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상재해 여부를 따질 때 사망시간과 장소가 중요하다. 재해와 업무관련성의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휴게시간 중 재해를 당할 경우에도 사회통념상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다면 업무상재해로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조퇴한 노동자가 직원휴게실에서 역기에 눌려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면 산재로 볼 수 있을까.

직원휴게실에서 역기에 눌려 사망

권아무개(당시 41세)씨는 가스충전소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배달원이다. 하지만 그는 음주운전 단속에 걸려 운전면허가 취소되자 2004년 10월16일부터 가스통에 가스를 충전하는 업무를 맡았다.

그로부터 두 달 후 권씨는 회사 휴게실에서 30킬로그램짜리 역기에 목이 눌려 숨진 채 발견됐다. 전날 과음을 했던 그는 출근시간을 2시간가량 넘긴 오전 10시30분께 회사에 출근했지만, 충전소장에게 “몸이 좋지 않아 일을 못하겠다”며 조퇴를 허락받았다.

유족은 경찰의 수사를 근거로 “권씨가 몸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역기를 들다 기력이 빠져 그대로 역기에 눌린 상태로 숨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씨가 갑작스러운 업무환경 변화로 스트레스를 받았고, 불면증에 시달렸다는 증언도 나왔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권씨가 조퇴 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휴게실에서 역기를 든 것은 업무와 관련이 없다며 유족보상금 및 장의비 청구를 거부했다. 유족은 소송을 제기했다.

원심 ‘휴게시간 중 사망’…대법원 ‘조퇴 후 사망’

이 사건의 원고는 권씨의 유족이고, 피고는 공단이다. 원심은 업무상재해로 판결했으나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원심 재판부는 “권씨가 새로운 근무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육체적·정신적 피로가 쌓였고, 휴게실 역기대에 누워 들어올렸다가 실수 또는 기력미진으로 놓쳐 목에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며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는 휴게시간 중 운동기구를 사용하다 사망한 것이므로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조퇴허락을 받고 나서 휴게실에서 쉬다가 업무에 복귀하려고 했다는 원심의 조치는 쉽사리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비록 휴게실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업무복귀를 전제로 한 휴게시간 중 발생한 사고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권씨의 업무환경 변화로 인한 육체적·정신적 피로 역시 음주운전에 따른 면허취소로 업무가 달라졌기 때문이며 사망 직전에 과중한 업무를 했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에는 채증법칙을 위배하고 휴게시간 중 재해 또는 업무와 사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조퇴 후 휴게실에서 발생한 사고가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는지 여부다. 원심은 권씨가 업무복귀를 위해 체력보강의 과정으로 역기를 들었다고 봤지만, 대법원은 증거가 부족하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관련판례]
대법원 2008년 5월29일 2007두3077 유족급여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파기환송
서울고등법원 2006년 12월29일 2006누16344
서울행정법원 2006년 6월28일 2005구합23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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