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술은 향이 깊어지지만, 오래 묵혀 둔 과제는 손대기 싫은 골칫거리 취급을 받기 일쑤다. 13년간의 논의와 3차례의 유예를 거친 ‘복수노조-전임자임금’ 문제가 올 하반기 노·사·정 사이의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지만, 어찌 된 일인지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들이 타임오프제를 중립안으로 제시했지만, 노사정 각 주체는 원칙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 김종각 한국노총 정책본부장
“정부 무성의에 협상판 뒤집어질 수도”


복수노조·전임자임금 관련 논의가 시작된 지는 꽤 됐지만 논의가 지지부진한 것은 사실이다. 접점을 찾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다. 노사정 협상주체 간 입장이 정해지지 않은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정부가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아마도 비정규직법 처리 당시 법안을 먼저 내고 법 개정을 추진하다 실패한 학습효과를 떠올리는 듯하다. 먼저 나서지 않으려다 보니 시간이 지연되고 있다. 사측도 정부의 영향을 받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입장도 명확하지 않다.
계속 시간을 가게 둘 순 없다. 빨리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협상이란 주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가능하다. 법 개정을 위한 최소한의 (협상)시간이 필요하다. 최소한 10월 중 결론을 내야 하지 않겠나.
복수노조·전임자임금 문제는 노사정 합의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그럼에도 정부가 무성의하게 나온다면 자칫 협상판이 뒤집어질 수도 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복수노조 허용 취지는 노조설립 자유와 단체교섭권 보장을 위한 것인 만큼 교섭창구 단일화를 강제해 교섭권이 제약되는 결과가 초래돼선 안 된다. 또 전임자임금 금지 조항은 폐지돼야 하며, 임금지급 여부는 노사자율에 맡겨야 한다.


■ 이승철 민주노총 대변인
“일상적 노조활동 부정하는 ‘타임오프제’ 동의 못해”


복수노조의 의의는 노동자의 자주적 단결권 확대에 있다. 창구단일화 방안은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점에서 제도의 취지와 모순된다. 자율교섭제 도입이 노동계의 요구가 아니라, 제도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필요불가결한 요소라는 주장의 근거도 여기에 있다. 또 산별지부나 지회가 과반수노조의 지위를 점하지 못할 경우 산별교섭 무력화는 물론 장기적으로 산별운동의 퇴조로 이어질 수 있다.
전임자임금 지급금지 조항은 태생부터가 96년 노동법 개정안 강행통과 삽입된 대표적 악법으로, 진작 폐기됐어야 할 내용이다. 전임자임금에 대한 국제노동기구의 입장도 ‘노사 자율 결정사항’이다. 전임자임금 지급금지가 중소사업장 노조활동에 큰 어려움으로 이어질 것도 뻔하다. 전임자임금 지급 문제를 입법으로 정하는 것 자체가 노사자치 침해다. 이른바 ‘타임오프제’ 도 역시 기업의 노무관리를 대행하는 활동에 대해서만 유급을 인정하고, 일상적인 노조활동을 부정하는 것이다. 동의할 수 없다.
민주노총은 지난 9월11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복수노조-전임자임금 문제를 올 하반기 핵심과제로 정했다. 이 문제는 단순히 유·불리를 떠나 노동기본권을 실현하기 위한 요체라는 점에서 총력투쟁이 불가피하다. 정부와 사용자단체는 민주노총이 정면으로 맞설 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
"복수노조 유예되면 민주노조 결성 늦어져"


복수노조 허용이 유예될 것 같다. 삼성은 '민주노조'의 등장을 막기 위해서라도 현 상태가 좋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다. 결국 삼성의 입장에 경영계 전반이 따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노조에 대한 삼성의 태도는 여전하다. 삼성은 만에 하나 있을 복수노조 허용에 대비해 올 들어 현장 노동자를 제외한 중간관리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했다. 교육내용이 대부분 '노조는 빨갱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하는 내용이었다.
복수노조 허용이 유예되면 장단점이 있다. 민주노총이든 한국노총이든 현재 조직된 노조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숙원사업인 삼성에 '민주노조'를 결성하는 일은 더 늦춰질 것이다. 또한 복수노조를 허용한 뒤 교섭창구를 단일화하면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현 정부의 노동정책 기조를 봐서는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은 더 힘들어질 것이다.
노조 전임자임금은 노조의 자주성을 위해 당연히 있어야 한다. 법으로 '월급을 줘라 마라' 할 문제가 아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노조마다 형편이 다르지만, 전임자임금 문제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전임자임금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조직 결성을 방해하는 것이다.


■ 김동원 고려대 교수(경영학과)
“언젠가 해야 할 일이라면, 지금 결단해야”

복수노조·전임자임금 문제는 13년간 시행이 연기됐다. 노사관계 불확실성을 높여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린 사안이다. 언제가 해야 할 일이라면 지금 결단을 내려야 한다.
복수노조는 노사가 논의할 문제는 아니다. 국민과 노동자, 조합원의 선택과 기본권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경영자나 노조 간부가 당사자가 아니고 그들이 결정할 권한도 없다. 반드시 시행해야 한다.
전임자임금은 노사가 대립하면서 합의에 이르기는 어려워 보인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들은 타임오프제를 제시했다. 세계적으로 전임자임금에 대해 완전히 금지하는 나라도 없고, 기업이 상급단체 파견간부까지 임금을 주는 경우도 없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법은 과잉금지고, 관행은 과잉지급이다.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안이 현실성 있고 노사가 동의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공익위원안이 제시된 이후 노사 모두 원칙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일부라도 양보하면 더 양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인 것 같다. 노사가 자율적으로 합의할 수 없다면 정부와 국회가 과감히 주도권을 쥐고 노사관계의 불확실성을 해소해 나가는 것이 상책이다. 법 시행일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올해 내에 중립안이나 타협안을 마련해 입법하고, 1년 내에 무조건 시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 김경선 노동부 노사관계법제과장
“노사합의 못해도 법 시행유예는 안돼”


지난 2006년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와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시행을 3년 유예한 것은 내년 1월1일부터 시행하겠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다만 복수노조 시행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하고 노조의 재정자립방안에 대해 노사정이 합의하도록 했다. 시행을 전제로 보완방안을 논의키로 한 것이다.
올해 노동부는 노사가 합의하지 못하면 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는데, 노사 모두 반발하고 있다. 양대노총도 투쟁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노사정위원회 상무위원회 논의에서도 시각 차이가 큰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노조 전임자임금 문제와 관련해서는 더욱 그렇다.
현재로서는 시간이 촉박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최대한 논의를 하고 보완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노사가 결단하고 합의해 정부가 법안을 발의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온다면 좋을 것이다.
만약에 노사가 합의하지 못하는 상황이 온다고 하더라도 법 시행을 유예할 수는 없다. 노동부로서는 정부발의가 됐든 의원입법이 됐든 간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 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
“교섭창구 단일화방안만은 법안에 명시돼야”


예년에 비해 노사정 논의속도가 더딘 것은 사실이다. 이제 속도를 내야 할 때다. 노사정위원회 상무위원회 논의에서도 이견이 큰 것으로 알고 있다. 내년 1월1일 이전에 반드시 노사가 합의를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경영계의 입장이 반영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만약’이라고 가정할 필요가 없다. 서둘러 논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빨리하면 합의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혹시라도 합의하지 못하는 상황이 온다면 복수노조의 교섭창구 단일화방안만큼은 법안에 명시한 뒤 시행해야 한다. 창구단일화 방안은 노사 합의로 풀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임자임금 지급금지 등은 일단 시행해야 한다. 노조의 재정자립방안은 굳이 법에 명시를 하지 않더라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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