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임금 지급금지에 관한 13년 묵은 논쟁이 다시 시작됐다. 이를 규정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97년 제정된 뒤 3차례나 유예됐다.
노조법은 2002년 시행을 앞둔 2001년에 2007년으로 연기됐고, 다시 2006년 말에 2010년 1월로 미뤄졌다. 이렇게 첨예하게 이견이 대립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상한 법의 탄생=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임금 지급금지는 출발이 다르다. 애초부터 둘은 전혀 관계없는 법이었다.
먼저 제기된 것은 복수노조 문제였다. 87년 노동자대투쟁 뒤 그해 10월 기업별노조 강제조항 삭제를 중심으로 한 노조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복수노조 금지·제3자 개입금지·직권중재 조항은 살아남았다. 노동계와 재야는 88년 다시 법 개정을 요구했다.
급기야 89년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의 정치활동 허용·공무원 단결권 보장·주 44시간 노동제를 내용으로 한 노조법이 통과됐다.

그러나 통과된 법은 얼마 안 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빛을 보지 못했다. 91년 우리나라가 국제노동기구(ILO)에 가입하자 논란은 다시 불거졌다. 정부는 재계의 의견을 들어 복수노조 허용을 포함해 논쟁 여지가 있는 일부 협약에 비준을 하지 않았다.

논의가 활발해진 것은 96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구성한 ‘노사관계개혁위원회’(노개위)에서다. 노개위는 노사 간 의견차만 확인한 채 공익위원안을 제출한 상태에서 마무리됐다. 공익위원안을 두고 이광택 국민대 교수는 “노개위가 (전임자와 관련해) 확인 없이 과장된 기초자료를 사용했다”며 “편향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도 이 때 명시됐다.

노개위안을 토대로 제출된 법안을 96년 12월 여당이 새벽에 통과시키자 국민들은 분노했다. 96년 노동법 날치기 통과다. 노동자들의 저항 뒤 법은 97년 재개정 됐지만 교섭창구 단일화를 내용으로 하는 복수노조와 임금지급이 부당노동행위라는 전임자 조항은 그대로 남았다.



◇경총, 관련 없는 이슈 묶어=전혀 다른 두 법이 패키지로 묶인 것은 경총의 힘이 크다. 김영배 경총 부회장이 계간지인 ‘시대정신’에 기고한 글에서 “복수노조 허용 이상의 강력한 효과가 있는 것이 무노동 무임금 원칙과 노조 전임자에 대한 급여지급 금지를 입법화하는 방안이라 결론지었다”고 밝혔다.

또 “복수노조 허용은 교섭창구 단일화를 못하면 사용자에게 교섭의무가 없다는 것을 명시해 경영계의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했다”며 “이런 입장 정리는 복수노조 문제와 노사관계 전체의 흐름에 대한 경총의 중대한 전략적 판단”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전략적 판단이 96년 말의 노동법 파동과 이후의 노사관계의 전개 상황에서 그 타당성을 입증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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