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와 함께 정국이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집권 2기 강공 드라이브를 모색해 온 이명박 정부의 행보도 관망세로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 안팎에서는 김 전 대통령의 생전 정치행보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가 하반기 국정기조와 노동정책의 변화로 이어질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 “사회적 대화를 통한 노동개혁의 원조”
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김대중 정부는 노동계와의 타협을 통한 노동개혁을 시도했다. 그것이 제도화된 것이 노사정위원회라는 사회적 대화기구다. 정권 중반까지 김대중 정부는 사회적 파트너십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노동시간 단축이나 노동관계법 개혁이 그러한 과정에서 이뤄졌다.
물론 비판 받을 지점도 명확하다. 정부 주도로 이뤄진 기업 구조조정이 재무적 관점·수익 중심·금융 주도도 진행됐고, 부작용이 뒤따랐다. 기업의 수익성 등 경영여건은 개선됐지만, 노동시장에 상시적인 고용위기가 도래한 것이다.
10년이 지나 다시 경제위기가 찾아왔다. 10년 전의 경험이 교훈으로 작용한 예가 없지 않다. 올 초 정부와 기업에서 동시에 ‘잡 셰어링’이 제안됐다. ‘일단 자르고 보자’는 10년 전 방식이 엄청난 사회적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교훈이 작용한 것이다. 하지만 임금삭감과 인턴 늘리기라는 단기처방이 이어지면서 잡 셰어링의 의도가 왜곡된 것은 문제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10년간 서민과 약자 보호, 그리고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해 마지막 보루 같은 역할을 해 왔다. 두 대통령이 모두 떠나니 굉장한 허전함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로 남북 간 경색국면이 장기화될까 우려스럽다. 요즘 말로 ‘쿨하게’ 남북 관계의 정상화를 이끈 사람이 바로 김 전 대통령이다.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당부했던 고인의 유지를 흘려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중도실용노선 등 기존 국정운영 철학을 재차 강조했다. 당장의 국정기조 변화나 노동정책 변화를 예상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  “심대한 반성 뒤 정책 전환해야”
강수돌 고려대 교수(경영학)



김대중 전 대통령은 노동정책에 관한 패러다임을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완전히 새롭게 바꿔야 했다. 근로기준법에 정리해고 관련 조항이 생기면서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 △해고 회피 노력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준 설정 △노조와 성실한 협의 등 4가지 조건이 생겼다. 엄격한 절차를 둬 정리해고가 남발되는 것을 방지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선의의 취지가 무시됐고, 재계는 ‘절차를 밟은 정리해고는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러한 정책을 사실상 계승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게 김 전 대통령의 서거는 어떤 의미일까. 김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이명박 정부가 심대한 반성을 한다거나, 정책을 전환할 것이라고는 예상되지 않는다.
정부는 지금까지 임기응변적이고 실효성 없는 대책만 내놨다. 고용 없는 성장이 문제인데 정부는 단순한 희망근로나 사회적 기업 지원 등의 처방을 내놓는 데 그쳤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같은 근원적 처방은 제시되지 않았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사회구조와 제도를 뜯어고쳐야 하는데, 달라진 것은 없다.
정부는 '뭔가 하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실효성 없는 대책에 돈을 퍼부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노동자와 서민들이 “살 만하다”, “일할 만하다”고 느끼게끔 피부에 와 닿는 변화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사안별 대응이 아닌 종합적 대책이 필요하다. 이 같은 논의를 위한 사회적 대화가 절실하다.


■  “민주주의라는 ‘밥’을 지키고자 했던 고인”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



먼저 고인의 서거에 깊은 애도를 보낸다. 고인의 서거가 당황스러운 것은 그만큼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짊어지고 있던 역사의 무게와 한국정치에 미치는 영향력이 거대했기 때문이다. 한 거인이 짊어지고 있던 시대의 무게가 사뭇 남다르게 느껴진다.
2000년이었던가. 늦깎이 노동운동가였던 나는 김대중 정부 시절 민간위탁되고 해고당한 환경미화원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을 만들어 싸우고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이 의정부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서 조합원들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의정부 방문을 막고 항의투쟁을 했던 기억이 난다.
40년을 넘게 소위 막노동, 비정규 노동을 전전하며 살아온 나에게 ‘민주주의’는 곧 ‘밥’이었다. 나의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느덧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이 돼 느끼는 민주주의는 단순한 밥보다 더 큰 것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더 정확히는 한 노동자 개인의 밥이 아니라 노동자계급 전체의, 국민 전체의 밥이며 민족 전체의 밥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2000년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나는 민간위탁 반대, 정리해고 반대를 외치며 이제는 고인이 된 분의 앞을 막으려 투쟁할 것이다. 나는 노동자의 밥을 위해 싸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인은 또 다른 밥을 위해 고난의 길을 가시리라 생각한다.


■  “두 전직 대통령의 죽음이 울린 경종”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과거 정부와 비교하면 노동계에 상당히 우호적인 입장을 보였다. IMF 외환위기 때도 노사정위원회를 구성해 노동계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려고 했다. 반면 정리해고 법제화 등은 IMF의 요구라는 불가피인 측면이 있더라도, 결과적으로 노동시장이 양극화되고 비정규직이 확대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구제금융 상환 이후에라도 노동시장 유연화와 양극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했으면 하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보수세력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 이전의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우리는 그 잃어버린 10년을 대표할 수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을 잇달아 잃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민주주의의 후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는 현 정부의 남북관계에 중요한 경종을 울렸다. 정부가 교훈을 삼고, 노동정책을 포함한 국정운영 기조를 바꿔야 한다. ‘초상만 치르다 볼 일 다 보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며 넘길 일이 아니다.


■  “외환위기 속 노동계와 긴장과 갈등 겪기도”
김종각 한국노총 정책본부장




정치사적으로 3김 시대가 지나갔다. 김대중 정부 시절 노동정책과 관련해 처음에는 한국노총과 정책연대를 맺는 등 노동계에 우호적인 입장을 갖고 출범했지만 외환위기라는 특수한 시기를 겪으면서 긴장과 갈등도 많았기에 짧게 평가하기가 어렵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가 국가적으로 큰 사건이긴 하지만 향후 현 정권의 국정기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 같다. 노동정세와 관련해서도 유서나 유언 등을 통해 노동계 현안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것도 아니고, 또 병원에서 자연사하셔서 김 전 대통령의 죽음이 큰 영향을 끼치는 변수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사견임을 전제로 예상해 보면, 조문정국이라는 국면을 통해 미디어법 통과 후 서로 대립하던 여야가 일시적으로 완화국면을 형성할 것 같다. 또 정신적 지주였던 두 전 대통령이 서거함으로써 범야권에 구심력이 작용해 느슨한 형태로의 결집을 시도하지 않을까 관측된다.
비정규직법 개정은 사실상 어려워 보이는 형국이고, 복수노조 및 전임자임금 논란은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 노동계 입장에서는 향후 개각일정 정도만 연기될 뿐 전반적인 흐름의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  “IMF 극복 노력, 현재 위기에도 도움 돼”
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

지금 생각해 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가장 적임자였다는 생각이 든다. 김 전 대통령은 (구조조정 등) IMF의 여러 가지 요구를 많이 수용했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계를 설득하는 것도 필요했는데, 경제발전과 사회발전을 형평성 있게 유지하려고 했다. 김 전 대통령께서 추진한 것이 많은 힘을 받았고 많은 도움이 됐다.
김 전 대통령 재임기간에는 IMF라는 위기상황에서도 사회보장체제가 매우 강화됐다. 최근의 경제위기도 그 당시에 마련된 토대 때문에 비교적 쉽게 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가 정국에 미칠 영향은 크게 없다고 본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와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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