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를 ‘여성을 올바로 이해하는 해’로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영화, 잡지등 다양한 대중매체와 자료를 이용해 가까운 공무원 사회부터 의식을 변화시키겠습니다. ”

지난 1월 서울시 여성정책관에 임명된 김애량(51)씨는 “공무원 으로서 운이 좋은 편인데도 30여년간 눈물을 많이 흘렸다”며 “후배 여성들이 똑 같은 일을 겪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9급 서기보에서 출발해 별정직 1급까지 오른 김정책관은 “서울 시청내에서 아직도 여성공무원을 이름이나 직급 대신 아줌마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는 얘길 듣고 놀랐다”며 “남성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여성이 자신의 자리를 빼앗아 갔다거나 중요한 뭔가 를 양보했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김정책관은 “신설된 여성부와 행정적인 연계시스템을 구축해 여성권익을 신장시킬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겠다”며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 스스로도 고정관념이나 피해의식을 없애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화여고를 졸업하던 69년 당시 어려웠던 가정 사정으로 일자리 를 찾고 있을 때 친구가 건네준 5급 을류(현 9급) 공채시험소식 이 공직에 몸담는 계기가 됐다고 김정책관은 말했다.

정규직 여성 공무원을 찾아보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웠던 시절. 공복으로 첫발을 디딘 곳은 성북구 동소문동 사무소의 주민등록계.

“69년은 주민등록법이 첫 시행되어 일이 엄청나게 많았지요. 먹지에다 대고 10통이고 20통이고 하루 수백통씩 주민등록 등·초 본을 써대다 보면 밤에는 어깨가 아파서 잠을 못이룰 정도였습니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동료나 선배 남성 공무원들의 따가운 시선이었어요. 당장 숙직 한번을 더해야 한다는 생각에 시선이 곱 지 않았던 거죠.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하고 1년을 넘게 일요일 일 직을 전담했어요. ”

그녀는 구청으로, 시청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서울시 첫 여성 감 사과장, 첫 여성 부구청장 (서대문구)등 국내 처음 기록도 여러 개 세웠다. 그녀는 어려운 공직생활 중에도 못다한 학업을 계속 했다. 지난79년에는 서른살에 시립대 회계학과 야간학부에 입학 했다. 전체 야간학부생 중에서도 제가 제일 나이가 많았다고 한 다.

김정책관은 “그동안 유학을 준비해 미국 뉴저지의 한 대학 정부생산성연구소에 가기로 결정하고 송별회까지 마쳤는데 여성정책 관으로 발령이 났다”며 “최고의 행정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공부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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