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업 사용자들이 노조탄압 수단으로 애용해 온 ‘공격적 단협 해지’가 공공부문에 상륙했다. 전국공공연구노조 한국노동연구원지부·공공서비스노조 서울상용직지부·전국공공연구노조 한국직업능력개발원지부로 이어지고 있는 단협 해지 통고 물결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 노동계의 전망이다. 단협 해지 통고. 합법적 권한 행사인가, 합법을 가장한 노조탄압인가.


■ 김주섭 한국노동연구원 연구관리본부장
단협 해지는 노조의 공격에 대한 반작용


한국노동연구원의 단체협약 해지 사태의 본질은 노조가 산별교섭 참가를 무리하게 요구했기 때문이다. 전국공공연구노조가 사용자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안을 들고 압박했기 때문에 노사 간 신뢰관계가 무너졌다. 그래서 기존 단협에서 사용자의 인사·경영권 침해부분을 되돌리기 위한 목적으로 단협 해지를 통보한 것이다. 단협 해지는 사용자가 인사·경영권을 침해당했을 때 대응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합법적으로 보장된 권한이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연구원의 이번 단협 해지 사태가 정부 차원에서 기획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억지주장이다. 만약 그렇다면 박기성 원장이 부임하자마자 단협 해지 수순을 밟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실제 지난해 11월만 해도 현 경영진과 노조 간 임금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 이후 노조가 산별교섭 참가를 압박하기 위해 원장을 찾아가 험악한 분위기를 조장하고, 피켓시위를 진행하는 등 노사관계에 균열을 낸 것이다. 단협 해지는 노조의 공격에 대한 반작용이다.
인사·경영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경영진에 대폭 이양하고 노조가 합리적인 수준에서 활동을 한다면 이번 사태는 충분히 해결될 수 있다. 다만 노조가 이를 넘어선다면 연구원도 철저히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할 것이다. 노조의 불법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말이다.


■ 이상호 전국공공연구노조 한국노동연구원지부장
노동정책 생산기관이 노조탄압 선두기관으로



한국노동연구원의 단체협약 해지는 본질적으로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이른바 ‘노사관계 선진화’와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한 핵심적 전략의 하나다. 연구기관을 지식의 하녀, 마우스탱크로 만들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더 중요하게는 노사관계 전반을 정권의 입맛에 맞게 개편하려는 광범위한 의도가 숨어 있다.
일례로 현재 한국 노동정책, 특히 노사관계 분야를 책임지고 있는 연구원이 사용자측 교섭위원으로 참석했다. 그는 ‘단협 해지를 성실교섭을 위한 하나의 이벤트로 봐 달라’고 말했다. 만약 우리나라 사용자들이 단협의 효력이 만료될 때마다 성실교섭을 위해 해지 통보라는 이벤트를 벌인다고 가정해 보자.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이 유명무실해질 것이다.
노동정책 생산기관인 연구원이 이제는 노조탄압 선두기관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박기성 원장은 단체협약 갱신 등 이번 사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다. 지금까지 교섭에 단 한 차례도 참석하지 않았다. 심지어 조정회의에도 불참했다. 사용자측 교섭위원으로 참석한 경영진은 교섭석상에서 전날 잠을 설쳤다며 졸기까지 했다.
우리의 요구는 소박하다. 단협 해지를 철회하고 원장이 성실하게 교섭에 임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다음달 6일 예정대로 단협이 해지될 경우 강도 높은 투쟁으로 맞설 것이다.


■ 김동원 고려대 교수(경영학)
단협 해지도 '전술', 중요한 것은 '저의'



정부가 “불합리한 단체협약을 개선하라”는 지침을 내렸을 때, 공공기관 사용자들이 이것을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 사용자가 법에 정해진 단협 해지 통고 권한을 행사하는 것 자체를 비판하기도 어렵다. 문제는 지금의 상황이 어떤 의도하에 진행되고 있느냐는 점이다. 법적 절차를 준수했느냐보다는, 그 내용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노동연구원이 들고 나온 단협 해지 통보는 원만한 노사관계를 저하하는 극단적 방법이다. 협상을 통해 단협 조항 하나하나를 고칠 수도 있었는데, 연구원은 단협 일괄 해지라는 과격한 전술을 택했다.
그렇다면 연구원, 더 나아가 정부가 이를 통해 얻으려는 것은 무엇일까. 연구원은 일반 공공기관과 비교할 때 그 성격이 조금 다르다. 연구원들이 학자적 양심에 비춰 각종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부에 정책참고자료를 제공하는데, 현재의 상황은 정부방침에 무조건 따라오라는 식이다. 연구원들이 정부정책의 시녀가 되는 순간, 연구원의 존재가치는 사라진다. 그럴 바에는 정부 말을 잘 듣는 공무원을 채용하면 될 일이다.
현재 노동연구원지부가 쟁의행위 중이고, 별도로 연구위원노조도 만들어졌다. 그리고 사측은 단협 해지를 통보해 놓은 상태다. 노사 모두 법적 절차를 준수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절차적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아니다. 연구원들의 비판적 목소리를 제거하려는 정부의 저의가 문제다.


■ 유병홍 사회공공연구소 객원연구위원
합법을 가장한 치명적인 노조탄압



공공기관은 정부의 노동정책을 보여 주는 시험대다. 이명박 정부는 노조 탄압을 넘어 ‘노조 무시’로 일관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 단협 해지 통보가 철저히 합법적·제도적 테두리 안에서 진행됐다는 점에서 볼 때 ‘합법을 가장한 노동3권 탄압’이라고 부를 만하다. 법 좋아하는 사람들은 “법대로 하는데 뭐가 문제냐”고 하겠지만, 법은 사회질서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지 사회구성원들이 지향하는 이상향은 아니다.
합법이나 불법의 잣대를 들이대면 해법을 찾기 어렵다. 단협 해지 통보와 같은 극단적 방식이 일반화되면, 노사관계는 더욱 피폐해지고 분쟁은 극대화될 것이다. 노동연구원 설립 20년 만에 첫 파업이 벌어졌다. 박사들까지 노조를 만들었다. 공공부문 구조조정과 맞물려 공공부문 노사분쟁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정부가 단협 해지 통보가 갖는 파장을 과소평가한 게 아닐까 싶다. 정부로서는 ‘합법적으로 진행하는데 노조가 어쩌랴?’라고 생각했을 수 있지만, 노조에게 있어 단협 해지는 노조의 존망과 직결된다. 단협이 해지되면, 단체교섭을 통한 집단적 노동조건 결정이라는 노조 본래의 기능과 역할이 무의미해진다. 기본적인 노조활동조차 보장되지 않고, 사측에 대한 노조의 견제기능도 없어진다. 단협 해지의 핵심효과는 노조활동 축소와 노조의 경영참여 봉쇄를 통한 노조 무력화다.


■ 백보현 노동부출연기관노조 폴리텍대학지부장
공공기관 단협해지, 줄줄이 이어질 것


단체협약이라는 것은 노사 간 계약이기 때문에 존중돼야 한다. 폴리텍대학 사용자도 현재 노조가 수용할 수 없는 안을 들고 나온 상태다. 조합원들의 노동환경을 열악하게 만드는데 노조가 동의한다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 협상을 해 보다 안 되면 노동위원회로 갈 수밖에 없다. 불리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기존에 사측도 동의한 협약이니 노동위도 우리 손을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의 발단은 노동부다. 노동부가 산하 기관장과 체결한 경영계약서에 단체협약 개악 내용이 포함돼 있다. 사용자측도 이 요구가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기관장들도 평가를 잘 받기 위해 총대를 메는 것이다. 노동부 뒤에는 기획재정부가 있다. 그 뒤에는 청와대가 있다. 지금은 노동부 산하 사업장만 갈등이 불거지고 있지만 조금 있으면 모든 공공기관에서 우리와 같은 문제가 생길 것이다.
우리가 처음이기 때문에 어떤 결론이 도출될지가 전체 공공기관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6월 출범한 노동부출연기관노조 차원에서 대응할 것이다. 단체협약을 통일시켜 어떤 한 기관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할 계획이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불리한 싸움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사용자측이 단체협약 해지라는 강수를 두더라도 올해 기관장 평가에는 반영되지 않을 것이다. 유효기간이 있는 만큼 올해 안에는 노사가 합의하지 않는 한 단협에 손을 댈 수는 없다.


윤여림 공인노무사(법무법인 한울)
'노사 자치주의' 위배되는 단협 해지



단체협약 해지 통보 자체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그러나 발전적인 노사관계를 저해한다는 측면에서 문제가 된다. 단협은 노사 자치주의 정신에 입각해 체결되는 것이다. 외부의 힘이 개입해 노사자치 질서를 뒤흔드는 것은 위험하다.
민간기업의 경우 사용자측의 단협 해지 통보가 노조 무력화로 이어진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개별기업 차원에서 진행된 단협 해지 통보와 공공기관에서의 단협 해지 통보가 갖는 의미는 다르다. 정부라는 공통의 사용자를 둔 공공기관 사이에 단협 해지가 유행처럼 번질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단협 해지는 그동안 노사가 쌓아올린 협상의 성과를 부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당장 근로조건의 저하가 우려되고, 사업장내 민주주의의 축소도 예상된다. 노동연구원의 예처럼 사업장 안에서 노조의 발언권을 줄이려는 방식은 노조의 사회적 기능을 약화시킬 것이다. 정부와 공공기관에 대한 노조의 견제 기능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당 공공기관 노조들이 공세적으로 투쟁을 벌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철밥통’라는 부정적 여론이 이들의 정당한 목소리마저 가로막을 가능성이 높다. 이럴 때일수록 유관노조들의 공동대응이 절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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