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나라가 신종인플루엔자 공포에 휩싸였다.
25일 신종플루 감염자 199명이 추가로 발생해 감염자는 3천300명을 넘어섰다. 보건복지가족부 중앙인플루엔자대책본부는 이날 “지금까지 신종플루 감염자는 3천332명으로 늘었다”며 “감염 환자는 대부분 지역사회 감염으로 추정되며 합병증 등 중증증세를 보인 환자는 없는 것으로 보고됐다”고 밝혔다. 이들 가운데 1천262명은 병원과 집에서 격리치료를 받고 있다.

신종플루 감염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노동 현장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최근 인천공항에서 일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신종플루에 집단감염됐고, 병원에서는 신종플루에 감염된 의사가 환자를 진료한 사례가 드러나기도 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최근 전 지부를 상대로 ‘신종플루 의심(확진) 환자 입원 실태조사’를 벌이고, 전교조도 이날 학교 내 신종플루 예방을 위한 긴급 제안을 발표했다.

2차 감염 우려되는 병원, 격리병동 태부족

당장 빨간불이 들어온 곳은 병원이다. 신종플루 환자들이 집중돼 2차 감염이 우려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복지부가 신종플루 치료거점병원을 지정했지만, 병원들은 격리병동 등 추가감염 방지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에서 환자들을 받고 있다.

병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감염 예방대책도 전무한 상태다.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의료진과 보건의료 종사자에 대한 감염 예방대책이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환자 진료가 이뤄지고 있다”며 “노동자들의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날 전북에서는 신종플루에 감염된 한 전공의가 수술에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전북대병원에 따르면 이 병원 레지던트 최아무개(29)씨가 신종플루에 감염됐으나 이 사실을 모른 채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매일 수술에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씨는 수술뿐만 아니라 회진을 돌며 환자를 돌봤다. 그는 지난 13일에서 16일까지 서울과 남원의 온천으로 휴가를 다녀온 뒤 콧물과 기침 등 유사증상을 보여 17일 이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확진판정을 받은 19일 오후에야 자택에 격리돼 치료를 받았다.

 

병원측은 최씨가 접촉한 동료 의료진 30여명에게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접촉 환자들에게는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병원측은 “최씨가 수술에 참여했지만 소독한 상태에서 보호장갑과 마스크 등을 착용했고 환자를 직접 접촉하지 않았기 때문에 환자에 대한 추가 감염 우려는 없다”고 밝혔다.

현재 공항에 근접한 인천의 병원들은 감염 환자들이 넘쳐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 관계자는 “일부 민간병원들이 환자 치료를 거부하면서 공공병원으로 환자들이 몰리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전재희 복지부장관은 이날 서울 남대문 밀레니엄힐튼호텔에서 ‘신종인플루엔자 대비 병원계 간담회’를 열고 대한병원협회의 지원 요청을 상당부분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복지부는 전날 협회가 건의한 의료진을 위한 항바이러스제 보급과 거점의료병원 마스크·보호장비 지원, 신종플루 분리진료실 최소 운영비 변상, 환자 1인실 입원료 지원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보건의료노조는 26일까지 전 지부를 상대로 ‘신종플루 의심(확진) 환자 입원 실태 조사’를 벌인다. 신종플루 환자수와 격리병동·병동 음압시설 설치 여부·근무자의 근무조건과 안전조치 사항 등을 조사한다. 노조는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대정부 요구안을 마련해 27일께 건강연대와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집단감염 우려되는 학교 ‘비상’

군대와 함께 집단감염이 우려되는 곳이 바로 학교다. 부산시교육청은 이날 해외에 다녀온 지 일주일이 지나지 않은 중·고교 직원과 학생들에게 출근·등교정지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교직원 136명과 학생 609명 등 745명이 신종플루 잠복기간인 일주일 동안 학교에 나갈 수 없다. 휴교와 개학을 연기하는 학교도 늘고 있다.

전교조는 이날 “신종플루 예방·치료약은 집단생활을 하는 학생들에게 우선 조치돼야 한다”며 “각종 행사에 학생 동원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밝혔다. 전날 전국의 초·중·고등학교들이 개학을 하면서 집단감염 사태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전교조는 “개학과 함께 신종플루에 감염된 학생이 늘고 있고 가을이 다가오면서 신종플루 대유행이 예상돼 학생·학부모·교직원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며 “신종플루 예방과 진단을 위해 긴급 제안을 내놓았다”고 밝혔다.

전교조는 교육 당국에 충분한 양의 치료제와 예방백신을 조속히 확보해 감염위험이 높고 밀집된 생활을 하는 학생들에게 우선적으로 공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집단 활동으로 인해 호흡기를 통한 전염·추가 확산이 발생하지 않도록 학생들이 참여하는 가을운동회나 축제 등 교내 행사를 가급적 축소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전교조, 신종플루 대책팀 꾸린다

이 밖에도 △발열 등 유사증상 환자의 조기감별과 조기치료가 용이하도록 진단·치료를 위한 거점병원을 확대하고 △학생들의 지방자치단체 행사 동원 중단 △교문·건물현관·교실 출입구 등에 손·공기 소독을 위한 기구와 장비 설치 △소독약품·체온측정기 등을 지원하기 위한 특별예산 편성 △감염 학생이 다닌 학원과 수강생을 대상으로 한 조치 등을 주문했다. 전교조에 따르면 인천교육청은 인천 세계도시축전 관람표를 인천지역 학생 18만명에게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전염병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인 소규모 학교에 보건교사를 모두 배치하고, 신종플루 업무량 폭증으로 업무 마비상태인 학교에는 2인 이상의 보건교사와 보조인력 배치를 제안했다. 특히 다음달부터 4개월간 실시하는 학습보조 인턴교사를 보건전문 인력으로 대체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전교조는 “노조 산하 보건위원회를 중심으로 ‘신종플루 현장교사 대책팀’을 구성해 운영할 것”이라며 “대책팀은 현장의 상황을 진단하고 예방활동을 강화해 효과적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타미플루 생산 ‘강제실시’ 발동될까?
국내에서도 신종인플루엔자 감염자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항바이러스제인 타미플루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25일 건강연대에 따르면 신종플루 항바이러스제인 타미플루는 스위스계 초국적 제약회사인 로슈가 독점 생산해 공급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각 국가가 인구의 20%까지 항바이러스제를 비축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로슈가 공장을 완전 가동하도라도 전 세계 인구의 20%가 복용할 수 있는 타미플루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10년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 미국과 스위스 등 일부 국가들은 WHO 권고 기준 이상의 물량을 이미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500만명분의 항바이러스제를 추가 확보해 올해 연말까지 1천31만명분으로 보유량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1천31만명은 우리나라 인구의 20%에 해당한다. 이를 위해 1천250억원의 예비비를 편성해 내년 예산에 반영하기로 했다.
근본적으로 치료제 품귀현상에 대응하기 위해 타미플루 생산 ‘강제실시’를 발동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강제실시는 특허권자가 아닌 제3자가 약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건강연대는 “정부가 특허법(106조)에 의해 강제실시를 발동하면 특허권자와 사전협의를 하지 않고도 바로 치료제를 생산할 수 있다”며 “WHO도 각 국가가 재량으로 강제실시권을 발동하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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