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개방을 이끌어 내려면 민간교류를 확대해야 합니다. 점진적으로 개방을 유도해야지요. 개방을 압박하면 오히려 갈등만 유발할 수 있어요.”

“한반도의 통일은 동독과 서독의 사례를 잘 검토해 추진해야 합니다. 경제도 어려운데 엄청난 통일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통일을 추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지난 14일 밤 10시 울릉도 해변가. 한국노총 통일선봉대원 9명이 모여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주제로 조별토론을 진행했다. 이틀째 이어지는 빡빡한 일정 탓에 조합원들은 이미 녹초가 된 상태였다. 한국노총 통일선봉대원들은 12일 출범식을 열고 3박4일간 통일대장정을 시작했다. 통일대장정에는 한국노총 산별연맹과 단위노조 간부·조합원 60여명이 참여했다.


밤 늦게까지 이어진 조별토론

대원들은 조별토론에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통일에 대한 단상을 풀어놓았다. 강충호(48) 한국노총 홍보본부장은 “이명박 정부와 보수단체가 북한을 고립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 남북관계가 꼬였다”며 “정권이 바뀌어도 통일정책은 이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국민들이 불안해한다”고 말했다.

반면 강신유(47) 체신노조 교육국장은 “한국이 무조건 북한에 베풀기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한국 경제가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통일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의 역할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김일환(42) 전택노련 조직부장은 “한국노총이 현 정부와 정책연대를 맺었지만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해야 한다”며 “정책협약에도 통일에 관한 내용이 포함됐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정만옥 의료산업노련 연세의료원 사무국장은 “한국노총의 통일방침과 현장 조합원들의 사고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며 “순차적인 교육과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별토론은 이후 간단한 술자리로 이어졌다. 대원들은 ‘통일대장정’ 프로그램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얘기했다. 전재옥 체신노조 복지국장은 “사실 지금까지 받은 통일교육과 너무 달라 혼란스럽다”며 “통일교육과 프로그램이 너무 편향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에 반해 이번에 6번째로 통일선봉대에 참여했다는 김일환 부장은 “지금까지 교육이나 프로그램에 비하면 많이 일반화된 것”이라며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에 대해 명확한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이러한 교육과 프로그램이) 불가피한 것 같다”고 말했다.

통일대장정 키워드는 ‘대중화’

올해 한국노총 통일대장정의 키워드는 ‘통일운동의 대중화’다.
“조합원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난해부터 통일대장정의 대중화를 놓고 조직 내부에서 많은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일부에서는 통일선봉대 체제를 무너뜨린다며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양정주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장은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한국노총의 통일운동이 더욱 절실해졌다”면서도 “조합원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면서 그 중요성만큼 활동을 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한국노총 통일선봉대는 지난 6년간 전국을 돌며 많은 활동을 했다. 미국 대사관과 미군부대 앞에서 집회를 하기도 했고, 진보적인 통일·노동단체들과 연대활동도 벌였다. 하지만 참여는 저조했다. 한국노총 통일선봉대는 보통 8·15 광복절을 전후해 10여일간 활동하는 데 매년 20명 내외가 고작이었다. 참여 연맹도 금속·금융·전력노조 정도로 한정돼 있었다.

자연스럽게 통일사업을 담당하는 대외협력본부의 고민이 깊어졌다. 조합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고,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무엇보다 조합원들의 관심을 끌 수 있어야 합니다. 한 번 참여했던 조합원들이 다른 조합원들에게 통일선봉대 활동을 권장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죠. 한국노총이 지향하는 통일운동의 방향성만 흔들리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따라 한국노총은 대중적인 프로그램 속에서 통일운동의 내용을 채워 가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통일대장정으로 이름을 바꾼 것도 1년 내내 활동하기 위해서다. 양 본부장은 “통일선봉대 활동뿐 아니라 6·15, 10·4선언 관련 활동으로 이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노총은 10·4 선언을 기념해 오는 10월4일에 자전거 대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10개 산별에서 60여명 참여

일단 울릉도·독도 일대에서 진행한 올해 통일대장정은 조합원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과거와 달리 10여개 산별연맹에서 60여명이 참여했다.

“한국노총 통일선봉대가 무슨 활동을 하는지 궁금해서 참여했다”는 이창희(36) 대구한의대노조 총무부장은 “일정은 빡빡하지만 많은 사람을 만나고 색다른 교육도 받을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이 부장은 개별휴가를 내고 자비로 참여했다.

내용에서도 과거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게 대협본부의 설명이다. 12일에는 정영철 서강대 교수(북한학)가 한반도 정세에 관해 강의했고, 김종일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사무처장이 ‘북핵과 한반도 평화, 8·15 통일운동’에 대해 심도 있는 분석을 내놓았다.

13일에는 강경혜 독도박물관 학예사가 울릉도에서 ‘근대 독도·울릉도를 둘러싼 한일관계’를 주제로 강의를 진행했다. 대원들은 영화 ‘천리마 축구단’과 MBC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중 일본전범재판관편을 봤고, 울릉도를 출발하기 전에는 고성에 있는 통일박물관을 견학하기도 했다.

빡빡한 일정에 여기저기 ‘한숨’

빡빡한 일정 탓에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첫날 교육은 새벽 2시까지 이어졌다. 이튿날에는 동해 묵호항에서 3시간20분가량 배를 타고 울릉도로 이동한 뒤 곧바로 강의와 통일관련 노래배우기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과거에 비하면 올해는 진짜 편한 거예요. 예전에는 밤새는 경우가 많았어요. 숙소도 대학교나 길거리를 이용했죠. 당시 탈수기를 들고 다니며 전국을 돌았어요. 통일대장정 티셔츠를 입고 다녀야 했거든요. 저녁에 빨아 밤새 말리고 다음날 또 입곤 했어요.”

김일환 부장은 과거의 경험을 들려주며 힘들어하는 대원들을 위로했다. 다행인 점은 행사 직전까지 몰아쳤던 폭우가 그쳤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여파로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13일 오전 출항할 예정이었던 울릉도행 배가 오후로 연착됐다. 이로 인해 울릉도 성인봉 등단과 버스투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대원들이 무엇보다 아쉬워했던 것은 독도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파도 때문에 독도 접안에 실패했다. 대원들은 독도 일대를 배로 순환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 때문에 독도에서 진행할 예정이었던 통일기원제는 울릉도에서 약식으로 진행됐다.

이창희 대구한의대노조 조직부장은 "아쉬운 점이 많지만 그래도 기억에 남을 것 같다"며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통일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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