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가 일부 탈색하는 피부백반증을 심각한 병으로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탈색 부위가 온몸을 뒤덮어 외출하기 어려운 지경이 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미관상 문제가 되고, 사회생활에 장애요인으로 작용 할 수 있다.
자동차 제조공정에서 10년간 도장공으로 일한 배진호(41·가명)씨는 피부가 흉하게 탈색되는 백반증에 걸렸다. 도장작업을 위해 사용한 페놀계 도료가 문제였다. 배씨는 90년 1월 광주광역시에 있는 완성차업체인 대영자동차(가칭)에 입사했다. 그는 트럭을 제조하는 승합차체부 도장과에서 10년7개월간 일했다.

자동차 도장공정은 전처리·전착·중도·상도공정으로 이뤄진다. 전처리공정은 공장에서 만들어진 차체에 묻은 각종 이물질과 불순물을 세척한 뒤 차체 표면을 화학약품으로 처리하는 과정이다. 전착공정은 도료가 담긴 탱크에 차체를 완전히 담가 차체 내부까지 균일하게 도정하는 과정이다. 이 두 공정은 차량에 녹이나 부식이 생기지 않도록 차체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

중도공정은 색상 도료가 잘 부착되도록 스프레이로 작업하는 과정이다. 상도공정은 차체 표면에 색상 도료를 뿌린 뒤 그 위에 투명 도료를 다시 뿌리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자외선 등으로부터 도장면을 보호하고 차량의 광택을 높인다.
배씨는 주로 전착공정과 상도공정에서 근무했다. 방독면과 작업복·보호장구를 착용하고 차체의 먼지를 떨어낸 뒤 스프레이건을 이용해 도장작업을 했다. 스프레이는 도료통과 연결돼 있었다.

배씨가 입사하고 6~7년이 지나도록 스프레이 도색 작업장에 설치된 국소배기장치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방독면이나 보안경만으로 가려지지 않는 얼굴과 목덜미 등에 도료가 묻었다. 장갑을 껴도 팔목에 도료가 묻었고, 때로는 장갑에 도료가 스며들기도 했다.
배씨는 이 같은 작업환경에서 매일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정상근무를 한 뒤, 매달 평균 90시간에 육박하는 연장근무를 했다. 배씨가 사용한 도료는 페놀계인 에폭시계·알키드계 도료였다. 여기에 백반증 유발물질이 포함돼 있다.

입사 3~4년 만에 배씨의 몸에 이상이 나타났다. 오른쪽 팔과 겨드랑이 주위에 쌀알크기로 피부가 탈색됐다. 염증이나 가려움증 같은 증상은 없었다. 그러나 탈색부위가 점점 커지기 시작, 허리·목·얼굴까지 탈색증상이 나타났다. 입사 9년째가 되자 온몸의 피부가 탈색됐다. 결국 그는 피부과를 찾았다. 치료를 받았지만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다. 대학병원으로 옮겨 전문치료도 받아 봤지만, 탈색 정도가 일부 완화될 뿐 완치는 되지 않았다.

페놀은 달콤한 냄새가 나는 연분홍색의 결정형 고체다. 주로 염료·페인트·플라스틱 제조, 직물 및 목재 가공, 제지·제약·제강·정유 등의 원료로 사용되며, 각종 합성수지·제초제·윤활유 등을 정제할 때 용매로 쓰인다.
페놀계통 도료에는 피부를 탈색시키는 다양한 화학물질이 함유돼 있다. 페놀류에 급성 노출되면 조직이 부식되고, 눈에 닿으면 실명하고, 피부에 닿으면 접촉 부위가 고통없이 하얗게 변색된다. 페놀계 도료를 취급한 뒤 이전에 없었던 피부탈색이 발생하면 화학물질에 의한 백반증을 의심할 수 있다.
직업성 백반증을 예방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호흡기 보호구와 장갑을 착용하는 것이다. 장갑은 도료가 스며들지 않는 것을 사용해야 한다. 피부 이상이 발견되면 반드시 산업의학 전문의와 상의해야 한다. 조기에 치료해야 호전된다.
페놀 취급공정에는 밀폐설비와 국소배기장치를 설치해야 하며, 6개월에 한 번 이상 작업환경측정을 실시해 페놀의 농도를 관리해야 한다. 구은회 기자

화학물질 관련 문의 :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작업환경팀(032-510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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