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열리는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직선제 3년 유예안’이 다뤄진다. 민주노총은 지난 2007년 4월 임원직선제 방침을 결정하고 올해 선거부터 적용할 계획이었지만, 준비 부족과 직선제 후유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직선제는 좋지만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민주노총 쇄신방안의 일환으로 추진돼 온 직선제에 대한 준비가 소홀했던 원인을 따지고, 현실적 대안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노력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유예] “산별연맹부터 직선제를”
이전락 민주노총 경북본부장


 

직선제 관련 회의를 하다 보면 준비가 거의 되지 않았다는 점이 확인된다. 경북본부의 경우 사고사업장을 제외하면 조합원이 4만2천명 정도 된다. 대부분이 산별연맹에 소속된 조합원들이다. 문제는 산별연맹들도 자기 조합원이 어디에서 몇 명이 근무하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거인명부조차 작성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 상태에서 선거를 할 경우, 조합비를 내고도 투표에 참여하지 못하는 조합원이 다수 발생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선거관리위원회가 구성되지 않은 산별연맹이 수두룩해,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투·개표 관리 인원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실력과 상황을 고려할 때 직선제는 물리적으로 어렵다.
이 같은 우려가 반영돼 직선제 유예안이 대의원대회에 상정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유예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3년 뒤 직선제 시행을 위한 로드맵이 이번 대의원대회에서 논의돼야 한다. 올해는 무엇을 하고 내년엔 무엇을 할 것인지, 아주 구체적인 계획이 다뤄져야 한다. 직선제 부분은 민주노총 내 정파 구도와는 무관하며, 시스템이 갖춰졌느냐 아니냐가 관건이다.
직선제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온 산별연맹과 민주노총 지역본부들의 태도 변화도 필요하다. 아직 간선제 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조직부터 직선제 전환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그것이 민주노총 직선제로 가는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래에서부터 직선제 시스템을 만들어 올라가야지, ‘직선제가 필요하다’는 주장만 난무해서는 곤란하다.


[시행]“준비 부족 아닌 의지의 부족”
이정훈 민주노총 충북본부장



 


기본적으로 직선제를 시행하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현실적 조건이 마련되지 않아 직선제 시행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의견을 내놓기가 쉽지 않다.
민주노총은 2년 전 조직 쇄신 차원에서 직선제 실시를 결정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준비가 안 됐다는 이유만으로 유예하자고 한다. 준비가 부족하다기보다는, 직선제 시행을 위한 의지가 부족한 것 아닌가 싶다.
민주노총 지역본부 대부분이 직선제로 임원을 뽑고 있다. 소극적인 산별연맹에 선거 관리를 맡길 게 아니라, 직선제 경험이 있는 지역본부에 맡겼으면 어땠을까. 직선제 준비를 위한 2년의 시간이 있었다. 지역본부가 주관해 조합원 파악에 나섰다면, 올해 직선제를 시행하지 못하더라도 3년이나 미루는 일을 없었을 것이다. 산별연맹 가운데 어느 한 곳이라도 직선제에 소극적이면, 3년 뒤에도 직선제는 어렵다.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이번 대의원대회나 차기 대회에서 유예안이 통과될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대의원대회 자료를 보면 직선제 준비가 부족하다는 내용만 있지, 그렇게 된 이유는 빠져 있다. 대의원대회에서 이 같은 내용이 소통돼야 한다.
이런 생각도 든다. 직선제 유예 결정이 날 경우 조합원들의 불신이 총연맹을 향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자신이 속한 연맹의 준비 부족을 비판하는 게 먼저일 것이다. 대의원대회를 계기로 산별연맹 소속 조합원들이 자신이 속한 연맹의 직선제 준비 정도를 점검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유예]“3년 뒤에는 반드시 직선제를”
이승우 민주노동자전국회의 부의장



 


전국회의의 당초 입장은 직선제를 반드시 관철하자는 것이었다. 최근의 준비정도를 고려해 입장을 일부 수정했다. 3년 뒤 직선제를 한다는 확실한 담보가 있을 경우 현 민주노총 집행부가 제출한 3년 유예안에 동의한다는 것이다.
실무적 준비도 안 됐고, 조합원 명단 확보도 안 됐다고 한다. 지난 2년간 직선제 시행을 위해 민주노총이 무엇을 했는지 되묻고 싶을 정도다. 다만, 이번에 문제를 제대로 짚지 못하면, 앞으로 민주노총 내부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유예로 결정되더라도 문제는 있다. 과연 일반 조합원들이 유예안에 동의하겠냐는 점이다. 하겠다고 약속한 것을 안 하겠다고 하면, 어느 조합원이 그 조직을 신뢰하겠나. 여건상 미비했던 부분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또한 앞으로의 계획이 구체적으로 제출돼야 한다. 미사여구를 동원해 말로 때우려 하면 더 큰 불신에 직면할 것이다. 직선제 실시를 위한 길을 보여 줘야 한다.
3년 뒤에라도 직선제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조합원 명단을 정확하게 수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선거인명부 작성을 위해 산별연맹이나 지역본부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계획을 내놓아야 한다.


[시행]“미비점 보완하면 내년초 직선제 시행 가능”
김태연 현장실천사회변혁노동자전선 집행위원장



 


민주노총의 직선제 추진안을 검토해 보니 생각보다 선거 준비가 상당부분 진행된 상태였다. 준비부족보다는 부정선거에 따른 부작용 문제가 직선제 유예 주장에 힘을 싣고 있는 것 같다. 그동안 산별연맹이나 지역본부에서 부정선거 논란이 제기된 이유는 부정 여부를 판단하고 해결한 사정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결방안은 무엇일까. 투개표 관리를 위한 공정한 선관위 구성과 투개표 참관인 확보가 중요하다. 투표구가 몇 개이며 필요한 참관인이 몇 명인지, 후보진영이 참관인을 배치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할 방안이 무엇인지를 검토해야 한다. 이런 부분을 보완하더라도, 물리적으로 올해 직선제 시행은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면 2~3개월 정도 시간을 갖는 건 어떤가. 올해 말까지인 현 집행부의 임기가 끝난 뒤 2~3개월을 선거관리를 위한 비대위로 운영하는 것이다.
직선제가 민주노총 혁신을 위한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직선제는 민주노총에서 멀어져가는 조합원 대중에게 민주노총의 사업을 제출하고, 조합원들의 관심과 참여를 활성화시키는 계기다. 이번 대의원대회는 직선제를 준비 못한 원인을 진단하고 그 해결책을 찾는 대회가 돼야 한다.


[유예]“민주노총 직선제 득보다 실이 커”
박조수 사무금융연맹 수석부위원장



 


민주노총 선거를 직선제로 바꾸면 조합원들이 직접 선출한 민주노총 집행부라는 사실 때문에 조합원에게는 자부심을 주고 집행부의 집행력도 강화할 수 있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하지만 선거 과정에서 선거관리 능력 부재의 모습을 보일 경우 생길 수 있는 신뢰 추락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무금융연맹은 과거에 연맹 집행부 선거를 직선제로 치렀던 경험이 있다. 50~60매씩 같은 방향으로 무더기로 묶인 투표용지가 나와 선거 때마다 선거무효 논란이 일었다. 일부 노조에서 선거관리 감독을 철저히 하더라도 전체 선거 과정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국가가 선거를 관리해도 부정선거 등 절차상의 하자가 발생하지 않나.
세계적으로 내셔널센터가 직선제를 하는 곳은 찾기 힘들다. 현재 노동현장이 복수노조-전임자임금 문제 등으로 어려운 상황인데, 민주노총이 직선제를 실시할 경우 투쟁 동력을 낭비할 가능성도 있다. 선거를 치르고 나서도 후유증이 따를 것이다. 득보다 실이 크다.


[시행]“직선제 약속, 너무 쉽게 깨는 것 아닌가”
김헌정 민주일반연맹 부위원장


 

민주일반연맹 같은 소규모 연맹의 경우 직선제가 시행되든 아니든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연맹 규모가 작다보니 직선제 시행에 따른 실무부담도 크지 않은 게 사실이다. 단, 대의원대회를 통해 직선제를 실시하기로 결정을 한 만큼 약속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냐는 입장이다.
당초 우리 연맹은 직선제 시행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직선제를 시행할 수 있는 시스템도 부재하다시피 하고, 외국의 총연맹 중에도 직선제를 실시하는 곳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지를 모아 결정한 사안인 만큼 결정사항을 존중하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이번 대의원대회에서 직선제 유예가 결정되면, 우리 연맹은 또 그 결정에 따를 것이다. 현장의 대표자들이 갑론을박을 벌여 내린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이다. 직선제 문제를 떠나 민주노총의 모든 사업이 신중하게 결정되고 그 결정에 책임있는 실천이 따르기를 기대한다.

구은회 기자·오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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