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뒤 정부·여당 안팎에서 ‘잃어버린 10년’ ‘좌파정권 10년’ 이라는 말이 나왔다. 보수층은 "잃어버린 10년을 거울삼아 이명박 정부는 성공한 정부가 돼야 한다"고 강변했다.

몇 달 사이 우리는 전직 대통령 두 명을 잃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마저 세상을 등지는 초유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비판과 비난의 표적이 사라진 정부·여당과 보수층이 이제 무엇을 발판으로 이 나라를 이끌어 갈지 걱정이 앞선다. 사실상 정적이었던 두 전직 대통령이 떠난 상황에서 차별화는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후 쌍용자동차 파업사태로 나라 안팎이 들썩였다. 노동 문제가 핵심이슈로 등장했음에도 이명박 정부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경찰만 ‘해결사’를 자처했을 뿐이다. 파국까지 몰렸던 노사가 다행히 대타협을 이뤄 냈지만 그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 쌍용차 사태를 거치면서 정부의 역할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때문에 두 전직 대통령을 떠나보내면서 이명박 정부는 그들의 공과를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이젠 ‘차별화’가 아니라 ‘대안’으로 승부해야 한다.

지난 18일 우리 곁을 떠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외환위기 이후 노사관계와 노동정책의 새 틀을 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대중 정부 노동정책의 가장 큰 성과는 ‘사회적 협의(합의)’를 형식적으로나마 정착시켰다는 것이다. 기업별 노사관계를 근간으로 삼는 우리 노사관계에서 볼 때 중앙(국가) 단위의 노사정 협의체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적지 않은 의미가 있었다. 파편화된 기업별 노사관계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시도였기 때문이다. 노동계가 제도적인 참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열렸다는 의미뿐 아니라 통제와 배제 대상에서 정책협의 파트너가 됐다는 점도 있다. 종전의 권위주의 정권의 노동정책과 차별화된 제도라고 평가받는 대목이다.

98년 초 노사정위원회는 민주노총과 전교조 합법화, 노조 정치활동의 자유, 실업자의 초기업단위노조 가입 허용이라는 합의를 이뤄 냈다. 그 후 노사정위는 사회안전망과 관련된 여러 합의를 통해 대량실업의 후유증을 줄이는 역할을 했다.

반대급부로 정리해고와 파견근로제를 합의한 노사정위원회는 우리 사회에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지적을 받았다.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금융·공공·기업·노동 등 4대 분야 구조조정은 해고의 일상화와 비정규직 양산이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금융·공공부문 구조조정을 두고 노사정위에서 정책협의가 진행됐지만 실질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노사정위가 정부의 구조조정을 위한 ‘들러리기구’에 지나지 않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정부가 추진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서 노동정책은 여전히 하위수단에 불과했다.

특히 김대중 정부는 구조조정에 저항하는 노동계의 파업을 경찰력으로 진압하는 데 급급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보다 노동자 구속자와 수배자가 많았던 이유다. 중앙 단위 노사정 협의기구를 통해 노사관계의 틀을 바꿔 보려 했던 김대중 정부도 종전의 권위주의 정권에서 해 왔던 방식을 답습한 것이다.

그러면서 김대중 정부는 권위주의 정권이 만든 기업별 노사관계는 흔들지 않았다. 산업과 업종 단위 노사가 교섭력을 집중해 구조조정의 해법을 모색하고, 중앙단위 노사정체제가 이를 발판으로 집행력을 갖는 대타협을 추진하지는 않았다. 대표성 논란이 불거지는 노사정위를 손질하는 데 주력했을 뿐이다. 권위주의 정권이 뿌리내린 기업별 노사관계에 의한 ‘신노사문화’만 선호했다. 산업별 노사의 교섭권을 뒷받침하는 법 제도 개선은 애초부터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초기업단위에 복수노조가 허용된 상황에서 산별노조와 기업별노조가 공존하는 과도기적 양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와 맞물려 ‘복수노조와 전임자임금’ 관련 법 개정도 후순위로 넘어갔다.

올해 하반기 국회에서는 또다시 ‘복수노조와 전임자임금’ 문제가 다뤄진다. 13년간 유예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임금 지급금지 문제는 '노사관계 새 틀 짜기'의 동력이 될 수 있다. 또 비정규직법 개정은 양극화된 노동시장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

노동시장 문제는 노사관계의 새 틀 짜기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이명박 정부가 두 전직 대통령이 남겨둔 숙제를 해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노동계에 우호적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우리 곁을 떠났고, 노사관계 새 틀 짜기는 이명박 정부와 우리의 몫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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