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뉴딜’이라고 정부가 자랑한 희망근로사업이 시행 한 달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저소득 계층과 죽어 가는 지역경제에 ‘희망’을 주고 있다는 평가와, 오히려 절망을 안겨 주는 ‘졸속행정’이라는 극단적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98년 외환위기를 능가하는 경제위기에 희망근로사업이 취약계층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까. 아니면 6개월만 반짝하고 절망 내지 허망으로 끝날까.


지난 16일 행정안전부는 희망근로 상품권 사용처 확대를 포함한 희망근로사업 개선안을 발표했다.
6월 1일 사업이 시행된 뒤 보름 만에 나온 것으로, 비교적 발 빠른 대처였다. 뒤이어 행안부 장·차관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잇따라 지방순회를 시작했다. 희망근로사업 시행 실태를 보고 애로사항을 수렴하기 위해서다.

이런 모습은 두 가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정부가 희망근로사업에 ‘사활’을 걸었지만 ‘졸속’으로 추진했다는 점이다.
시행 초기 문제점으로 가장 많이 지적된 것은 △10%대에 육박하는 중도 포기자 속출(25일기준 11.4%) △기존 공공근로사업과 차이가 없는 단순노동 중심 △일자리 이동 현상에 따른 농번기 일손 부족 △상품권 지급과 사용제한에 따른 참가자들의 불만이었다.

참가자격을 최저생계비의 120% 이하 소득, 재산 1억3천500만원 이하로 제한했지만 5억~6억원짜리 아파트에 사는 시민들이 참가하는 일까지 생겼다. ‘중산층의 용돈벌이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중산층 용돈벌이’ 가능성 여전

행안부는 지자체별로 희망근로 인력을 농사일에 투입하거나 농번기에 일시적으로 희망근로사업을 중단하는 대책을 내 놓았다. 신청자의 적성이나 능력·희망에 따라 배치해 중도 포기자 발생을 줄이기로 했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에 제한했던 상품권 사용처는 지방자치단체에 따라 노점상·병원·약국으로 확대했다. ‘저소득층 일자리 만들기’라는 사업의 취지를 무색케 했던 무자격자들의 참가에 대해서는 재산과 소득을 허위신고한 신청자를 색출해 강제퇴출한다는 방침이다. 허위신고하지 않았더라도 사회적 통념상 재산이 많다고 판단되면 스스로 그만두도록 유도하기로 했다.

풀뽑기 등 단순 일자리 중심의 사업은 지자체별로 재료비를 추가 투입하는 방법으로 이달 말부터 보다 생산적인 사업으로 바꾸도록 지시했다.
행안부는 시행초기 사업을 급하게 추진하다가 여러 문제점들이 발생했기 때문에 조만간 사업이 제자리를 잡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우려는 여전히 남아 있다. 행안부는 사업 초기에 참가자격을 정해 공지하면서 각 지자체별 경제사정에 따라 유연성을 적용하도록 했다. 행안부 개선대책이 발표된 지금도 이런 방침은 유효하다. 때문에 ‘취약 계층’이나 ‘저소득 계층’이 아닌 무자격자들이 들어올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게다가 각 지자체는 사업 참가자들을 선별할 때 재산보유액을 기준으로 절대평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평가를 하고 있다. 정원이 부족해지면 기준 이상의 재산을 보유한 주민도 선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같은 값의 주택이라도 도심과 농촌에서의 재산가치는 다르다”며 “1억3천500만원이라는 일률적 기준으로 저소득층과 중산층을 구분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사업이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초단체 의원을 지냈던 민주노동당 관계자는 “기초의원들이 자격 없는 주민들을 공공근로사업에 참가시킨 뒤 선거 조직원으로 만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희망근로사업도 비슷하게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공공근로와 희망근로의 차이

정부가 희망근로사업 개선 대책으로 ‘생산적인 사업 발굴’을 강조하는 것은 기존 공공근로사업과의 차별화를 위해서다.
공공근로사업은 외환위기에 저소득층 실업자에게 집중적인 일자리를 제공하는 차원에서 98년 5월부터 시작돼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98년에는 5~12월 2단계로 나눠져 총 1조444억원의 예산이 투입돼 39만5천명의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희망근로사업은 이달부터 12월까지 총 1조7천억원의 예산을 쏟아 부어 25만명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목표다.
두 사업 모두 경제위기를 맞아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단기적인 일자리 만들기를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희망근로사업이 공공근로사업에 비해 차이가 있는 것은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목표가 추가됐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월급의 최소 30%는 상품권으로 지급하고 있다. 급여로 지급된 돈이 채무변제로 금융권에 흘러가는 것을 막고, 지역시장의 매출을 올리기 위한 것이다.

또 다른 차이점은 공공근로사업이 숲 가꾸기·휴지 줍기·잡초 뽑기 등 청소위주의 단순 노동이었다면 희망근로사업은 ‘생산성’ 있는 사업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자리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민환경 정비나 재해예방·공공시설물 개보수 등 주민의 편익을 위해 실체가 남는 사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희망근로사업을 시행하면서 △백두대간 보호사업 △주거환경이 취약한 지역에 대한 동네마당 조성 사업 △공장진입로 확·포장 사업 △자전거 인프라 개선 사업 등 ‘4대 랜드마크 사업’을 내세웠다. 또 각 지자체별로 특성에 맞는 사업 개발을 지시했다.

10년 동안 “생산적인 사업을”

정부가 내세우는 ‘생산성 있는 사업’은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니다. 노동부가 펴낸 2000년 노동백서를 보면 99년 공공근로사업에서는 △하천제방 보수 등 공공 생산성 사업 △사회복지지설과 공공시설 개보수 사업 등의 공공서비스 지원사업이 시행됐다고 나온다. 현 정부가 지향하는 목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보다 생산적인 것으로 언급되는 일들은 공공근로사업보다 높은 강도의 노동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고령자나 여성들이 적응하기 어려워 중도 포기자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정부도 이런 어려움을 인정하고 있다.

98~99년 진행된 공공근로사업에도 비슷한 문제점이 나타났다. 노동부는 고학력 미취업자 위주로 진행된 중앙부처 사업과는 달리 지방 공공근로사업에 대해서는 “고령자나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생산성 있는 사업을 추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평가했다.
사업에 참가하는 고령자 비율은 더 늘었다.

 
공공근로사업 참가자들 중 50대 이상 비율을 보면 98년 1단계(41.2%)·99년 1단계(32.4%)·2000년 1단계(43.7%)로 조금씩 늘었다. 그런데 올해 희망근로사업 참가자들을 보면 50대 이상이 71.8%로 대폭 늘었다. 65세 이상은 30.3%나 된다.
98년 1단계 공공근로사업 당시 35.8%였던 여성 참가 비율도 희망근로사업에는 57%로 늘었다.

10년 동안 비슷한 사업을 추진하면서 비슷한 이유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셈이다. 생산적인 사업 발굴에 성공하더라도 정부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노동강도 강화로 노인과 여성들의 중도 포기가 늘어나면 지역경제 살리기라는 또 다른 목표에 어려움을 줄 수 있다. 기획재정부 인력정책과 관계자는 “생산성 있는 사업 발굴도 좋지만 너무 치중하면 참가자들이 줄어 소비진작에는 오히려 역효과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6개월 뒤는? … 장기대책 필요”

노동부가 발표한 99년 고용사정에 따르면 전체 취업자 중 임시·일용직 비중이 전년 28.7%에서 31.9%로 높아졌다. 반면 상용근로자 비중은 전년 32.3%에서 29.8%로 낮아졌다.
임시직이 상용직을 상회한 것은 1989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노동부는 공공근로사업을 대폭 확대한 것과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선호한 것이 주원인이라고 분석했다.

희망근로사업이 단기적인 경기부양·일자리 창출이라는 효과도 있지만 고용구조 악화를 부를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주고 있다.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장기적인 빈곤탈출 사업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4일 국무총리실 주재로 열린 고용 및 사회안전망 태스크포스 회의에서 보건복지가족부 관계자는 “자활근로사업은 빈곤 탈출을 위한 장기프로젝트로 진행되고 있다”며 “자활근로에서 한시적인 희망근로로의 이동이 용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복지부가 최근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활근로에 참가하는 기초생활수급권자 중 20%가 희망근로에 참여하려는 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소속 구청에서 사회복지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한 공무원은 “자활근로사업보다 희망근로사업의 임금이 더 높은 것에 불만을 가진 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희망근로사업이 끝나는 내년 1월부터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사업 참가자들의 급격한 소득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6개월 뒤의 경기여건을 잘 살펴 본 뒤 결정하게 될 것”이라며 “상황이 좋지 않은데도 대책없이 사업을 중단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정부가 희망근로사업과 같은 단기적인 처방보다는 장기적인 일자리 창출에 힘써야 한다는 지적이다.

송재영 민주노동당 민생희망운동본부장은 “실업자들에게 지속적인 일자리를 제공해 주겠다는 목표가 없으니 시행초기부터 여러 문제점이 발생한 것”이라며 “취업훈련이나 사회적 일자리 창출에 투자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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