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6일에는 임태희 노동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린다. 임 후보자에 대한 노동계와 경영계, 정치권의 반응은 현재로선 호의적이다. 여기에는 임 후보자가 국회 안팎에서 이해관계를 조정해 온 여당의 정책위의장 출신이라는 점이 작용했다. 한나라당 내에서 상대적으로 ‘온건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아 온 점도 포함된다.

또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자와 당선자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한 최측근 인사로 꼽히기에 노동정책에 힘이 실릴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임 후보자의 행보나 의지에 따라 법·제도나 정책과제 추진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경제부처의 정책드라이브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던 노동부가 종전과는 달라질 것이라는 얘기다.

이런 호의적인 시각과 달리 부정적인 시각도 상존한다. 임 후보자는 노동 문제 비전문가로 분류된다. 국회 상임위원회 가운데 환경노동위원회에는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다. 여당 내 실세 정치인이지만 노동계와 직접 대화를 해 본 경험도 없다. 물론 여당 정책위의장으로서 한국노총과의 정책협의를 이끌기도 했다. 이런 점은 노동부장관으로서 이해단체와 대화·조정을 해 나가는데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다.

물론 그 경험도 제한적이었다. 노동계의 또 다른 축인 민주노총과는 전혀 접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 후보자의 제한적인 경험이 난마처럼 얽힌 노동현안을 해결하는 데 ‘한계’로 작용하지 않겠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임 후보자의 과거 발언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그는 “정규직이 양보하지 않으면 비정규직 처우개선은 어렵다”며 “노동유연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분쟁과 갈등 해결과 관련해서도 임 후보자는 “유럽의 경우 확실한 대표성을 갖는 노사정이 모여 회의를 해도 결론이 나지 않는다”며 “양극화 해소나 노사 문제를 국회에서 해결하지 않으면 국회 기능이 사실상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결국 임 내정자도 이명박 대통령과 전임 장관의 노동철학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동유연성만이 유일한 선’이라던가 ‘노사정 대화의 필요성에 대해 회의’하는 임 내정자의 발언들을 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노동정책의 변화에 대해 기대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얘기다.

때문에 임 후보자가 주변의 호의와 기대를 노동행정 변화의 원동력으로 이어 가려면 전임 장관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 우선, 비정규직법 입법 과정에서 나타났던 ‘혼선’과 ‘실기’를 털고 가야 한다. 노동부의 ‘100만 비정규직 해고설’은 통계조사 결과에서 허구로 확인됐다. 노동부가 뒤늦게 통계조사의 부실을 거론하는 것은 책임회피에 불과하다. 여러 노동통계를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있는 노동부가 스스로의 신뢰를 훼손하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 더 이상 ‘제 얼굴에 침 뱉기’를 해선 안 된다. 비정규직 입법 과정에서 무리한 근거를 동원한 것을 사과하고, 비정규직법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유도하되 현행법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노동부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임 후보자의 첫 번째 과제다.

두 번째 과제는 '노동유연성만이 유일한 선'이라는 정부의 노동정책 기조를 바꾸는 것이다. 해고나 감원 위주의 구조조정은 노사관계나 기업의 생존에 단기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 해악일 수밖에 없다. 특히 노동유연성은 양극화와 사회갈등이라는 암을 키운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따라 노동유연성을 확대해 온 미국과 일본의 경우 양극화가 심화됐고, 이것이 정권교체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국내에선 쌍용자동차 사태가 교훈이 될 수 있다. 감원과 해고 위주의 구조조정보다 고용안정성을 높이는 노동정책으로 기조를 바꿔야 한다.

세 번째 과제는 노사관계의 변화의 거시적인 밑그림을 제시하는 것이다. ‘복수노조 허용-전임자임금 지급금지’ 문제는 13년 동안 시행이 유예됐다. 이 문제는 기업별 노사관계 체제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전두환 정권이 지난 80년 골격을 만든 이래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변화를 시도했지만 결국 다음 정권으로 넘겼다. 이명박 정부가 묵은 숙제를 풀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간 노동부는 법 개정의 당위성만 강조했을 뿐 노사관계 변화의 밑그림을 제시하거나 노사 모두에게 믿음을 심어 주지 못했다. 전문가집단조차 법 개정의 기술적인 문제만 거론했을 뿐 노사관계의 거시적인 변화를 보여 주지 않았다. 때문에 노사 모두 정부를 불신하고, 법 개정의 원칙적 입장만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 노사관계 변화의 큰 골격을 제시하고, 노사가 합의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복수노조-전임자임금’ 문제는 한국 노사관계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임 후보자가 이전 장관처럼 당위성만 강조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려는 행태를 되풀이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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