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의 과두정치

소수의 지배, 특권적 파벌이 전제권력을 행사하는 정치형태를 ‘과두정치’ 또는 ‘과두제’라고 했다. 문자 그대로 寡(적을 과)頭(머리 두)制(억제할 제) 즉, 적은 수의 머리가 다수를 억제한다는 뜻이다.

인정하기 싫을지라도 현재 민주노조운동의 모습은 이를 닮아 있다. 민주노총의 지도부는 노동운동의 특정세력들이 번갈아 가면서 맡아 왔다. 민주노총 같은 전국조직의 지도부가 되려면 전국적인 조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전국적 조직에 속하지 않는다면 민주노총의 지도부가 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산하의 산별노조나 산별연맹, 대공장노조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현장조직의 조직원이 아니면 집행부는 물론이고 대의원도 되기 어렵다. 대공장의 대부분은 한 지역이 아니라 전국에 생산공장과 판매, A/S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국적인 조직망을 가져야 집행부가 될 수 있다. 대의원의 경우 50~200명 정도의 조합원을 상대로 선거를 하기 때문에 특정한 조직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도 대의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현장조직에 가입된 사람들은 조직적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유리한 위치에 있다.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이라고 해도 발전하다 보면 조직을 운영하는 관료제가 생기고, 소수에 의해 권력이 독점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노동조합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다른 모든 조직들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노동운동에서 계파정치가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이 옳지 않은 비판일 수도 있다. 국가·정당·회사는 물론이고 심지어 친목조직에서도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노동조합의 문제가 모두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민주노조운동이 보여 주는 과두제의 모습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첫째로 조합원이나 노동자 전체의 이익이 아닌 개인이나 계파의 이익을 추구한다.
독일의 유명한 정치사회학자인 로베르트 미헬스는 자발적 결사체의 집행부가 구성원들의 이해와 복리를 위해 움직이기보다는 자기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현상이 동서고금에 나타난다는 이른바 ‘과두제의 철칙(Iron Law of Oligarchy)’을 주장했다. 노동조합의 집행부가 취업을 대가로 금품을 받거나 각종 사안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면서 뇌물을 수수하는 등 노조의 비리가 잇따르는 것도 이런 현상의 하나다. 

둘째로 과두정치에는 결코 조합원의 의견이 정확히 반영되지 않는다.
과두정치가 이뤄지는 대의원대회나 각종 의결기관들의 의사결정은 그 회의에 참가하고 있는 파벌들의 충돌과 타협에 의해 결정된다. 소수라고 하더라도 일관되게 끝까지 주장을 고집할 경우 회의는 파행을 겪게 된다. 2005년 2월1일 폭력사태까지 갔던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는 과두정치에 의한 계파 간 충돌을 막을 장치가 없고 팽팽한 의견충돌을 해소할 다른 방법도 없음을 보여 주는 사례다.

셋째로 과두정치는 자신을 끊임없이 확대한다.
특정한 조직에 가입하지 않은 채 새로 당선된 현장간부가 상급단체의 회의에 참가할 경우 복잡한 논쟁을 이해하기 어렵다. 특정 조직에 가입해 있지 않으면 쟁점에 대한 상세한 정보와 이면에 깔린 각 계파조직들의 계산까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특정 조직에 가입하지 않았던 간부들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어느 조직에든 가입하게 된다. 몇 차례 현장에서 위원장을 했다고 해도, 사업장을 넘어 전국적 역할을 하려면 전국조직에 가입해야만 한다.  

과두정치를 하는 계파조직들은 대중적 지지를 확대하는 것보다 자기조직의 쪽수를 늘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야 대의원대회를 비롯한 각종 회의에서 자신의 의견을 잘 관철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상급단체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노동조합의 상근자를 채용하는 과정에서 노동운동을 해 나갈 인문학 소양이나 노동운동에 대한 평가와 과제에 대한 이해, 큰 문제가 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대한 견해를 묻고 이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집행부를 잡은 계파의 조직원을 발탁해 채용하는 경우가 많다. 계파에 의한 채용을 막기 위한 ‘공개채용의 원칙’은 지켜지지 않는다. 형식적으로 모집공고를 내고, 형식적으로 면접을 하는 것에 불과할 뿐 결과적으로는 자기 계파의 사람을 선택한다.

넷째로 ‘넓어지지 않고 높아지려는 현상’이 계속 나타난다.
몇몇 계파가 참여하는 의사결정 구조는 ‘선명성 경쟁’을 유발한다. 모든 정파들은 노동운동의 이념을 명분으로 활동한다. 그런데 현장에 밀착해 있을수록 선명성만 주장하기 힘들어진다.

상층으로 갈수록 원칙적 주장을 하는데 현실을 이유로 반대하면 정치적 공격을 받기 십상이다. 따라서 항상 실력보다 높은 수준의 투쟁과 보다 원칙적인 방향으로 결정된다. 노동운동의 폭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자꾸 주장과 투쟁이 과격해지고 강해지는 것이다. 2000년 이후 민주노총의 ‘뻥 파업’은 중앙파·국민파·중앙파와 현장파의 연합집행부 등 어떤 정파가 들어서든지 간에 반복됐다. 
 

다섯째로 과두정치의 한계지점에 바로 ‘뉴라이트 신노동연합’이나 ‘제3 노총론’이 탄생한다.
싸워야 할 땐 싸워야 한다. 그러나 바람이 불면 풀은 눕는다. 하지만 계파들에 의해 방침이 결정되는 상층에서는 자꾸 꼿꼿하게 서자고만 주장한다. 높이려면 넓어야 한다. 기초는 턱없이 좁게 쌓아 놓고 높이려고만 하면 결국 무너진다. 그것을 잘 아는 조합원들은 따르지 않는다.

자신의 ‘비타협적 투쟁’에 따르지 않는 조합원들을 훈계하고 교육하려 한다. 그래도 듣지 않으면 “더 당해 봐야 한다”는 악담도 서슴지 않는다. 넓지 않기 때문에 자꾸 높아지려고 한다. 행동은 과격해지지만 성과는 없고, 투쟁은 처절해지지만 감동은 점점 없어진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서서히 반란이 일어나게 된다. ‘뉴라이트 신노동연합’과 같은 단체가 출범하고 ‘제3 노총론’과 같은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집단 운동과 개별 운동

노동운동 과정에서 민주노총, 산별연맹, 개별 사업장의 노동조합을 비롯해 수많은 조직운동이 생겼다. 이런 대중적이고 공식적인 조직만이 아니라 현장노동자들이 모인 현장활동가조직, 현장활동가들이 전국 차원에서 만든 전국적 노동자조직, 이와 관련돼 있으면서 각자의 이념과 노선에 따라 활동하는 단체와 정파조직이 있다. 하지만 최근의 집단적 조직운동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민주노총도 마찬가지다. 민주노총이 말로는 총파업을 선언하지만 80만 조합원 중에 그렇게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조합원들은 많지 않다. 조합비도 제대로 내지 않는 경우도 있다. 민주노총 조합원이라면 모두가 민주노동당을 지지해야 할 것 같이 보이지만, MB를 지지하는 조합원도 적지 않다. 민주노총이라는 집단은 있지만 조합원은 각자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대중조직에는 다양한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모두 하나의 입장을 가지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민주노총 산하조직의 설문조사를 종합하면, 정치적 견해는 둘째 치고 조합원들 중 3분의 1정도만 노조에 대한 귀속감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나머지 조합원들은 둘 다에 귀속감을 느끼거나, 회사 쪽도 아니고 노조 쪽도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아예 회사에 더 귀속감을 느끼고 있었다.

노조가 아닌 하나의 정치적 견해로 묶인 조직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전국적인 정파조직의 상층에서는 매우 원칙적인 주장을 하지만 해당 조직원들은 자기가 속한 조직이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방향과 전혀 다른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조직을 하나의 통일된 견해를 가진 것으로 판단하면 껍데기만을 보게 된다.

때문에 개별 대중에 주목해야 한다. 조직과 조직원이 일치하지 않고 조합원이 노조와 일치하지 않는데 허울뿐인 조직과 집단, 덩어리를 생각하다 보면 조합원이나 대중의 생각을 정확히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든 혹은 노조와 다른 노동운동이든 집단적 형태를 띠는 것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거의 건물(조직)이 낡아서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건물만을 보고 판단할 수는 없다. 낡은 건물을 보수하든, 아니면 낡은 건물의 자재를 뜯어내 새 건물을 짓든, 완전히 새로운 원자재로 새 건물을 세우든 간에 건물 자체가 아니라 원자재를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낡아 버린 조직적·집단적·전체적 사고방식이 아니다. 개별적인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고 그렇게 하는 이유를 파악해야 한다.

직접 통하라!

현장조직, 간부, 활동가들이 불신받고 조직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간접적인 소통은 더 이상 소통이 아니다. 조합원,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 지역·시민사회와 직접 소통해야 한다.
좋은 마음으로 자세만 갖춘다고 소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역에서 상당한 규모를 가진 K노동조합은 집행부가 당선되자마자 회사의 구조조정 공격에 부딪쳤다. 통상적인 노동조합의 관행으로 보면 성명서와 선전물을 통해 사측을 규탄하고 항의 투쟁을 조직했을 것이다.

K노조는 전혀 다르게 대응했다. 모든 것을 뒤로하고 현장 조합원을 만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노동조합의 지회장이 주야로 조합원과 직접 소통한 것이다.

불만이 터져 나왔다. 현장 조합원들의 불만이 아니었다. 조합원들은 주야로 직접 지회장을 만나니 불만은커녕 정말 좋아했다. 모든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니 일체감도 생겼다.

불만은 대의원들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집행부와 조합원들이 직접 소통하면서 대의원들의 역할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평소 같으면 대의원이 자신의 주관에 따라 노조의 입장을 조합원에게 전달하고, 조합원의 여론을 자신의 입장에 따라 변형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대의원의 힘은 좋지 않은 방향으로 사용된다.

왜 대의원을 통해 조합원을 만나지 않고 직접 만나냐고 따질 일이 아니다. 일부 대의원들은 조합원과 직접소통을 하는 지회장에 대해 ‘조만간 지회장이 정치를 하려고 조합원을 만나고 다닌다’는 소문을 퍼뜨리기도 한다.

왜곡된 대응은 문제를 꼬이게 한다. 집행부와 대의원이 함께 직접소통의 자리에 주체로 나서야 해결될 문제다.

민주노총은 그동안 대의원을 통해 간접선거로 선출된 총연맹 위원장을 2010년부터 조합원 직선제로 바꾸겠다고 했다. 그런데 직선제와 직접민주주의는 전혀 다른 것이다.

민주노총은 각 지역본부에서 이미 시행한 직선제에서 부작용을 경험했다. 이쪽 정파가 집행부인 노조는 이쪽으로 표가 몰리고, 저쪽 정파가 집행부인 노조는 저쪽으로 표가 몰린다. 그래서 내 표가 많이 나오는 사업장에서는 민주노총 의무금을 내지 않은 조합원들까지 투표한다. 상대 정파는 이에 대한 시비를 걸고 부정투표시비가 불거진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같은 정파가 아닌 후보들은 사업장에 들어가기 힘들다. 들어가더라도 조합원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직선제라고 하는 것은 직접소통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형식적 제도에 불과하다. 조합원이 투표에만 참여할 뿐이다. 사실상 간접민주주의다. 조합원들은 투표를 마치고 나면 당선된 사람이 뭘 하든 관심을 갖지 않는다. 권한을 장기간 위임하고 끝날 뿐이다. 직접참여, 지속적인 참여, 아래로부터의 행동을 위한 직접소통의 노력이 절실하다.<계속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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