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새로운 프레임의 출발?

노동자의 새로운 희망이자 상징으로 유력하게 꼽히는 것이 비정규직이다. 가능성은 열려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첫째로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른 상황을 보여 준다. 정부의 통계와 노동계의 통계는 비록 다르지만 이미 비정규직이 전체 임금노동자의 50%를 훌쩍 넘어섰다. 일반적 노동자계급의 모습은 비정규직이다. 정규직 노동자는 오히려 특수한 지위에 머물러 있다. 일반적 노동자계급의 모습이 비정규직이라고 하는 것은 전체 노동자나 서민들과 분리돼 공격받고 고립되는 대공장 정규직과 달리 사회적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로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상대적으로 임금수준과 노동조건에서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에 ‘배부른 귀족노동자’로 지목되는 정규직에 비해 저항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 일반적 시기에도 비정규직의 경우 1차적인 정리해고의 대상이었고 자본의 노동자에 대한 포섭능력이 줄어든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뚜렷한 배제대상이기 때문에 저항할 가능성이 더욱 높다.

셋째로는 기업이라는 공장 안에 갇힌 정규직과 달리 특정한 기업 안에 묶이는 정도가 훨씬 약하다. ‘공장 탈출’의 가능성을 더 많이 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능성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이다. 가능성이 현실성이 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난제가 남아 있다.

‘유연성’이라고 하는 프레임을 극복할 수 있는가의 문제도 그중 하나다. 실제 ‘유연성’이라고 하는 단어는 한국의 현실에서 맞지 않다. 유연성보다는 ‘불안정성’이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한다. 

‘차별이 문제인가? 불안정성이 문제인가?’하는 쟁점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노동운동 안에서도 오랫동안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중심에 둔 접근방식과 ‘비정규직 자체의 철폐’ 또는 ‘정규직화’를 중심에 두는 입장으로 엇갈린다.

‘불안정성’이라는 기준을 중심에 두고 볼 때 비정규직의 불안정성과 중소·영세기업 정규직의 불안정성을 비교한다면 어떻게 될까? 대공장 비정규직에 비해 중소·영세사업장의 정규직의 고용과 임금의 안정성이 높다고 할 수 없는 실정이다. 불안정성에 의한 착취는 비정규직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앞서 지적한 5개의 낡은 창 중 하나인 ‘고용불안증’은 대공장 노동자에게 깊이 박혀 있는 문제다.

차별을 중심으로 평가하면 어떨까? 권리의 측면에서 볼 때 90% 내외의 노동자들이 노동3권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임금을 놓고 봐도 중소·영세사업장의 정규직은 대공장 1차 사내하청의 비정규직보다 임금이 낮은 경우가 많다.

노동자들의 존재형태가 시장제일주의라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복합적으로 중층화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을 보면 지상·육상·공중을 가리지 않는다. 모든 형태의 처절한 투쟁을 온몸으로 보여 주고 있다. 작업장에서 쫓겨나 천막을 치고 장기투쟁에 돌입하고, 거리의 철탑과 공장의 굴뚝 고공농성, 한강 다리 위의 시위, 죽음을 각오한 장기 단식농성 등 숱한 투쟁을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투쟁이 비정규직의 고유한 투쟁방식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중소·영세사업장이나 대공장 노동자들이 초기의 노동운동 과정에서 경험한 투쟁들이다. 삼성이나 포스코와 같은 ‘무노조전략’사업장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

비정규직 투쟁을 끊임없이 경험하고 있는 사무연대노조의 한 간부는 비정규직 조직경험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유목주의가 뭔지를 잘 몰랐다. 그래서 책도 보고했는데 뭔 소린지 도대체 잘 모르겠더라. 최근에 [징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는 책을 읽었다. 그것을 보니까 오히려 유목적이라는 것이 뭔지 알겠더라……. 비정규직의 경우는 정규직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조직해야 한다고 본다. 정규직에게 하듯이 노조를 만들어 똬리를 틀겠다는 방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

…절대적인 생계의 문제가 있다. 이런 조합원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지 운동적 원칙을 가지고 벽돌 찍듯이 생각하면 안 된다. 비정규직들은 의식이 낮다. 무식하다는 것이 아니다. 절대적인 생계의 문제가 일차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소박한 것으로 출발하는데 정규직화해야 한다든지 민주노조는 이래야 한다는 식으로 운동권적 원칙으로 찍어 내리면 곤란하다. 정규직과 다른 조건에 있는 사람들인데 굳이 정규직같이 노조를 만들려고 해선 안 된다. ……전국사무연대노조가 산별노조니까 정규직노조가 있는데도 비정규직노조가 복수노조에 걸리지 않고 설립될 수 있었다. 금융안전비정규직도 처음부터 우리하고 한 게 아니다. 복수노조 때문에 걸리니까 산별노조 시스템인 사무연대노조와 연결된 것이다.” (2008년 11월 인터뷰)
 
하나의 기업에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정규직과 달리 비정규직은 언제나 계약해지되는 불안정성 때문에 공장을 넘나드는 ‘흐름’의 측면에서 ‘유목민’과 닮았다. 정규직처럼 한곳에 담으려고 하면 흐름이 끊긴다. 기업이라는 제한된 틀에 가둘 수 없기 때문에 애초에 산별노조와 같이 공장을 넘어선 흐름으로 조직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근무기간이 오래된 비정규직과 이직률이 높은 비정규직 등 비정규직 안에서도 다양한 차이가 존재한다.

제조업의 C사업장의 경우 힘겨운 투쟁을 통해 비정규직의 상당수가 정규직이 됐다. 그런데 정규직이 된 비정규직들이 비정규직 문제에 적극적으로 연대할 것이라는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공장을 넘어 떠도는 유목민이 정규직이라는 정주민이 되는 순간, 과거를 잊어버리고 정규직과 동일한 모습을 보인 사례는 C사업장만이 아니었다. 비정규직의 일부가 정규직이 되는 순간, ‘경기장에서 일부만 일어서기’의 프레임이 작용한 것이다.

이러한 비정규직 운동은 새로운 프레임을 창조하기보다 낡은 정규직 노동조합들의 뒤꽁무니를 따라가는 것에 다름 아니다. 비정규직 운동에서 새로운 조직모델이라고 할 정도의 전형이 생긴 것도 아니다.

오래 전부터 비정규직 전국조직을 만들자는 얘기가 있었고, 비정규직 노총에 대한 주장도 있었으나 아직 주장에 불과할 뿐이다. 비정규직을 공장 너머의 흐름으로 조직해야 한다면 이는 단지 비정규직 고유의 조직방식이라고만 할 수 없다. ‘공장 탈출’의 흐름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적·지역적·사회적으로 조직하고 활동하는 것은 정규직 노동운동에도 필요한 전략이다.

불안정성이나 임금과 권리측면에서 나타나는 차별의 문제를 단순히 비정규직과 정규직으로 분리해 비교할 수는 없다.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나 무노조 대기업의 정규직 또한 차별 정도에 있어 비정규직보다 심한 경우가 있다.

불안정성도 비정규직만의 고유한 것이라고만 단정할 수 없다. 투쟁이나 조직형태나 비정규직만의 독특한 무엇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없으며 오히려 전체 노동자의 ‘공장 탈출’을 프레임으로 하는 조직화 전략이 필요하다. 

비정규직만의 고유한 운동은 애초에 없다고 봐야 한다. 오히려 정규직 노동자를 포함한 전체 노동운동이 새로운 프레임을 요구받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계속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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