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행정안전부는 ‘건전한 공무원 노사관계 구축으로 국민에게 보다 신뢰받는 공직사회 구현을 위해’ 각급 기관 및 지방자치단체(지자체)에 “공무원단체 불법관행 해소 추진계획”(불법관행 해소지침)을 내렸다.
행안부 주장대로 지침의 목적을 그대로 옮겼다. 지침 시행 이후 나타난 현장상황은 국민의 신뢰는 몰라도 확실히 공직사회 내 행안부의 신뢰는 그다지 높지 않음을 말해주는 듯하다. 법외노조로 활동하던 2006년, 설립신고만 하면 단체교섭에 적극 응하고 노조활동도 보장하겠다던 합법노조 전환지침은 이미 휴짓조각이 됐다.

휴짓조각 된 합법노조 전환지침

지침은 6급 업무총괄 담당자와 인사·예산·감사분야 종사자가 가입금지대상자이므로 기관장이 이를 판단해서 탈퇴토록 하고, 불법 전임활동 관행을 시정하며, 공무원노조 활동으로 파면, 해임되었다가 복직한 불법노조 주동자에 대한 재징계를 철저히 하라는 내용으로 돼 있다.

지침이 각 기관별로 공문으로 이첩시행되면서 지자체 6급 팀장들이 동요했고, 원천공제하던 후원회원들은 후원금을 끊었으며, CMS도 어렵다고 손사래를 쳤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노조 탈퇴여부 확인보고서 내 탈퇴 여부 란에 해당 공무원 본인의 자필 서명을 받도록 강요하고, 연말정산 자료를 임의로 활용해 노조 후원회비 또는 조합비에 대해 소득공제를 신청한 자를 추적해 노조 탈퇴를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하라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러한 지침에 대한 반발로 공무원노동조합 A가 행안부장관을 상대로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하게 됐고, 초심 및 재심 모두 구제신청은 기각 당했으며, 2009년 7월17일 서울행정법원도 중노위의 손을 들어줬다.

본 판결에서 법원은 행안부가 공무원노조법상 정부교섭대표이자 정부조직법상 공무원 관련 사무를 관장하고 있고 실제로도 공무원 노사관계에 있어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행안부가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핑계로 지자체를 압박하며 공무원 노사관계에 있어 직접 개입해왔다는 점에서 행안부의 사용자성 인정은 그 자체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사용자의 범위가 임명권을 가진 기관장만이 아니라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용자를 위하여 행동하는 자”라는 노조법상 사용자의 의미까지 해당함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러나 행안부는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에서부터 자신은 사용자가 아니라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행안부장관은 장관으로서 공무원의 복무와 관련한 권한과 책임을 가진 바, 지침 시행은 각 기관에 법 집행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 것이고 이는 자신이 가진 권한 행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아가 노동부장관·국무총리·국회까지도 공무원 근로조건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지시를 한다면 모두 사용자로 인정해야 하는 것이냐며 되물었다. 그리고 행안부 공무원 중 공무원노동조합 A의 조합원이 없으니까 자신은 임명권도 없으니 사용자가 아니라는 변명까지 덧붙였다.

공무원 노사관계에 부당노동행위는 없다?

다음으로 법원은, 고유업무를 수행하는 반전임자까지 불법전임자로 규정한 것에 대해서는 행안부가 각 기관장에게 사실상 전임자에 가까운 수준으로 명목상 고유업무에 종사하는 행위를 막고자 강조한 것이므로 노조에 대한 지배·개입이 아니라고 했다.

한편, 조합 가입범위와 관련해 공무원노조법에 의한 노조 가입 및 활동만이 보호받을 수 있으므로 가입범위를 노조의 자율에 맡길 수 없고, 일부라도 업무총괄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 모두 가입금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주로’ 하는지 여부를 따져서 기관장이 판단하라는 것이 지침의 내용으로, 이는 부당노동행위가 될 수 없다고 하였다. 후원회원 제도와 관련한 지침의 내용도 관련 법률의 취지에 따른 것이라며 원천공제 허용이 후원금 제도의 부작용을 심화·확대시키는 결과를 가지고 올 수 있으므로 마찬가지로 금지하는 것이 괜찮다고 했다.

애초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의 취지상 행안부의 지침이 노조 가입 및 운영의 자주성을 침해하는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이기 때문에, 법원도 사용자인 행안부장관의 노조 조직 또는 운영에 지배하거나 개입할 ‘의사’가 있었는지 여부를 중심으로 판단한 것이다.

파행 치닫는 공무원 노사관계

필자는 본 사건과 별도로, 같은 지침에 따라 노조 가입금지대상자를 가려내기 위해 연말정산 자료를 뒤졌던 기관을 상대로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진행했다. 서울노동위는 해당 기관이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을 명백히 위반하는 행위를 했는데도 노동관계법에서 다룰 사안이 아니라면서, 가입금지 대상자 파악을 위해 연말정산 자료를 이용했다면 그 목적의 불가피성은 어느 정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소속 공무원의 위법사실을 파악하기 위해 기관이 위법한 행위를 해도 된다니, 법과 원칙이 기관과 공무원 간 낡은 권력관계 앞에선 다른 저울을 가지는가 보다. 논어에선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시켜선 안 된다고 했는데, 행안부는 공공기관의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주무관청이면서 이런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없다.

행안부는 이제 대놓고 사용자로서 공무원단체 관련 지침을 쏟아낼 수 있다. 지자체 공무원 노사관계가 파행으로 치닫고 공직사회가 불신으로 점철돼도, 노사자치주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건조한 공무원 노사관계를 구축하면 된다.

이 시점에서, 노동부가 공무원노조에게 해고자 목록을 제시하며 이들의 가입·탈퇴 현황과 선출직 임원이 아닌 간부로 활동하는 것에 대한 사실관계까지 확인하겠다고 하는 것과 공무원노동조합 간 통합 투표를 앞두고 기관에서 불허 입장이 나오는 것이 예사롭지 않음은 필자만의 생각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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