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여러 가지 일로 노조와 자주 만난다. 노조의 안전보건 활동가들은 내게 이런 질문을 참 많이 한다. “내가 일하는 사업장이 안전한지 위험한지 진단하는 방법은 무엇이 좋을까요? 노동자들이 쉽게 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은 재해발생 통계를 보는 것이다. 산업재해뿐만 아니라 공상까지 숨기지 않고 집계된다면, 이 자료는 매우 좋은 평가기준이 될 수 있다. 재해건수가 많은데도 산재가 줄지 않고 는다면 이 사업장은 아주 위험하다고 볼 수 있다. 꾸준히 재해건수가 줄고 있다면 '노력하는 중'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사업주는 의무적으로 재해기록을 작성해 유지해야 하므로, 산업안전보건위원회나 노사협의회를 통해 자료를 받아서 분석해 보면 될 일이다.

작업환경 측정이나 건강검진 결과도 사업장의 안전보건 수준을 보여 주는 자료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그러한 자료를 그다지 믿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나라 직업병 중에서 특수검진을 통해 발견되는 직업병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측정결과가 기준 미만이거나, 검진에서 아무런 유소견자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도, “우리 사업장이 안전하구나”라는 생각을 갖지는 않는다. 참 속상한 일이다.

사업장 안전보건을 진단하는 방법

설문지나 체크리스트를 활용하는 방법도 많이 사용된다. 사고 경험이나 사고가 날 뻔한 경험, 일하면서 느끼는 위험의 종류와 심각성, 몸의 증상과 힘든 점 등을 노동자 설문을 통해 조사하는 것은 꽤 유용한 방법이다. 사업장의 전체 문제도 파악되고, 부서별 구체적인 문제까지 찾아낼 수 있어 안전보건활동에 큰 도움이 된다. 체크리스트도 마찬가지다. 정기적으로 안전점검을 하면서 산업안전보건법에 명시된 안전보건조치가 제대로 지켜지는지 확인하는 것도 사업장의 문제를 찾아내고, 안전수준을 진단하는 도구임에 틀림없다.

다만 설문조사나 안전점검은 한 번 하고 끝내기보다는 주기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과거에 발견된 문제가 해결됐는지 아니면 여전히 남아 있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문지나 체크리스트를 구하기 어렵다면, 노동환경건강연구소로 연락하면 된다. 업종에 따라 원하는 내용을 함께 만들 수 있다. 물론, 분석도 도와 준다.

그런데 필자는 이런 방법보다 더 좋은 방법을 한 가지 알고 있다. 현장을 한 바퀴 돌면서, 설문지로도 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저 노동자들과 얘기를 나눌 수만 있으면 된다. 그렇다고 우습게보면 안 된다. 이 방법은 사업장의 안전보건 수준이 앞으로 좋아질 것인지 아닌지를 예측하는 데 정말로 귀신 같은 신통력이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사장님이 하신 말씀 중에서, ‘안전보건과 관련해 참 좋은 말씀이구나’라고 기억나는 것이 있거든 얘기해 주세요. 사장님이 직접 얘기한 것도 좋고, 사보를 통해 글로 읽은 것도 좋고, 뭐든지 좋습니다.” 아주 큰 회사라면 공장장도 좋고, 부서장도 좋다. 회사 관리자들이 한 말 중에서 우리를 위해 참 좋은 말씀을 하셨다고 생각한 것이 있느냐고 물어보면 된다.

노동안전보건은 사업주의 관심에서 시작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만난 대부분의 기업에서 노동자들은 벙어리 신세였다. 기억나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그럴 때면 노동자들은 씨익 웃으면서도 허탈한 속내를 차마 감추지 못한다. 이게 아니구나 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휴게실마다 안전보건경영목표라는 것이 붙어 있는 대기업에서조차 노동자들은 사장에게서 들은 얘기가 없다고 말한다. 최고경영자부터 안전보건 의지를 보여 주지 않으면, 중간관리자나 현장관리자가 안전보건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은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안전보건에 대한 의지표명을 영어로는 ‘커미트먼트’(commitment)라고 한다. 이 커미트먼트라는 것이 없으면, 예산도 조직도 시간도 제대로 할당되지 않는다. 더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 안전과 보건은 뒤로 미뤄 놓게 된다. 이런 기업은 사고나 질병이 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위험한 기업’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노조에 제안한다. 현장을 순회하면서 조합원들에게 여쭤 보라. 사장님이 하신 말씀 중에서 조합원들이 기억하는 것이 있는지. 아무것도 없거든 다음 번 산업안전보건위원회나 노사협의회 때는 한마디 해도 좋지 않겠는가. “우리 기업 수준이 요 모양 요 꼴인 것은 사장님 책임입니다”하면서 말이다.

참. 노조도 긴장하기 바란다. 요새 조합원들을 만나면서 이렇게 물어보고 있으니까.
“노조 위원장께서 하신 말씀 중 안전보건 관련해 기억나는 얘기가 있으면 말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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