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세 살부터 화물차를 운전한 박아무개(51)씨는 요즘 몸이 성하지 않다. 남들보다 시력이 좋았던 그는 화물차를 운전한 지 10년도 안 돼 시력이 급격히 나빠졌다. 야간운행 탓이다. 한 달에 일요일을 빼고는 오전 8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 14시간을 꼬박 일한다. 낙천적인 성격인 그는 올해 1월 초 담배를 끊었다가 열흘 만에 다시 담배를 피웠다. 차주와의 관계 탓에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다.

29일 주유를 했다는 박씨는 “1리터당 1천347원으로 지난해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지만 운송료는 지난해 6월 파업 전보다 더 떨어졌다”고 토로했다. 요즘 들어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박씨는 최근 생전 찾지 않던 대형병원을 찾아 건강검진을 받았다. 콧속에 혹이 생겼다고 했다. 박씨는 “몸은 아프지만 내년에 졸업하는 딸이 취직할 때까지는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운전대를 놓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심야운행을 많이 하는 화물운수노동자일수록 사고율이 높아진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책임연구원 윤간우)는 지난 3월10일부터 열흘간 진행한 화물운수노동자 대상 건강검진·안전보건 실태조사 최종 결과 보고서를 최근 발표했다. 모두 799명의 노동자가 설문조사에 응했다.

 


3년 전보다 노동조건 더 나빠져

3년 전 화물운수노동자들에 대한 실태조사와 비교한 결과, 노동조건은 더 열악해진 것으로 드러났다. 화물노동자의 한 달 평균 운행 거리는 성수기 때 9천798킬로미터, 비수기때 6천926킬로미터로 2006년 9천305킬로미터(성수기)·6천848킬로미터(비성수기)보다 오히려 늘었다. 1일 평균 근무 시간은 성수기 때 13.5시간, 비성수기 때 11.9시간으로 2006년(성수기 14.4시간·비성수기 12.8시간)보다는 약간 줄었다. 이에 대해 보고서는 “한 달 평균 운행거리 증가와 1일 평균 근무시간 감소로 효율성이 증대돼 노동조건이 나아진 것으로 판단할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화물노동자의 심야운행 증가에 따른 결과”라고 분석했다.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의 심야운행 횟수가 늘어난 것이 눈에 띄게 두드러진다. 심야운행 횟수는 2006년 당시 한 달 평균 9.7일이었지만 올해는 14.3일로 5일이나 많아졌다. 심야운행 횟수가 한 달 평균 15일 이상이라는 응답은 2006년 23.5%에서 올해 44.2%로 급격히 늘었다.

한국도로공사는 현재 심야시간에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10톤 이상 사업용 화물차량의 통행료를 할인해 주고 있다. 교통량을 분산시키고 물류비를 줄이기 위한 조치라고 밝히고 있지만 노동자의 건강에는 역효과가 나고 있는 것이다.
심야운행 증가는 연속근무일수 증가로 이어진다. 평균 5일 이상 귀가하지 않고 숙박을 포함해 차량에서 지내는 경우가 2006년 35%에서 2009년 63%로 증가했다.

스트레스·심야운행 사고로 이어져

화물운수노동자들에게 가장 많이 발생하는 안전보건 사고는 역시 운행 중 발생하는 교통사고다. 지난해 교통사고를 겪었는지 여부를 물어본 결과, 23.1%가 ‘그렇다’고 답했다. 특징적인 것은 스트레스 수준에 따라 교통사고 경험률이 달랐다는 점이다. 사고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노동자 가운데 잠재적 스트레스군과 고위험군의 사고경험률(28.1%)이 정상이거나 낮은 집단(21.2%)보다 높았다. 또 하루 평균 운행시간이 11시간 이상인 노동자의 사고경험률(27.1%)이 11시간 미만인 노동자의 경험률(20.8%)보다 높았다. 한 달 평균 심야운행 횟수가 5일 미만인 경우 사고경험률은 17.5%, 5일~15일 미만 23.2%, 15일 이상 26.5%로 점점 증가했다.

노동자의 17.9%는 교통사고 외의 업무관련 사고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업무관련 사고의 대부분은 상·하차 작업 중에 발생하지만 의료비는 개인이 부담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화물운수노동자들은 업무의 특성상 사고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산재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정확한 산재통계조차 없는 상황이다. 운수산업노조 관계자는 “노동자들의 사고 사례와 함께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 자료를 수집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4명 중 3명은 건강검진 받아본 적 없어

또 화물운수노동자 4명 중 3명은 건강검진을 받아 본 적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화물운수노동자들은 암이나 심장질환·뇌혈관질환·위장관계질환 등에 많은 관심을 보였지만 △병원 갈 시간이 부족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 △특별한 증상이 없어서 등의 이유로 건강검진을 받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보고서는 “야간운행이 많고 연속된 근무로 도로와 주차장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 화물노동자에게 건강검진 수검률이 낮은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반면 미국의 경우 연방화물자동차안전국이 화물운전자의 건강상태가 교통사고 발생의 중요한 원인임을 인지해 화물운전자의 안전한 운행에 필요한 육체적·정신적 상태를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건강검진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화물노동자 전용 휴게소 늘려야

보고서는 “심야운행 횟수가 많아지면 피로를 증가시키고 장기적으로는 자율신경계 기능을 감소시켜 뇌심혈관계 질환의 발생 위험을 증가시킨다”며 “야간 운행을 제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윤간우 책임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안전보건이 시민의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에 화물노동자의 야간 운행 횟수를 제한하거나 야간 운행 중에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설 확보같은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경애 운수산업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은 “원칙적으로는 야간운전을 줄일 수 있게 해야하지만 물류산업 구조가 바뀌어야 가능한 상황”이라며 “야간 노동을 많이 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전용 휴게소를 늘리도록 화물사업자단체와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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