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각처리와 관련해 불법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감사관님 끝까지 조사해 저의 결백을 증명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다음부터 감사할 때는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시고 결정하십시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은 진실입니다. 도둑놈이다 판단하고 감사하지 마십시오.”

지난 2007년 9월 한국철도공사가 불용품 관련 처리실태 특별감사를 대대적으로 벌였다. 그해 9월14일 오후 1시10분 최아무개씨는 감사관으로부터 불용품 매각관련 서류 제출을 요구받고 감사장을 나온 후 연락이 두절됐다. 그로부터 나흘 뒤 그는 대전 송촌동의 아파트 뒤편 야산에서 목매 숨진 채 발견됐다. 유서에는 결백을 믿어 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감사를 받던 중 결백을 증명하려 자살했다면 업무상재해에 해당될까.

잃어버린 서류 소재 추궁받은 후 자살

최씨는 91년 1월 당시 대전지방철도청 청주보선사무소 보선원으로 입사했다. 2000년부터 대전지사 시설팀에서 물품관리원으로 일하다, 2007년 대전 신탄진시설사업소 시설관리원으로 발령받았다.
물품관리원은 물품의 출납을 담당하는데, 레일·침목 등을 본사에서 조달받아 사용하거나 철거 또는 보관하는 업무를 맡는다. 보관 중인 물품(불용품) 매각도 수행하고, 선로 및 선로구조물·건널목 설비의 유지보수·선로보수 일도 한다.

최씨는 입사 이래 3번에 걸쳐 표창을 받았고, 2005년 철도노조 지부장으로 활동한 적도 있다. 내성적이지만 꼼꼼한 성격이며 동료들과 원만하게 지냈다. 2007년 6월 철도공사 전남지사 종합감사에서 불용품 불법매각 사례가 발견되면서 동일 사례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가 실시됐다. 최씨가 근무하던 대전지사에도 2003년 이후 불용품 등 고철매각처리 관련 자료를 제출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최씨가 소속된 부서도 감사 준비에 착수했다. 그런데 과거 최씨가 처리했던 불용품 매각서류와 물품관리카드 일부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최씨는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잠도 제대로 자지 않은 채 없어진 서류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찾지 못했다. 감사관은 최씨를 상대로 서류의 소재파악을 위한 면담을 진행했고, 최씨는 그 이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극심한 스트레스 인정되지만, 자살과는 직접 관련없어

최씨의 부인 이아무개씨는 남편의 자살이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했다. 공단은 자살할 당시 최씨의 상태가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이 현저히 저하된 것으로 볼 만한 근거가 없다며 이를 거부했다. 이씨는 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최씨가 업무로 인해 정신적 부담과 스트레스를 받았고 적응장애 증상도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 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특별감사 3일 만에 적응장애가 나타난 데다, 다른 동료들과 비교했을 때 최씨가 극심한 우울증에 이를 정도로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업무와 자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없다고 판결했다.

이 사건에서 근로복지공단 자문의사협의회는 “업무상 스트레스는 인정되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자살하는 것은 보편적으로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고, 재해로 인한 정신과 치료를 받은 과거력이 없어 업무상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소견을 제출했다. 감사 도중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로 보기에는 보편타당한 근거가 없으며, 개인 성향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장은 “특별감사가 실시된 이후 3일 정도 나타난 최씨의 증상은 미국 정신의학회 우울증 진단기준(DSM-Ⅳ)의 2주 이상 지속되는 증상기간에 합당하지 않다”며 “우울증을 완전 배제할 수 없지만 극심한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으로 발생한 적응장애에 해당한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의 약 4.3%가 자살에 성공하고 우울증상을 보이는 사람의 40%가 자살을 시도한다는 보고가 있다.

[관련판례]
대전지방법원 판결 2009구단459 유족급여및 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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