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이영희 노동부장관의 ‘비정규직 100만 고용대란설’ 발언에서 출발한 비정규직법 개정 논란이 6월 임시국회의 태풍이 됐다. 비정규직법 개정 논란은 그동안 비정규직 실직 규모 논란과 상임위 상정 여부를 둘러싼 대립 이외에 거론된 내용이 없다시피 했다. 사회적 대화도 꽉 막힌 상태였다.

정치권 관심사안 부각돼

이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지난 1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여야 3당 간사와 양대노총 위원장이 참여하는 ‘비정규직법 5인 연석회의’가 구성됐다. 5인 연석회의는 현 정부 들어 최초의 사회적 대화 기구로 관심을 모았다.

여야 3당 간사와 양대노총 위원장은 1차 회의에서 “여야 및 양대노총 모두 당리당략을 떠나 비정규 노동자 보호를 위한 논의를 시작한다”며 △비정규직법 개정(사용기간·사용사유·사용횟수 제한, 정규직 전환 의무비율제도 도입, 차별시정) △정규직 전환지원금 △파견·외주·용역·도급·하청 등 비정규 노동자 보호대책 △특수고용 노동자 보호대책을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다만 6월 국회가 임박한 만큼 비정규직법 개정과 정규직 전환지원금을 긴급의제로 설정했다. 나머지 의제는 올해 연말까지 논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연석회의의 한계는 금세 드러났다. 정치권 관심사인 사용기간과 정규직 전환지원금 논의만 밖으로 새어 나올 뿐 노동계가 주장했던 사용사유와 사용횟수 제한 등은 공허한 메아리가 됐다.

‘낮과 밤’이 달랐던 여야 3당

연석회의의 ‘낮과 밤’은 달랐다.
양대노총 위원장은 26일 기자회견에서 “연석회의에서 논의되지 않은 유예 합의설 등이 언론에 유포되고 있다”며 “양대노총을 들러리로 세우려는 것이냐”고 반발했다.
낮(연석회의)에는 없었던 내용들이 밤(여야 3당)에 따로 논의됐다. 여야 3당은 시행 유예를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했고, 이것이 언론에 유포되면서 기정사실로 만들어 가려는 의도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특히 한나라당은 연석회의를 하면서도 ‘3년 유예’를 당론 입법(안상수 대표발의)으로 발의했다. 더구나 당론 논의시 2년 유예가 대세였음에도 갑자기 ‘3년’이 튀어나온 것은 한나라당 내에서도 “뜬금없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속 보이는 협상용 카드였다.
실제 ‘3년 유예’는 연석회의에서 한나라당이 협상용 카드로 사용했다. 그렇지만 조원진 한나라당 간사는 “연석회의 합의사항이 우선”이라면서 유예기간을 줄일 수 있음을 시사했다.

26일 오전 일부 언론에서는 ‘1년6개월+전환지원금 1인당 25만원 합의’라는 ‘오보’가 나가기도 했다. 이날 양대노총 위원장이 즉각 국회로 달려가게 만든 배경이다. 이는 근거없는 것은 아니다. 여야 3당의 협상안을 ‘짜깁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여야 3당은 연석회의 밖에서 △한나라당은 ‘2년 유예+전환지원금 1조원(2년치)’ △민주당은 6개월 유예(준비기간)+전환지원금 3조6천억원(3년치)’ △자유선진당은 ‘1년6개월 유예+전환지원금 추경집행 뒤 추후검토’ 안을 각각 던진 상태다.

민주당 ‘준비기간(유예) 6개월’ 제시

애초 한나라당은 ‘3년 유예와 전환지원금 8천805억원’을 제시한 바 있다. 3년은 당론이고 8천805억원은 지난 추경 논의시 정부·여당이 합의했던 내용이다.
그런데 협상 과정에서 한나라당이 26일 유예기간을 3년에서 2년으로 줄이고 전환지원금을 1천200억원가량 상향 조정한 1조원을 제시했다. 이에 민주당이 “전환지원금 적용과 현행법 문제 보완을 위해 준비기간(유예)을 6개월 두자”라는 입장을 같은날 공식화했다. 전환지원금 3조6천억원 요구는 유지했다.

선진당은 애초 ‘1년 기간연장’안을 제시했으나 한나라당이 유예 기간을 일부 줄이고 전환지원금을 확대하는 안을 내놓자 1년6개월 유예로 최종안을 정리했다.
정부는 6월 국회 개정안 처리를 지속적으로 압박했다. 이영희 노동부장관과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은 24~25일 잇따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찾아 ‘100만 고용대란설’을 주장하며 “6월 내에 개정안을 처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KBS·농협중앙회 등 공공기관을 앞세워 다음달 사용기간 2년이 만료되는 비정규 노동자의 계약해지에 앞장서 논란이 되고 있다.

미디어법에 희생될까

정치권의 이러한 태도에 양대노총의 분노가 결국 폭발했다. 앞에선 연석회의를 열어 놓고 뒤에서는 ‘3년 유예’ 당론 입법을 하는 한나라당이 “연석회의 합의가 우선”이라고 말하기에 화를 누그러뜨리고 앉아 있었는데, 여야 3당이 ‘밤’에 ‘딴 짓’을 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양대노총 위원장은 “여야 3당이 시행유예만을 고집하며 연석회의 차원의 합의를 거부하고 법 개정을 강행한다면 그 책임을 정치권이 져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26일부터 단독국회를 열고 29일과 30일 사이에 비정규직법을 처리하겠다고 공언하면서 정치권의 셈법은 더욱 복잡해졌다. 시기상 비정규직법과 미디어법이 패키지로 묶였기 때문이다. 제1야당인 민주당 내부의 혼선도 큰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이 비정규직법 시행 유예에 유연한 이유는 미디어법과의 관계 때문이다. 미디어법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 현재의 민주당 지도부의 입장이기에 마지막까지 비정규직법 협상 여지를 남겨두고 있는 상태다. 자칫 비정규직법이 희생될 수 있다는 의미다.

여야3당·양대노총 해법 있나

26일 열린 6차 연석회의는 사실상 파행 속에 끝났다. 양대노총이 ‘유예안 철회’를 요구하며 철수했기 때문이다. 반면 여야 3당 간사는 일단 협상의 여지를 열어 놨다. 양대노총을 참여시킨 가운데 28일과 29일 연석회의를 열어 합의 도출을 위해 최대한 노력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합의에 이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여야 3당이 유예안에 미련을 버리지 않는다면 양대노총의 동의는 얻지 못할 것이다. 설사 양대노총이 빠진 채 유예를 골자로 한 ‘3자 합의’가 되더라도, 이미 추미애 환노위원장이 양대노총 위원장에게 “5자 합의가 상정의 전제”라고 약속한 만큼 정상적인 절차를 밟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결국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이 불가피한데, 한나라당이 불확실한 ‘100만 고용대란설’만 믿고 노동계의 반발을 무릅쓰며 강행처리하기에는 부담이 크다는 전망이다.

연석회의가 아직 종료된 것은 아니나 ‘유예안’이 핵심인 이상 정상적 운항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런 가운데 여야 3당과 양대노총이 어떤 해법을 찾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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