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희 노동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노동현안에 대한 인사청문위원과 임 후보자 간 날선 논쟁이 예상됐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국가정보원과 노동부의 업무협의' 문제가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에 따르면 노동부는 본부뿐만 아니라 지방노동청까지 전국적 차원에서 국정원 관계자와 수시로 업무협의를 해 왔다. 공공부문 구조조정에 대한 노조의 대응 동향과 지역 차원의 노사분규에 대한 정보도 교류했다.

노동부와 국정원 간 정보교류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도 부산지방노동청이 국정원에 국감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야당의원들의 지적이 빗발치자 당시 이영희 노동부장관은 “업무 한계를 벗어나는 관계기관 협조가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장관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국정원과 노동부가 도를 넘는 교류를 지속해 왔다는 사실이 또다시 밝혀진 것이다. 최근 박원순 변호사(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국정원 민간인 사찰'을 폭로했다. 박 변호사는 "국정원이 온갖 기업이나 기관·시민단체를 돌아다니며 저에 대해 묻고 다니거나 이런저런 조사를 한 사례는 제 귀에 들려온 것만 해도 수십 건"이라고 제기했다.

국가정보원법에 따르면 국정원의 직무범위는 국외 정보와 국내 보안정보의 수집과 작성·배포로 제한된다. 보안정보의 경우도 '대공·대정부·전복·방첩·대테러와 국제범죄조직'만 해당된다. 국정원이 수시로 노동부와 업무대책을 협의하고, 국감 내용을 실시간으로 보고받는 것은 직무 범위를 벗어난 '월권'이자 '불법' 행태다. ‘민간인 사찰’이 사실이라면 심각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정부·여당 내에서 국정원의 ‘불법 시비’를 방치하고 되레 부추기는 듯한 목소리가 들린다. 한나라당의 정책위의장을 지낸 임태희 노동부장관 후보자가 여기에 해당한다. 노동부와 국정원의 업무협의에 대해 임 후보자는 “국가적으로 큰 분쟁 현장이 있을 때 정보공유를 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장관 후보자조차 직무범위를 벗어난 국정원의 활동을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특히 박원순 변호사가 제기한 ‘민간인 사찰’과 관련해 국가정보원과 정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석연 법제처장이 "부절적하다"고 비판했음에도 국정원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국정원의 고압적인 자세는 정부·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국정원법 개정안’과 관련이 없지 않다. 이철우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해 11월 국가정보원의 국내 정보수집 활동의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의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내 정보 수집의 범위를 정책 수립에 필요한 정보까지 확대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다른 여당 의원들도 국정원의 국내 활동과 관련한 직무 제한을 푸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직무 범위를 확대하는 법안마저 추진되는 마당에 '국정원과 정부기관 간 정보교류쯤이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노동부가 국감 상황을 보고하고, 업무대책을 협의해 온 것은 이런 분위기에 편승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정부는 언제까지 국가정보기관의 ‘불법 활동’ 시비를 방치할 건가. 언제까지 직무 범위를 벗어난 정부기관과 정보기관 간 업무협의가 지속되는 것을 지켜봐야 하나. 사회적·국가적 큰 분쟁이라 하더라도 노동조합이 국가전복세력이나 국제테러조직은 아니지 않는가.

임태희 노동부장관 후보자가 대규모 노사분규로 국한했다 하더라도, 국정원과 노동부 간 정보교류를 옹호하고 나선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노동부는 국정원에 정보를 제공하는 하위부처가 아니다. 장관 후보자라면 마땅히 노동부 공무원들이 국정원 관계자와 수시로 만나 정보를 교류하는 불법 관행을 근절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더불어 국정원법 개정도 신중해야 한다. 여러 차례 제한돼 온 국정원의 국내 활동 직무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역사를 후퇴시키는 것이다. 야권과 시민·사회단체에서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제기한 상황에서 국정원법 개정은 사회적 갈등과 논란만 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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