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가 몇 년도인지, 그분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다만 ‘살고 싶다’는 갈망의 눈빛만은 뚜렷하게 기억이 납니다. 의료진도 봉사자들도 ‘당신의 생명은 여기까지입니다’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던, 그 눈빛 말입니다.”살아 있는 모든 것의 생명은 소중하다. 욕설과 폭행에 시달리고, 합동단속반에 쫓기는 몸이라도 그들의 생명은 존중돼야 한다. 공창배(48·사진) 평화사랑나눔의료봉사단 단장이 10년 넘게 이주노동자들을 상대로 의료봉사를 펼치고 있는 이유다. 지난 22일 서울 가리봉1동 한국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에서 공 단장을 만났다. 세계 최초의 이주노동자 무료병원인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이 이날 센터에서 개원 5주년 기념식을 열었는데, 공 단장도 주요 내빈 자격으로 참석했다. 그는 ‘이주민의료인권상’을 받았다.“제가 의사가 아니라서 사실 상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한결같이 찾아와 준 천사 같은 단원들과 양심 있는 의사선생님들을 대신해 수상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상 소감을 묻는 질문에 ‘예상했던’ 답변이 나왔다. 하지만 10년의 시간을 봉사활동에 쏟아 부은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터. 그는 어쩌다 의료봉사에 뛰어들었을까.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서울평화센터 등 시민단체에서 활동했던 공 단장은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연변으로 의료봉사를 떠났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인권침해 실태가 언론을 통해 조금씩 알려지고 있던 때였다. 연변 봉사활동을 계기로 그는 한국 내 이주노동자들의 건강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좋은 뜻을 가진 사람 주변에는 좋은 사람이 모이는 법. 세브란스 가정의학과 전문의 모임·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등과 의기투합해 2001년 평화사랑나눔의료봉사단을 출범시켰다. 간호대 학생들과 봉사동아리 학생들도 힘을 보탰다. 봉사단은 지난 9년간 2만5천여명의 이주노동자들을 진료했고, 약도 무료로 제공했다.“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잖아요. 우리 사회가 이주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부드러워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어려운 점이 많아요. 정권이 바뀌고 나서 우리 같은 시민단체에 대한 정부 지원이 많이 줄었습니다.”공 단장은 경기도 오산에서 스포츠용품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의 공장에는 한국인 노동자와 이주노동자가 함께 일한다. 이 공장에 반말과 욕설·차별은 없다. 공 단장은 10년째 같은 꿈을 꾸고 있다. 뜻이 같은 사람들끼리 병원을 세워 빈민과 이주노동자들을 무료로 진료하는 것이다. 그는 ‘혼자서 꾸면 꿈이지만, 만 명이 꾸면 현실이 된다’는 말에 기대를 걸고 있다. 봉사단에는 의사와 간호사·물리치료사·열혈 봉사자들이 포진해 있다. 건물만 있으면 병원을 세울 수 있다. 공 단장은 오늘도 동료들과 함께 한국판 ‘국경없는 의사회’를 만들겠다는 꿈을 꾼다. 구은회 기자 press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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