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탈출’이라는 주장을 하면 공장은 버려야 할 곳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공장과 직장을 모두 버리고 밖으로 나가자는 말이 아니다. 노동조합이 주목해야 할 활동이 무엇인지를 냉철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는 뜻이다. 임금의 노예, 임금실리만을 추구하는 ‘공장귀신’이 아닌 ‘잠일술 인생’에 대한 전반적인 성찰과 이를 통해 삶의 시간적 재편, 건강권에 대한 새로운 인식, 가족과 사회관계 및 문화적 영역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 가야 한다.
 
터널시야

87년 전체 노동자의 희망으로 시작된 민주노조운동이 20년 만에 낡은 프레임에 갇힌 채 위기에 처하자 각종 공격이 쏟아지고 있다.

2009년 3월17일 중앙일보는 시론을 통해 ‘민주노총의 위기와 그들만의 노동운동’이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조선일보는 2009년 3월24일 한 토론회를 소개하면서 진보가 진보를 비판하고 있다면서 ‘민노총·전교조, 천덕꾸러기로 전락’과 같은 선정적인 제목을 달아 보도했다. 이 기간을 전후해 민주노총을 탈퇴하는 노조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2009년 5월4일 서울신문은 공공부문에서 ‘제3의 노총’ 설립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며 아예 노동계의 판 자체를 완전히 새롭게 짜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2009년 4월9일 기자회견을 통해 민주노조운동 분열책동을 규탄하면서 민주노총 산하조직에 대한 탈퇴공작 중단을 촉구하는 한편, 산하조직의 탈퇴를 막기 위한 노력을 진행했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수 언론들이 자기들만의 이익을 챙길 뿐, 비정규직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의 이익을 지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노총을 만들고자 한다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지키는 노총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뉴라이트나 혹은 민주노총을 탈퇴한 일부 조직들이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는 근거를 발견할 수 없다.



뉴라이트나 민주노총을 탈퇴한 노조들이 ‘제3의 노총’을 만든다면 그것은 비정규직이나 전체 노동자를 위한 조직이 아닐 것임이 명백하다.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보다 훨씬 보수적이고 노골적으로 노조의 항복을 요구하는 반노동적이고 친자본적인 조직이 될 것이다.

노동계 일부에서는 이런 흐름이 복수노조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훨씬 더 강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과연 복수노조라는 제도가 문제일까?
오래된 대공장 노동조합들은 더 이기적으로 변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비정규직과 중소·영세·미조직 노동자들이 노동3권으로부터 배제되고 있다. 그런데도 뚜렷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 문제 아닌가?
 
민주노총은 정규직 노동자만을 생각한다면 훨씬 더 우향우를 해야 하고, 비정규직과 미조직 노동자들을 생각한다면 훨씬 더 좌향좌를 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이 두 갈래의 다른 흐름을 통합할 수 없다면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만 한다. 

제조업의 생산라인에서 일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시작부터 완성품에 이르는 컨베이어벨트의 생산라인처럼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구상과 실행’이 분리된 상황에서 라인을 따라 흘러가는 생산품에 매달려 일해야 하는 ‘소외된 노동’을 한다. 따라서 다른 노동에 비해 다양한 상황을 놓고 구상하는 창조적인 노동을 하기 어렵다. 

앞서 지적한 중앙집권적이고 일사불란한 조직운동의 풍토가 결합한 상황에서는 늘 단선적 선택에 익숙하다. 공장의 라인적 사고방식, 남성적인 공장문화, 그리고 낡은 운동의 획일적인 발상들은 이른바‘터널시야’를 연상시킨다.



터널시야(tunnel vision)란 대상물이 마치 긴 굴을 통해 보는 것처럼 시야가 매우 좁아진 상태를 말한다. 영국의 한 연구는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 준다. 길을 건너다 사고를 당한 아이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여자아이보다 남자아이가 훨씬 많았다. 남자는 선천적으로 시야(視野)의 각이 여자보다 좁기 때문이라고 한다. 경주마가 눈 옆에 가리개를 씌우고 앞만 보고 달리듯 남자의 삶은 터널식 시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런 좁고 융통성 없는 획일성은 다양한 변화의 시대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터널시야’를 떠올리게 하는 논란은 노동운동 내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예를 들면 ‘투쟁이냐 협상이냐’는 식의 논쟁이다. 사실 아무리 강성인 노조나 간부라고 해도 협상을 하지 않는 일은 없다.

노동조합에서 ‘비타협적인 투쟁’을 한다고 하지만 언제, 어떤 시기인가만 다르지 협상은 늘 진행된다. 그럼에도 협상이 투쟁의 한 방식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정규직 노동조합에서 입사비리 등이 터져 나오고 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젠 정규직 운동은 끝났어, 다 때려치우고 비정규직 운동을 해야 해”라고 말하는 활동가들이 적지 않았다. 

‘모두가 투쟁을 하거나 아니면 말거나’와 같은 사고방식으로 볼 때 이미 다양한 조건에 처한 노동자들은 하나가 될 수 없다. 이런 시각으로만 본다면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도 비타협적인 투쟁의 길을 걸어야만 한다. 이미 ‘늙은 여우’ 또는 ‘나이 든 고참 상사’가 된 그들에게 투쟁만을 주문한다면, 결과는 ‘가출’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이탈한 대공장 노동조합을 부추기는 것이 바로 ‘뉴라이트 신노동연합’이나 이상한 ‘제3의 노총’ 주장이다. 낡고 고루한 ‘올드레프트’들은 여전히 획일적으로 비타협적 투쟁을 외치고, 그로부터 이탈한 노조를 이삭줍기하는 것이 바로 ‘뉴라이트’라고 한다면, ‘뉴라이트’를 키우는 것은 단지 우익과 보수만이 아니다. ‘올드레프트’들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노동운동의 딜레마, 현대자동차
 
노동운동은 노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단체나 정치적인 조직, 정당도 노동운동의 범주에 포함된다. 물론 일반 국민은 노동운동, 혹은 노조운동이라고 하면 민주노총을 상징적으로 떠올린다.

전교조와 같이 매번 언론에 오르내리는 조직도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민주노총에서 총파업을 하면 가장 많이 참가하는 금속노조도 상징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금속노조의 상징성보다 더 큰 상징성을 갖는 조직이 있다. 대공장 노조, 그중에서도 현대자동차다.
현대차는 매년 언론에 오르내린다. 심지어 현장에서 일부 생산이 중단되는 내부적인 일이 벌어져도 언론에 보도된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가 가진 상징성은 단순히 이미지에 머물지 않는다. 한국의 제조업에서 자동차산업이 차지하는 비중만큼이나 크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자동차산업은 ‘한국 경제의 최소 11%, 최대 20%. 생산 측면에서는 75조원으로 전체 제조업의 11%, 고용은 154만명으로 전 산업의 10%. 부가가치는 28조원으로 제조업의 11%, 국세의 17%가량인 25조원’을 담당하고 있다. 2006년 말 현재 현대차그룹의 협력업체는 총 7천357개에 달한다. 2006년 현대차가 이들로부터 구매한 각종 부품과 일반 소모품만 해도 41조원에 육박한다. 자동차는 2만개가 넘는 부품으로 구성된다. 단순한 섬유에서부터 첨단 컴퓨터 기술까지 산업연관성이 높은 산업이다. 

이에 따라 현대차의 노사관계는 매년 한국 노사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2007년 6월 한미FTA 반대파업 당시 현대차지부의 정치파업 여부가 쟁점이 됐다. 2008년에도 촛불시위 상황에서 현대차지부의 정치파업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노동조합운동에서도 아직 ‘현대차 붙잡고 늘어지기’가 여전하다. 2009년에도 현대차지부가 금속노조의 계획에 따라 단체협상 요구안을 만들고,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하고, 파업에 같이 들어갈 수 있는지가 중요한 관심사다.

노동조합운동의 중요한 상징이 된 현대차는 이제 노동운동의 딜레마를 그대로 보여 준다.  현대차지부가 노동조합의 총파업에 참여하는 순간, 4만5천명이 넘는 노동자가 파업에 참여한다. 파업참가율을 대폭 높여 준다. 뿐만 아니라 현대차가 파업하면 수많은 부품사 또한 생산이 중단되기 때문에 단순히 현대차지부 조합원만의 파업참가만이 아니라 관련된 노동조합의 파업참가로 이어진다.

현대차지부는 노동조합 투쟁의 상징인 동시에 ‘배부른 귀족노조’의 상징이 돼 버렸다.
2009년 4월9일 대법원은 조선일보에게 현대차노조에 1천8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조선일보는 2003년 8월8일 사설과 그 다음날 ‘현대차 그들만의 잔치’라는 제목의 글에서 현대차 노동자들이 연간 165~177일 또는 170~180일의 휴일을 누리면서 연봉 5천만원을 받는다고 보도했다. 평균 근속연수 14.4년인 생산직 근로자가 1년 중 63일만 쉬고 하루 10시간씩 일해야 4천827만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이런 왜곡 보도는 한번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나면 기정사실로 세상에 알려진다. 나중에 왜곡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돼도 그다지 관심도 끌지 못한다.   

현대차 파업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심하게 말하면, 현대차지부가 파업에 참가함으로써 노동조합은 무조건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 때로는 현대차의 파업참가가 거꾸로 부정적 여론을 부추길 정도가 된 것이다.

2007년 5월30일 금속노조와 현대차지부 대의원 간 간담회가 열렸다. 현대차 조합원들은 무슨 일만 터지면 현대차를 도마에 올린다면서 매우 불만스러워했다.
 
“이제는 현대자동차노조라는 이름을 지워야 합니다. 금속노조라는 우산 속으로 현대차를 숨겨야 합니다. 파업을 해도 현대차가 했다는 소리가 나오게 하지 말고 금속노조가 했다고 나오게 해야 합니다. 현대차 혼자 임단협투쟁을 하지 말고 금속노조 일정에 맞춰 같이하자는 것입니다.” 
 
 금속노조 위원장과 간부가 현대차 대의원들에게 수차례 설명했다. 그러나 대의원들은 “아무리 산별노조라는 우산 아래에 숨으려 해도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결국 대의원들의 예상대로 진행됐다.

2007년 6월28~29일 진행된 한미FTA 반대파업이 진행되기 전부터 수많은 언론이 떠들기 시작했다. 파업을 하자 날을 세워 현대차지부를 비난하는 데 열을 올렸다.
금속노조라는 산별노조는 현대차라는 큰 덩치를 숨기기에는 역부족인 우산이었던 것이다. 반면에 현대차지부 현장에서는 파업에 대한 거부감이 날로 확산됐다.

많은 사람들이 한때 민주노조운동의 선두에 서 있던 현대중공업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현대차도 현대중공업의 길을 가고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현대중공업노동조합은 1987년 8월18일 파업과 함께 5만여명이 공장을 박차고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이면서 노동자 대투쟁을 이끌었다. 128일간의 파업과 골리앗 크레인 점거농성투쟁은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에 길이 남는 투쟁이었다.

그러나 이후 현대중노조는 급격히 변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들이 비정규직노조를 만들자 지지하기는커녕 오히려 탄압했다. 2004년 9월15일 민주노총 금속산업연맹은 현대중노조를 제명했다.


2009년 현대중노조는 임금인상을 회사에 위임했다. 임금인상을 회사에 맡긴다는 것은 자주적인 노동자의 조직이어야 하는 노조가 스스로의 권리를 회사에 넘기는 것이기 때문에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언론은 현대중노조의 이런 모습을 수년 전부터 부각시켜 왔다.

중요한 것은 현대차지부가 현대중노조와 같은 모습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아니다. ‘골리앗의 전사’ ‘128일 파업투쟁의 강철노동자’로 불리던 현대중노조가 어찌하여 오늘날의 모습에 이르렀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현대차지부도 비정규직을 외면하고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해 자본과 결탁하는 길로 가지 않도록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중노조가 오늘날의 모습을 보이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몇 가지 지적이 있다. 조선산업은 소수가 생산라인을 멈추면 전체가 멈추는 자동차산업과 달리 파업을 해 봤자 끝나고 나면 그만큼 사람을 추가로 투입해 파업손실을 메울 수 있다. 회사가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자동차산업과 같이 생산라인을 중심으로 밀집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작업장에 분리돼 작업하기 때문에 이른바 ‘신경영전략’이라는 제도를 통해 개별 노동자와 소규모 집단을 회사가 포섭하고 관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또한 현대중노조가 매년 민주노조운동 투쟁의 선봉에 서긴 했지만 장기적이고 강도 높은 파업투쟁에 비해 실제 조합원들의 조직력이 약화되고 있었다는 분석, 조합원들이 점차 고령화됨에 따라 투쟁보다는 실리를 선택했다는 분석, 현대중공업 사측이 생산현장만이 아니라 울산 동구를 ‘몽준공화국’으로 만들어 지역주민과 조합원 가족을 주부대학이나 가족 이벤트를 통해 회사 편으로 끌어들여 노조를 포위하고 무력화시켰다는 분석 등 다양한 진단이 나왔다. 현대차는 제2의 현대중노조가 될 것인가? 다른 길로 갈 수는 없는 것일까? <계속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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