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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탈출 ⑴
  • 조건준 금속노조 정책국장
  • 승인 2009.08.10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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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탈출’이라는 주장을 하면 공장은 버려야 할 곳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공장과 직장을 모두 버리고 밖으로 나가자는 말이 아니다. 노동조합이 주목해야 할 활동이 무엇인지를 냉철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는 뜻이다. 임금의 노예, 임금실리만을 추구하는 ‘공장귀신’이 아닌 ‘잠일술 인생’에 대한 전반적인 성찰과 이를 통해 삶의 시간적 재편, 건강권에 대한 새로운 인식, 가족과 사회관계 및 문화적 영역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 가야 한다.

ⓒ 매일노동뉴스
공장으로 돌아간 이후


2001년 1천765명이라는 단일 규모 사상 최대의 정리해고에 맞서 싸웠던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을 정리한 투쟁백서의 제목은 [공장으로 돌아가자]였다. 그리고 정리해고자 중 원하는 사람들은 모두 복직됐다.

그렇다면 공장으로 돌아간 이후 어떻게 됐을까?
오히려 ‘공장 밖은 찬바람뿐’이라는 생각만이 남은 것은 아닐까? 그래서 더 ‘공장감옥’에 기꺼이 갇히는 것을 선택한 것은 아닌가?

당시 전국의 수많은 노동자와 진보적인 단체들이 쏟은 연대의 손길은 기억하고 있을까? 전국에서 달려온 노동자와 학생들이 옥살이의 고초를 겪었던 것을 기억할까? 중소사업장 노동자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투쟁기금을 모아 수억원을 지원했던 그 정성을 기억하고 있을까?

결코 후한 점수를 줄 수 없다. 해고의 쓰라린 경험은 ‘내 고용’에 대한 집착을 낳았을지 몰라도 당장 해고되고 있는 비정규직의 아픔을 떠올리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 때문이다.
지역에서 일상적인 연대의 중심이 돼 왔다는 평가도 좀처럼 듣기 힘들다.

최근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이 진행된 쌍용자동차에서 노동조합이 만든 조합원용 작은 책자의 제목은 [함께 살자]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서는 이 두 가지 제목을 눈여겨보지 않을 수도 있다.

대우차에서 정리해고됐던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지상 과제는 당연히 복직이다. 공장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은 절절한 바람이었다.
아직 정리해고가 되지 않은 쌍용자동차에서는 인력 구조조정을 하지 말라는 ‘총고용 보장’을 내건다. 일부를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살자’는 취지다.

만약 정리해고를 한다면 해고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투쟁이 생길 수 있다. 그 투쟁이 끝나고 백서를 낸다면 또다시 [공장으로 돌아가자]는 제목을 쓸지도 모른다. 너무나 당연한 반복이라고 해야 할까?

낡은 프레임과 총고용 보장

‘총고용 보장’이라는 노조의 요구는 단순히 회사에 근무하는 정규직만이 아니라 비정규직을 포함해 전체의 고용을 보장하라는 요구다. 사회적으로 확대한다면 전체 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하라는 얘기다.

그런데 이 요구는 어디까지나 ‘고용’이라는 프레임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앞서 지적한 ‘고용불안증’이라는 프레임은 노동시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경쟁자로 만들었고,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고용방패로 삼는 결과를 낳았다. 고용을 중심에 둔 이 요구는 고용경쟁을 넘어서지 못하면 모순에 빠진다.

또한 고용만 해결된다면 모든 것을 다 수용할 수 있다는 길로 갈 수 밖에 없다.
2009년 3월 한 지방신문사가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현대자동차 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고용안정에 대한 요구는 ‘생산물량이 있어야 고용이 안정된다’는 물량주의와 결합해 왔다. 생산물량을 둘러싸고 하나의 회사 안에서 서로 다른 공장 노동자끼리 경쟁하고 갈등했다.

물량주의가 공장감옥이라는 프레임과 결합하면 ‘회사 살리기’로 간다. 고용을 유지하려면 생산이 늘어야 하는데 경제위기 속에서 생산의 확장은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고용’ 그 자체가 핵심이 아니라 더 나아가 ‘어떻게?’가 중심이 돼야 한다. ‘고용보장 자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더 넓혀서 본다면 고용보장은 개발주의와 결합한다. 국민 전체의 고용을 보장하려고 하면 경제가 성장해야 하고 투자가 더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삽질경제’라고 불리는 토목건설을 통한 경기부양을 추구하는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지만, 결국은 고용을 위해 급하면 삽질을 하는 쪽으로 흐를 수 있다. 때문에 논의의 핵심은 ‘실업대란’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로 모아져야 한다.



앞에서 기업이라는 제한된 조건에서 선택은 크게 세 가지 길밖에 없으며 그중에서도 노동이 선택할 방향은 ①의 경우로 모두의 고용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대부분 임금과 후생복지가 어느 정도 후퇴한다. 결국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이다. 하지만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2009년 2월 노동부의 발표에 따르면 2008년 4분기 전체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총액은 266만1천원으로 2007년 4분기(271만9천원) 대비 2.1% 하락했다.

소비자물가 상승을 감안한 실질임금(240만2천원)은 6.4% 감소했다. 경제위기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실질임금 하락 폭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구조조정 사업장의 경우는 전체 평균보다 훨씬 심각하다. 2009년 3월 현재 법정관리에 놓인 쌍용자동차의 경우 후생복지가 전면 중단(연간 870억원)되고 연월차 수당과 임금(526억원)이 체불된 상태다. 휴업 및 노동시간의 축소로 인한 임금감소분을 포함한다면 7천여명의 노동자들이 감당해야 할 고통은 수천억원에 이른다.

경제가 어려우니 노동자들은 무조건 이러한 고통을 견뎌야 하는 것인가? 이미 바닥상태에 놓인 회사를 상대로 아무리 투쟁을 해 봤자 나올 것이 없으니 그냥 참아야 하는 것인가?

ⓒ 매일노동뉴스

구조조정 사업장 노동자들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생계비조차 감당하기 힘들다.
위 표에서 보듯이 교육비 하나만 해도 엄청나다.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학자금까지 모두 강제로 중단해 버리는 현실이다.

ⓒ 매일노동뉴스
기업 외에 다른 어떤 조건도 없다면 불가피하겠지만, 그러나 우리는 기업이라고 하는 제한된 공간에 갇혀 살고 있지 않다. 국가와 사회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따져야 한다. 기업의 절대적인 지불능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불가피하게 감수한 임금 삭감을 보충할 +α가 필요하다.

세금은 괜히 내는 것이 아니다. 세계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금융회사나 주요 업체들이 흔들리면 공적자금을 투입한다.

금융회사나 기업에 대한 공적자금을 준다고 해도 그것이 곧 국민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기 때문에 세제혜택과 같은 간접적 방식만이 아니라 개인들에게 쿠폰이든 현금이든 직접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그것은 국가와 사회의 의무다. 노동자들의 생계를 위한 지원도 마찬가지다.

구조조정 사업장의 투쟁은 단순히 노사 간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그 투쟁은 구조조정 사업장들의 노동자 생계보장을 국가에 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체불임금과 학자금을 비롯한 후생복지의 강제적 삭감, 임금하락의 상황이라면 국가에 해결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그것은 노동자의 당당한 권리다. 바로 이런 취지에서 노조에서도 국민기본생활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요구사항이 구체적이지 않다.

후생복지가 중단된 상황에서 교육비의 감면을 비롯한 각종 세금감면은 물론 생계지원을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투쟁함으로써 구조조정 투쟁은 비로소 기업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설 수 있다.

“언제 지들이 지역에 관심 있었어?”

2001년 부도난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이 매각과 정리해고를 반대하면서 투쟁하던 때의 일이다. 지역의 시민·사회단체와 노조간부들이 회의를 끝내고 몇몇 중소사업장 간부들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불만이 쏟아졌다.

“솔직히 대우자동차노조가 평소에 지역에 관심이라도 있었나요? 부품사가 어려울 때 관심도 없었으면서 지금 자기들 투쟁에 우리가 연대하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얘기하는데 정말 짜증납니다. 회의할 때 말하는 거 보세요. 미안하고 고맙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 투쟁이 중요하니 당연히 우리가 참여해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역사의 죄인이라는 식입니다.”

2009년 1월 말, 쌍용차 살리기 100만인 서명운동이 진행되고 있었다. 서명운동을 마치고 온 조합원의 얘기다.

정기훈 기자 ⓒ 매일노동뉴스
“살려 달라고 부탁하는데 왠지 느낌이 좀 그랬어요. 우리가 지역주민을 위해 한 것이 없는데…….”

평소에 대공장 노동자로서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겼을 뿐이지 지역을 위해 해 놓은 일이 별로 없어 안타까웠다고 했다.

물론 우리는 주장한다. “평택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20%가 넘고, 부품사를 포함한 조합원과 가족들이 연간 900억원이나 소비하는데…….” 이 또한 맞다.

그러나 지역주민들은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노조를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평택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있으니까 노동조합이 고통을 감수해서라도 쌍용차라는 ‘회사’를 살려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때문에 관변단체들이 주축이 돼 쌍용차 살리기 운동을 하는 것을 용인하면서도, 노동조합이 투쟁을 한다고 하면 공감하지 않는다.

“지금 분위기에서 우리가 투쟁한답시고 밖으로 나갔다간 오히려 주민들과 충돌할 것이라는 걱정이 듭니다.”
한 회의에서 핵심간부가 털어놓은 얘기다.

지역을 설득하려면 우선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평택시민과 쌍용차 노동조합 사이에 공감대는 형성되지 않는다.

경제위기 시대에 어렵지 않은 노동자와 민중은 거의 없다. 함께하지 않고서는 해결책을 찾을 길이 없다. 평소에는 외면하다가 어려울 때 불쑥 도움을 청하는 것은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다.

함께 앉고 함께 서기

지역주민들은 경제적 효과 때문에 부도난 대기업을 살리자고 한다. 하지만 대기업 노동자들의 해고 반대투쟁에 대해서는 그다지 호응하지 않는다.

반복되는 휴업과 임금체불 때문에 대공장의 노동자도 별 수 없다. 당장 쪼들리는 생계를 위해 대리운전·건설일용직이라도 한다. 또 다른 불행이다. 대리운전 노동자와 건설현장 노동자 입장에서는 경쟁자가 늘어난 것이다.

“요즘은 더 어려워요. ○○사람들까지 대리하니까 잘 불러 주지도 않아요. 경제 어렵다고 손님도 떨어졌지. ○○사람들까지 대리하지, 그래도 그 사람들은 받을 만큼 받아 왔잖아요. 그런데 잠시 어렵다고 우리까지 어렵게 돼 버렸어요.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분은 나쁘죠.”

어떻게 해야 할까?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여러 가지 고민 끝에 지방자치단체를 찾아가 당장 장학금이라도 지원받는 방법을 찾아보지만, 더 어려운 사람들도 많은데 대공장 노동자들에게 돌아올 기회는 없다.

대공장 노동자들에 대한 저항은 지역에서만 생기고 있는 것이 아니다. 2008년 금속노조의 현대자동차지부는 주야 맞교대를 주간연속 2교대로 바꾸는 것을 임단투 핵심목표로 삼았다. 1주일은 낮에 일하고 1주일은 밤에 일하는 근무형태를 심야노동을 하지 않는 주간연속 2교대로 바꾸자는 것이다.

그런데 중소부품사에서는 걱정이다. 현대자동차에서 심야근로를 없애면 생산물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대책이 없는 주간연속 2교대제는 부품사에게는 구조조정으로 다가온다.
오해도 있었지만 어쨌든 부품사들의 불만으로 인해 금속노조는 주간연속 2교대제를 전면에 내걸지 못했다. 아주 애매한 방식으로 교대제 근무를 위해 노사 간 논의를 하는 수준에 그쳤다.

실제로 2008년 현대자동차의 주간연속 2교대제에 대해 부품사 사장들과 노동자 모두가 우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대공장 노조가 일을 추진한다면 회사는 거꾸로 부품사를 동원해 노조를 공격할 것이다.

산업 차원에서도 대공장 노동자들이 혼자 일어서면 저항이 발생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다. 같이 일어서고 같이 앉아야 한다.

조건준 금속노조 정책국장  labortoday@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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