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로 치료를 받던 환자 중에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주로 재해 부위의 극심한 통증과 노동력 상실에 대한 우울증이 겹쳐 발생한다.
대한산업의학회가 지난 2007년 개최한 추계학술대회에 발표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산재환자의 자살사망률은 일반인구의 자살사망률보다 1.3배 높다. 산재보험에서는 업무상재해로 인한 치료 과정에서 자살할 경우 산재에 포함시키고 있지만 이러한 인과관계를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 공무원연금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공무상재해로 목 디스크 앓던 경찰관의 자살

○○○경찰청 ○○과 ○○팀장이던 ㄱ아무개씨는 지난해 3월 오전 7시50분께 출근해 평소와 다름없이 근무를 하고 오후 7시20분께 퇴근했다. 그리고 이날 오후 10시30분께 집을 나간 뒤 연락이 두절됐다. 얼마 후 그는 나무에 목매 숨진 채로 발견됐다.
ㄱ씨는 90년대 정보과 형사로 일하며 학생운동권 수배자를 감시하는 업무를 맡았다. 이 과정에서 그는 학생들로부터 각목으로 머리와 목·가슴을 구타당했고, 제6-7경추 간 추간판 탈출증(디스크) 진단을 받고 공무상재해로 인정됐다.

ㄱ씨는 목 디스크 수술 후 업무에 복귀했으나 2004년부터 심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병원에서 1년 정도 약물치료를 받았으나 별 효과는 없었다. 그런 가운데 2007년부터 목 디스크로 인한 통증이 심해졌다. 교정치료와 물리치료를 받았지만 경과는 좋아지지 않았고, 병원은 종전 상병이 재발했다는 진단을 내렸다. 하지만 병원측은 수술이 어렵다고 밝혔고 그의 불면증은 심해졌다. 병원에서는 그에게 '불안 고민성 우울증' 진단을 내리고 항우울제를 처방했다.

진단서 어디에도 자살기도나 자살 계획 등의 소견은 관찰되지 않았다. 다만 치료 과정에서 의사에게 ‘목 디스크 재발 때문에 진급도 포기했다. 죽고 싶다’ 등의 호소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ㄱ씨의 유족은 “목 디스크로 인한 통증으로 직장생활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며 “재발 부위가 수술로도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의학적 판단으로 인해 정서장애를 앓았고 충동적으로 자살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지난해 6월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 유족보상금 지급을 청구했다.

공단은 “운동권 학생으로부터 구타당한 것과 우울증 간의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는다”며 이를 거부했다.

"자살이 기존 상병에서 비롯됐다는 증거 없다"

이 사건의 원고는 ㄱ씨의 유족, 피고는 공단이다. 법원은 “종전 상병인 목 디스크 재발로 고통을 호소했고 이로 인한 직장생활에 불안감을 가지고 우울증 증세를 보이기는 했으나 의학적 소견상 자살의 위험성이 높은 중증 우울증으로 진단받지 않았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판결요지는 다음과 같다.

“일반적으로 공무원이 자살한 경우에는 공무상 질병 또는 부상과는 별도의 ‘자살의 결의 및 실행’이라고 하는 개인적 결단이 개재돼 있다. 공무수행 혹은 공무상 질병이 자살의 직접적 동기나 원인이라는 사정만으로 공무수행과의 상당인과관계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자살자의 신체적·정신적 상황과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나 자살에 이르게 된 경위 등을 고려해야 한다. 이 사건에서 ㄱ씨는 우울증세가 당시의 신체적 질환으로 인한 것인지 분명치 않으며 달리 자살을 예상할 만한 소견도 없었다. 따라서 공무와 사망원인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없다.”

이 사건의 쟁점은 자살이 기존 상병으로부터 비롯됐느냐 여부다. 법원은 이를 입증할 증거가 충분치 않다는 이유로 공무상재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관련판례] 서울행정법원 2009년 7월9일 판결 2008구합34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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