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볼트·철심 등 선재제품을 제조하는 업체인 (주)대영기공(가칭)에서 10년간 근무한 최원숙(56·여·가명)씨는 콧속에 암이 생겼다. 금속제품을 연마하기 위해 금속가공유를 다루면서 ‘다핵방향족탄화수소(PAHs, Polynuclear Aromatic Hydrocarbons)’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것이 병을 키웠다.

최씨는 농사를 짓고 화장품 외판원으로 일하다 87년 부산에 있는 대영기공에 입사했다. 그는 연마반에서 근무하며 탭핑기를 이용해 나사나 볼트의 표면을 갉아내는 일을 했다. 작업은 보통 오전 8시30분에서 오후 6시까지 이어졌고, 물량이 많을 때에는 수시로 야근을 했다.

탭핑기를 다루는 과정에 금속가공유가 사용됐다. 탭핑유·절삭유·윤활유와 같은 금속가공유는 금속의 냉각·윤활·부식방지 등을 위해 쓰인다. 대영기공에서 사용한 금속가공유는 광물류의 함량이 90% 정도였고, 천연기름과 첨가제가 섞인 비수용성 제품이었다. 이 제품에는 다핵방향족탄화수소가 함유돼 있었다.

최씨가 금속을 연마하는 과정에서 기름이 튀고, 냄새가 심하게 났다. 최씨는 입사 초기 심한 두통과 구토증세에 시달렸지만 곧 익숙해졌다. 그는 아무런 보호구 없이 기름에 젖은 장갑을 낀 채 일을 했다. 금속가공유에 포함된 다핵방향족탄화수소가 최씨의 호흡기와 피부에 지속적으로 노출됐다.

어느날부터 최씨는 코를 풀면 피가 섞여 나오기 시작했다. 비염인줄 알고 이비인후과에 찾아가 치료를 받았지만 차도가 없었다. 그러다 회사를 그만 둔 98년 초 증상이 심해졌다. 귀에도 이상이 와, 양쪽 귀에서 소리가 나고 귀가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코막힘 증세도 동반됐다.

병원을 다녔지만 증세는 점점 더 심해졌다. 결국 다른 병원에서 다시 진찰을 받게 됐고, 코의 등쪽 부분에 혹이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다시 큰병원으로 옮겨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비인강암’인 것으로 밝혀졌다. 최씨는 평소 호흡기 관련 질환이 없었고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결국 금속가공유를 다루면서 다핵방향족탄화수소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것이 원인이 돼 암에 걸린 것이다.


다핵방향족탄화수소(PAHs, Polynuclear Aromatic Hydrocarbons)는 2개 이상의 벤젠핵이 결합한 벌집모양의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고 독특한 향기를 내는 방향족 화합물의 일종이다.
PAHs는 무색 또는 흰색의 고체이며 주로 유기물이 불완전 연소할 때 발생한다. 수백 가지 종류가 있는데 그 중 일부는 발암물질로 알려져 있다. 알루미늄 생산, 코크스 제조, 주철, 주강 주물업, 콜타르 관련상품, 카본블랙 취급공정, 콜타르 함유 도료를 취급하는 도장공정, 광물류가 포함된 금속가공유 취급 및 습식연마 공정 중에 주로 노출된다.
PAHs 호흡기나 피부를 통해 체내로 흡수되며 아주 적은 양으로도 암을 유발하거나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열처리 노동자의 후두암, 금속가공유 습식연마공의 비인강암이 직업성 질환으로 인정된 바 있다. PAHs 취급 공정에는 반드시 밀폐설비나 국소배기장치를 설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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