재해에 대해 단기급여를 지급한다”는 규정이 있을 뿐 각각의 정의는 명시하지 않았다. 단지 시행규칙에 공무상질병과 공무상사고의 인정기준을 제시해놓았을 뿐이다. 또한 그 인정기준도 원칙이 제시돼 있지 않고 각각의 경우 인정되는 경우와 불인정되는 경우를 예시적으로 나열해 놓았다. 이를 종합해보면 공무상재해는 공무상의 사유로 질병이 발생(규칙 제11조)하거나 공무수행 중의 사고에 대해 인정하고 있다. 다만 공무수행성(업무를 수행하던 중에 발생했는지 여부)은 있으나 공무기인성(업무와 질병과의 인과관계)이 없는 경우 공무수행 중이라도 불인정될 수 있다(규칙 제12조). 반대로 공무수행성은 없으나 공무기인성이 있는 경우 공무수행 중이 아니더라도 인정될 수 있다(규칙 제13조). 이와 관련한 법령의 내용은 <표>와 같다.



공무원연금법 시행규칙
제11조 (공무상 질병) ① 공무원이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사유로 인하여 새로이 질병이 발생하거나 기존의 질병이 현저하게 악화된 경우에는 이를 공무상 질병으로 본다.(중략)
- 공무수행 중에 업무량의 증가, 초과근무 등으로 육체적ㆍ정신적 과로가 유발되어 발생한 질병 또는 현저하게 악화된 질병
② 공무상질병은 공무수행과 그 질병의 발생ㆍ악화사유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③ 공무상질병의 치료과정에서 그 질병이 주된 원인이 되어 합병증이 유발되었거나 공무수행으로 상당기간 정신적ㆍ육체적 피로상태가 계속되어 신체적 저항력이 감소됨으로써 합병증이 유발된 경우 그 합병증은 공무상 질병으로 본다. 다만, 합병증이 기초질환이나 체질적인 원인에 의하여 자연적으로 유발되었거나 악화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④ 공무상질병에 대한 결정에 있어서는 공무원 또는 공무원이었던 자의 업무특성, 성별, 연령, 체질, 평소의 건강상태, 기존의 질병유무, 병가, 휴직, 퇴직 등을 참작하여야 한다.

제12조 (공무수행 중의 사고로 인한 부상 또는 사망) 공무원이 공무수행 중에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사고로 인하여 부상 또는 사망한 경우에는 이를 공무상부상 또는 사망으로 보지 아니한다.
1. 공무수행과 상당한 인과관계가 없는 상태에서 발생한 사고
2. 공무원의 고의에 의하여 발생한 사고
3. 공무원의 사적 행위에 의하여 발생한 사고
4. 근무지를 무단으로 이탈한 상태에서 발생한 사고
5. 공무수행 중 사적 원인에 의한 폭력 또는 장난에 의하여 발생한 사고
6. 정상적인 출장경로를 이탈하거나 출장목적 외의 사유에 의하여 발생한 사고
7. 공무원 상호간의 사적인 친목행사 또는 취미활동으로 인하여 발생한 사고
8. 공무와 인과관계가 없는 타인의 원한 등에 의하여 발생한 사고

제13조 (근무시간외의 사고로 인한 부상 또는 사망) 공무원이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사고로 인하여 부상 또는 사망한 경우에는 이를 공무상부상 또는 사망으로 본다.
1. 공무원이 근무시작전ㆍ근무종료 후 또는 휴식시간에 공무에 필요한 준비행위ㆍ정리행위를 하거나 소속기관의 회식ㆍ회합 등 공적행사를 하다가 발생한 사고
2. 공무원이 공무수행을 위하여 입주가 필요하거나 의무화되어 있는 시설 등의 불완전 또는 시설관리의 부주의로 인하여 발생한 사고

자해행위의 공무상재해 판단기준

산재법에서는 업무상재해를 업무상사고와 업무상질병으로 나누어 기준을 제시하고 있으나,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자해행위의 경우 사고나 질병 중 어느 하나로 분류하지 않고 업무상재해로 인정한다. 따라서 자해행위가 사고에 해당하는지 질병에 해당하는지 구분할 필요 없이 업무상의 사유가 입증되면 업무상재해로 인정된다. 이것은 법에 업무상사고와 업무상질병을 아우르는 상위의 개념인 업무상재해를 정의해 놓았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공무원연금법에서는 공무상 질병과 공무상 사고를 포함하는 상위의 개념이 돼야 할 공무상재해에 대한 정의규정이 없다. 법 제25조에서 “공무로 인한 질병·부상과 재해에 대하여 단기급여를 지급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공무상질병·부상과 재해 간의 상호개념이 모호하다. 본 사건에서는 유족보상금 청구와 관련한 제61조를 참고해야 하는데(위의 표 참고), 유족보상금은 공무원이 공무상 질병 또는 부상으로 인해 재직 중에 사망하거나, 퇴직 후 3년 이내에 그 질병 또는 부상으로 인해 사망한 때에는 그 유족에게 유족보상금을 지급한다고 해 ‘재해’라는 개념은 빠져있고 공무상 ‘질병’ 또는 ‘부상’을 요건으로 하고 있다. 법원은 이 사건 망인의 자해행위를 공무원연금법 시행규칙 제12조 [공무수행 중의 사고로 인한 부상 또는 사망]의 불인정기준에 비추어 판단했다. 이 조항은 공무수행 중의 사고는 공무수행성이 인정되면 공무기인성은 이로부터 추정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공무기인성을 추정할 수 없는 경우를 예시한 것이다.

그런데 망인이 자해행위를 한 것은 근무시간 외에 이루어진 것으로 공무수행 중이었다고 할 수 없다. 사고라는 것은 뜻밖에 일어난 사건이나 탈을 의미하는 것인데 판결문에서도 언급됐듯이 '자살의 결의 및 실행'이라는 망인의 자해행위를 사고라고 볼 수 있는지 확실치 않다. 망인의 자살원인이 된 우울증이 기존의 공무상재해로 인정받은 상병의 재발로 인한 것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공무기인성과 관련한 시행규칙 제11조에 의한 공무상 재해의 인정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고, 단지 공무수행 중의 사고와 공무기인성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공무상사고의 불인정 기준)를 예시한 시행규칙 제12조에 의해 판단한 법원의 태도에 아쉬움이 남는다.

우울정도의 판단 및 공무와 상당인과관계

판례는 “망인의 우울증세가 자살의 위험성이 높은 중증 우울증으로 진단되지는 않았고, 이와 같은 우울증세가 당시 망인의 신체적 질환으로 인한 것인지도 분명하지 않으며, 달리 자살을 예상할 만한 자살 사고 등의 언급이 있었다거나 자살 기도․계획 등의 소견은 없었다”고 밝혔다. 또 “망인이 공무로 인한 종전 상병의 재발에 대한 극심한 고통과 절망상태에서 우울증이 발병했다거나, 그 우울증으로 인해 초래된 심신상실 내지 정신착란 상태에서 자살했다고 보기 어렵고, 공무와 망인의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망인이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인해 통원치료를 계속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비록 의사의 소견에서 자살을 예상할 수 없다고 했더라도 결과적으로 망인이 자살에까지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중증 우울증으로 진단되지 않았다는 말만 되풀이한 부분은 석연치가 않다. 또 망인이 평소 ”아픈 것 때문에 진급도 포기했는데 요즘 같으면 죽고 싶다“고 호소했고, 고통으로 인해 직장으로 복귀해서도 직장생활을 무난히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스트레스도 심한 상태라고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망인의 사망과 공무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은 부분에도 의문이 남는다.

공무원 재해보상, 법과 제도의 보완책 마련이 필요

본 판례에서는 유족보상금 부지급처분 취소청구가 기각됐다. 필자는 이러한 판정의 결과에 대한 반론보다는 판단의 과정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현재로서는 공무원연금법만으로 공무상재해 판단에 대한 원칙이 명확하지 않고, 최근 들어 증가하고 있는 과로사, 스트레스로 인한 자해행위 등에 대한 판단기준이 언급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또한 공무원의 재해보상 신청절차는 해당 공무원이 소속된 부처를 통해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 제출하도록 돼 있는데, 공무원의 순환보직 특성상 재해보상 업무만을 담당하는 공무원이 부재해 소속기관의 판단에 전문성이 결여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따라서 공무원연금법에서 공무상재해의 정의와 인정기준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가 필요하고, 과로사나 자해행위에 대한 실질적 판단근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공무상재해 업무를 담당하는 전문공무원을 배치하거나 소속 공무원에게 직무보수교육을 더욱 강화하는 등의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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