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는 최근 ‘비정규직(법) 관련 오해와 진실’ 자료를 펴내 “정부가 앞장서 공공부문에서 ‘기획해고’를 하고 있다”는 노동계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정원·조직·예산이 한정된 공공기관에서 인력감축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노동부의 해명은 군색해진다. 일부 공기업 노조들은 해고 시점에 있는 비정규직을 맞교환해 채용하자는 고육책까지 내놓고 있다. 대량해고가 불러온 실직의 아픔과 업무공백을 이렇게라도 줄여 보자는 것이다.


■ 이호근 전북대 교수(법학과)
더 신중한 접근, 정부의 성찰 필요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해고 문제는 노동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다. 사회적 파급력을 생각하지 않고 너무 쉽게 결정되고 추진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경제가 어려운 이유도 있겠지만, 그럴수록 정부는 모든 문제를 신중하고 어렵게 결정해야 한다. 정부의 결정이 사회 전체에 미칠 파급을 예측하면서 다양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노동시장 문제는 경제가 어려울수록 단기적 처방을 내리기보다는 중·장기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에서는 2004년에 파견을 제한 없이 풀면서 최근 들어 홍역을 앓고 있다. ‘비정규직 보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이런 과오를 따라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 공공부문 비정규직에 관한 해법 마련이 중요한 것은 공공이 민간부문을 선도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법을 만들고 민간부문에 강요만 한다면 효과를 보기가 쉽지 않고 반발도 있을 수 있다. 이전 정부는 법을 만든 이후 공공부문 비정규직 8만명가량을 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면서 형식적으로나마 구제했다. 최근에는 반대로 가고 있어 공공부문의 노동정책이 무질서하게 보일 수도 있다. 더 신중한 접근, 정부의 성찰이 필요하다.


■ 남재량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법 때문에 직장 잃는 일은 없어야


야당이나 노동계의 ‘공공기관 기획해고’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 해고가 기획됐다는 증거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의 기간제 계약해지가 두드러져 보이는 이유는 이렇다. 국민이 (사기업에 비해) 공공기관 관련 정보를 접하기 쉽고, (중소기업에 비해) 공공기관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공공기관에서 발생하는 계약해지가 눈에 잘 띄는 것이다. 조그만 기업에서 기간제 노동자 한두 명 계약해지하는 것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현행 비정규직법은 2년마다 근로자를 해고하게 설계돼 있다. 법 적용을 유예하거나 기간제 사용기간을 연장하면, 고용기간 2년을 채운 비정규 근로자를 당장에 내보내지 않아도 된다. 물론 이것이 궁극적인 대책은 아니다. 하지만 법 때문에 근로자들이 실직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내 생각엔 궁극적으로 비정규직 사용기간 2년 제한 조항을 없애는 게 나을 것 같다.
(일부 공기업 노조들이 제기한 '기간제 교체 채용'은) 법 때문에 노동시장에 왜곡이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다. 그럴 경우 기업의 생산성도 떨어지고, 경제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노동계의 ‘사용사유 제한’ 주장에 대해서는) 독일이나 프랑스도 사용사유를 제한했다가, 최근 완화하는 중이다. 노동시장이나 고용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사용사유 제한은 노동시장 안에서 새로운 형태의 규제로 작용할 수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도 맞지 않는다.


■ 고봉환 한국토지공사노조 위원장
인력운영은 기관 자율에 맡겨야


한국토지공사에서 계약해지된 비정규직은 145명이나 된다. 이들의 고용이 계속 보장될 수 있도록 공기업 노조들과 교차 채용하는 방식에 대해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한 공기업노조와 공감대를 이뤘고, 구체적인 얘기를 진행하고 있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은 구제해야 하지 않나. 물론 쉽지 않은 작업이다. 지역과 업무·인원 등이 기관 간에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성과가 있으면 다른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까지 확장할 생각이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한 가지는 업무 공백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들은 계약직이지만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이들이 나가면 공기업 선진화방안 때문에 안 그래도 인력이 감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남아 있는 직원들이 많이 힘들어진다. 업무도 차질이 생긴다. 두 번째는 정말 안타깝고 아까운 사람들이 많다. 하루빨리 일자리를 찾아줘야 한다. 노동운동 차원에서도 맞는 거 같다. 노조 입장에서는 이들을 끌어안고 가고 싶지만 정부가 정원도 예산도 배정해 주지 않는 상황에서 솔직히 어렵다.
비정규직법 관련 사태에서도 드러났지만 공공기관에 자율경영은 없다. 공공기관운영법에는 자율경영이 보장돼 있지만, 기관장이 인력운영 하나도 마음대로 못하는 시스템이다. 자율성만 보완된다면 노사가 조율할 수 있을 텐데 안타깝다. 정책적으로 공공기관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길을 열어 놓아야 한다.


■ 이완기 산재의료원 태백중앙병원 해고자
정규직으로 일터에 돌아가고 싶다


2005년 11월부터 한국산재의료원 태백중앙병원 방사선과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했다. 1년 단위로 재계약하다 지난해 7월부터 6개월에서 3개월·2개월·1개월로 계약기간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지난달 29일 병원 행정부원장이 비정규직들을 불러모았다. 행정부원장은 “같이 일하고 싶은데 정부의 방침이다, 힘이 안 돼 미안하다”고 했다.
해고된 비정규직 대부분은 이번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량해고가 정부의 '100만 해고설'을 뒷받침하기 위한 기획해고라고 생각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앞장서야 할 노동부의 수장이 100만 해고설과 비정규직법 4년 유예안 발언을 한 것은 맞지 않는 것 같다.
사실 끝까지 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산재의료원은 다른 곳도 아닌 노동부 산하기관 아닌가. 2007년에도 불과 몇 개월이 모자라 정규직이 되지 못했다. 이전 선배들은 중규직이라도 됐다. 그런데 노동부가 가장 먼저 비정규직 해고에 앞장섰다.
일부 공기업 노조가 추진하고 있는 비정규직 교체 채용은 비정규직법 유예안과 효과가 똑같다. 내 경력이 인정되지 않고 비정규직으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 아닌가. 비정규직법 유예안은 최악의 상황에서 마지막 보루다. 1일부터 산재의료원 로비에서 먹고 자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나와 동료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원래 법대로 정규직으로 전환돼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일하는 것이다.


■ 류남미 공공노조 미조직비정규실장 직무대행
용두사미된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


공공기관의 경우 정부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사전에 해고를 막을 수 있다. 그럼에도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는 비정규직 해고 사업장은 대부분 공공기관이다. 비정규직 100만 해고설을 입증하기 위한 기획해고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정부는 공공기관 선진화방안을 통해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대책은커녕 고용불안만 가중시키고 있다. 정원 감축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한다. 일률적인 10% 경비절감 지침은 비정규직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
정부 정책이 이렇다 보니 그동안 2년 이상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던 기관들마저 입장이 돌변했다. 서울대병원은 노사합의에 따라 매년 2년 이상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했지만, 최근 이를 부정하고 오히려 강경한 입장으로 나오고 있다. 정부의 정책 기조가 반영된 탓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앞장서 공공부문부터 상시·지속업무에 비정규직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정규직 채용 원칙을 확립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2006년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시행한 ‘공공부문 비정규직대책’이 용두사미에 그친 것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공공부문 비정규직대책이 실종된 것뿐만 아니라, 사용사유 제한 등의 본질적 대책이 제외돼 있기 때문이다.


■ 김형수 기획재정부 경영혁신과장
공공기관 인력운영 ‘융통성’ 절실

정부가 공공기관 해고를 기획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기획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기획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한정된 예산과 정원 같은 공공기관만의 특성이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공공기관은 그동안 정원 외 인력으로 비정규직을 사용해 왔다.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데 특별한 제약이 없었다. 그런데 현행 비정규직법은 비정규직을 2년만 사용하도록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각 기관들은 어쩔 수 없이 해당 인력을 내보내고 있다. 새로운 정원관리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각 기관들은 비정규직을 4~5년 정도 쓸 수 있기를 바란다.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자니 비용부담이 크고, 그렇다고 신규로 비정규직을 채용하자니 인력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연장하거나, 아예 기간 제한을 두지 않는 게 인력운용의 융통성을 살리는 길이다.
사실 민간기업은 파견업체를 통해 인력을 들여오고, 인력관리도 파견업체가 하고 있다. 하지만 공공기관이 그럴 수는 없다. 사용기간 연장과 같은 융통성이 필요한 부분이다.
공기업 선진화방안이 인력감축을 부추긴다는 주장은 맞지 않는 주장이다. 선진화방안은 정원을 관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원 외 인력인 비정규직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공공기관의 인건비 부담은 결국 국민 부담으로 이어진다. 공공기관 방만운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여전하다. 여야가 현명한 해결책을 제시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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