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뉴스' <일과 건강>(www.safedu.org)의 칼럼입니다. 콘텐츠를 제공해 주신 <일과건강>과 필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편집자>-------------------------필자는 지난 4월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석면회의(Asian Asbestos Conference 2009)에 참석했다. 이 글은 회의에서 만난 미국의 스티븐 카잔(Steven Kazan) 변호사를 통해 알게 된 미국 석면소송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시아석면회의는 홍콩에 본부가 있는 ‘아시아석면감시센터’(Asia Monitor Resource Center, AMRC)가 주최했다. 회의는 아시아 각국의 대표가 자국의 석면 사용상황과 피해규모에 대해 보고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각국의 피해자들이 직접 피해경험을 발표했다. 참가자들은 아시아에서 석면사용을 전면금지하기 위해 ‘아시아석면추방네트워크’(the Ban Asbestos Network of Asia)를 발족했다. 회의 중간에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석면관련 소송을 맡고 있는 스티븐 카잔 변호사가 미국의 석면피해와 피해보상에 대한 발표를 했다. 카잔 변호사는 석면피해자들을 대리해 30년 이상 여러 건의 석면소송을 진행했다. 카잔 변호사에 따르면 미국의 대형 석면회사들이 계속되는 석면소송으로 파산할 지경에 이르자 각 회사별로 석면피해보상기금(Trust)을 만들었다. 석면회사들이 만든 석면제품에 노출돼 피해를 입은 사람은 이곳에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 미국 회사들, 석면피해보상기금 만들어 재판으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경우 보상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반면 보상기금에 청구를 할 경우 피해자들이 석면에 노출된 사실과 석면관련 질병에 걸린 사실을 증명하면 짧은 기간에 비교적 간단한 심사를 거쳐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보상액은 질병 종류에 따라 일률적으로 정해진 액수를 지급하는데 재판으로 받을 수 있는 금액보다는 적다. 그렇더라도 소송에 걸리는 기간이나 소송비용 등을 고려해 볼 때 피해자에게 크게 불리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필자는 흥미로운 분야라서 처음에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카잔 변호사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점점 그의 말이 빨라지고 모르는 단어가 계속 나오자 나중에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게 됐다. 영어공부 안 한 것을 혼자 책망하다가 아예 귀를 닫아버렸는데 카잔 변호사가 소송사례를 설명하면서 ‘Chungmu’라는 단어를 반복해 이야기하자 갑자기 귀가 번쩍 뜨였다. ‘충무함’에 쓰인 미국산 석면 보일러 카잔 변호사는 미국에 밥콕앤윌콕스사(Babcock & Wilcox)라는 산업용 보일러를 만드는 회사가 있는데 각 국의 군함에도 이 회사의 보일러가 설치됐다고 했다. 이 보일러에는 석면이 포함돼 있다. 밥콕앤윌콕스사는 ‘Chungmu’라는 배에도 보일러를 설치했는데 만약 그 배의 보일러실에서 근무한 사람이 중피종 등 석면질환에 걸렸다면 밥콕 앤 윌콕스사의 석면피해보상기금(The Babcock & Wilcox Asbestos Trust)에 보상금을 청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카잔 변호사 자신은 ‘Chungmu’라는 배가 어느 나라 배인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미국 사람인 카잔변호사가 ‘충무함’을 알리가 없다. 그는 해군에서 근무한 적도 없다. 필자도 당시에는 충무함이라는 군함이 있었는지 몰랐다. 하지만 만약 이 세상에 충무라는 이름을 가진 배가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우리나라 배일 터이므로 카잔 변호사에게 충무함은 한국군함일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해줬다. 그러자 카잔 변호사는 필자에게 충무함에 근무했던 피해자가 있는지, 충무함이 아직도 운항 중인지, 만약 해체했다면 어디서 해체했고 선박해체에 참여한 노동자 중에 석면피해를 입은 노동자가 있지는 조사해 볼 것을 권유했다. 이에 필자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고 홍콩에서 중요한 숙제를 받아서 귀국했다. 우리나라 발전소 곳곳에 석면 보일러 사용 충무함은 43년 미국에서 건조돼 63년 우리 해군이 인수받은 우리나라 최초의 구축함이다. 이 배의 보일러가 바로 밥콕앤윌콕스사 제품이었다. 충무함은 해군의 주력 전투함으로 활동하다가 93년 퇴역해 현재 전쟁기념관에 복원돼 전시 중이라고 한다. 한편 밥콕앤윌콕스사는 충무함뿐 아니라 우리나라 발전소, 정유공장 등 여러 사업체에 보일러를 판매했다. 다음은 밥콕앤윌콕스사가 자사의 보일러(석면함유)를 사용한 장소라고 밝힌 곳이다. <표 삽입> 밥콕 앤 윌콕스사의 석면함유 보일러가 사용된 곳 미국, 66년 첫 석면제품피해소송 미국에서는 66년 텍사스 주에서 클로드 톰플레이트(Claude Tomplait)라는 배관공이 존스맨빌사(Johns-Manville) 등 11개 석면제품생산회사를 상대로 최초의 석면제품피해소송을 제기했다. 20년대부터 석면공장의 노동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산재소송을 제기하기는 했지만, 완성된 석면제품의 하자를 문제 삼아 제품 사용자가 제조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톰플레이트는 존스맨빌사 등이 만든 절연제품으로 배관작업을 하던 중 제품에 포함된 석면에 노출돼 석면폐증에 걸렸다고 주장했다. 3년에 걸친 소송 도중 5개 회사는 소송 중에 원고와 합의를 했다. 6개 회사만이 끝까지 재판을 했지만 판결 결과는 원고 패소였다. 어쨌든 5개 회사가 합의에 응했다는 것은 제조사들이 석면피해에 대해 일정 정도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69년에는 톰플레이트의 동료였던 클래런스 보렐(Clarence Borel)이 석면 때문에 중피종에 걸렸다면서 석면제품 생산 회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에는 승소해 약 8만 달러의 손해배상금을 받았다. 이 사건 이후 70년대 이래 미국에서는 봇물처럼 석면소송이 제기됐다. 결국 대형 석면회사들이 법원에 파산·회생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잇단 손해배상에 파산 신청해존스맨빌사는 1879년 당시 21세였던 헨리 존스(Henry W. Johns)라는 청년이 처음 시작한 회사로 세계 최대 석면제품생산회사이다. 헨리존스는 40세가 되던 1898년에 석면폐증으로 사망했다. 하지만 그가 만든 회사는 수십년간 석면제품을 만들었고 아직도 그로 인한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 82년 존스맨빌사는 한 사건에서 3백만 달러를 손해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당시 1만6천5백개의 소송이 맨빌사를 상대로 진행 중이었고 회사의 한 달 소송비용만 2백만 달러였다고 한다. 계속되는 다른 소송에서도 패소를 할 것이 확실해지자 존스맨빌사 경영진은 82년에 파산·회생신청을 했고 이후 20년간 77개 회사가 그 뒤를 따랐다. 그 중에는 밥콕앤윌콕스사, 써스톤사(C. E. Thurston & Sons) 등 쟁쟁한 회사들이 포함됐다. 석면활동가인 배리 캐슬먼(Barry Castleman)에 따르면 지금까지 미국에서 석면회사들이 지급한 손해배상액만 7백억 달러(84조원)에 달하고 앞으로 지급할 금액까지 합하면 석면으로 인한 배상액이 총 2천억 달러(240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2002년 말 현재 미국에서 진행 중인 석면제품 피해소송은 25만건 정도라고 한다. 업무상 재해·환경성 피해자 구제 방법은? 석면이 일으키는 질병은 진폐증의 일종인 석면폐증·폐암·중피종 등이다. 중피종은 폐를 둘러싼 얇은 막인 중피(中皮)에 발생하는 암이다. 중피종은 석면에 처음 노출된 후 30년에서 35년 후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 불과 1년에서 2년 정도만 석면에 노출돼도 수십 년 후 중피종이 발생할 수 있다. 폐암과 중피종은 이미 석면폐증이 있는 경우에 더하여 발생하기도 하지만, 석면폐증 없이 폐암이나 중피종만 발생하기도 한다. 특히 중피종의 70%에서 90%는 석면과 관련된 것으로 본다. 연관성이 100%라는 연구보고도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피종 사망자수는 2000년 21명에서 2003년 34명, 2006년엔 57명으로 늘었다. 기록이 확실치는 않으나 우리나라는 대체로 93년, 94년께부터 석면폐증 등 석면관련질환이 업무상재해로 인정받은 것으로 보인다. 93년에 석면방직공장에서 18년간 근무한 노동자에게 발생한 악성중피종이 산재로 승인받은 적이 있다. 2007년 12월에는 석면에 노출돼 숨진 노동자의 유가족이 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법원이 석면피해에 대한 민사상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70년부터 20년간 부산 연산동에서 가동됐던 석면방직공장 제일화학. 76년부터 2년간 이 회사에서 일한 노동자 원점순씨는 퇴사한지 26년이 지난 후 악성중피종에 걸려 2006년 사망했다. 2007년 12월 민사소송에서 승소한 원고측이 바로 원점순씨의 유가족이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석면피해에 대해 사업주의 민사책임(업무상 재해로 인한 산재승인은 그 전에도 있었음)을 인정한 판결이었다. 현재 제일화학 노동자 18명과 공장 근처에 장기간(3년~7년) 거주했다가 중피종으로 사망한 주민 2명의 유족이 회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처럼 석면에 노출된 노동자측이 제기한 산재소송과 민사소송에서는 석면피해를 인정받은 사례가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석면제품을 사용하다가 또는 생활환경 중 석면에 노출된 일반국민의 석면 피해가 인정받은 사례는 없다. 그러나 최근 석면에 노출된 피해사례가 확인되면서 머지않아 이와 관련된 판결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일반인 피해사례 인정 판결 나올 듯 일제 때 아시아 최대의 석면 광산이 있었던 충남 보령과 홍성지역 인근 주민 215명에 대해 흉부방사선검사를 한 결과, 절반이 넘는 110명에서 흉부 이상 소견이 보였다. 이중 56명은 석면광산 종사자였고 54명은 비종사자였다. 석면질환이 의심된 주민 중 95명을 다시 CT검사한 결과, 55명에게서 석면폐증 소견이 나왔다. 하지만 현재 충남 보령과 홍성지역 주민들은 피해보상을 받을 길이 막막하다. 주민들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을 적용받지도 못하고 탄광도 폐업한 상태라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회가 나서서 특별법을 제정하려고 하지만 정부는 예산 때문에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한편 충남지역 주민들은 석면 때문에 이 지역 농산물 값이 떨어지지 않을지 걱정하고 있다. 석면은 다량을 호흡기로 흡입했을 때 문제가 되는 것이지 농산물 섭취는 석면위험과 큰 관련이 없다. 지난 6월에는 석면이 포함된 베이비파우더를 사용한 아기의 부모 등 84명이 국가와 제조회사를 상대로 석면집단소송을 제기했다. 베이비파우더의 원료는 탈크(Talc)라는 광물인데 이것이 석면에 오염된 것이다. 제조사들은 피부에 직접 사용하는 베이비파우더를 안전하게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는데도 인체에 유해한 원료를 사용했고, 국가는 석면이 포함된 물질을 수입·사용하는 것을 관리·감독해야 할 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유해물질에 많이 노출될수록 질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발암물질은 소량에 노출돼도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아직까지 베이비파우더 때문에 석면폐증 등 질병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평생동안 질병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염려를 안고 살아야 하므로 그러한 정신적 피해에 대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년대부터 석면광산 채굴을 시작해 70년대부터 사회전반에서 석면을 사용했다. 아파트와 일반 주택·학교건물·다중이용시설 등 지금까지 지어진 건물 대부분에서 석면이 들어있는 건축자재를 사용했다. 석면피해사례가 늘어나면서 95년을 정점으로 석면수입량과 사용량이 줄어들었고, 올해 1월부터 석면과 석면을 0.1% 이상 함유한 제품을 제조·사용하는 것이 전면 금지됐다. 석면질환의 잠복기가 10~30년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는 2010년부터 환자수가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충무함 보일러실에 근무하셨던 분, 충무함 해체에 관여하셨던 분을 비롯해 위 공장에서 보일러 설치·유지·해체 작업에 종사했거나 그런 분을 아시는 분은 필자에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법률사무소 의연 02-598-4600)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석면폐증이나 흉막반 등이 발생해 고통을 받으실 수도 있습니다. 사진1= 미국 존스맨빌사의 광고 아래 부분에 석면 제품의 다양한 쓰임새와 함께 "당신이 석면을 생각할 때 그것은 존스맨빌을 생각하는 것"이라는 문구가 있다. 그만큼 존슨맨빌사의 석면이 널리 쓰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사진출처=www.asbestosservices.com 사진2= 석면은 소량을 흡수하더라도 석면폐증·폐암·중피종 등 석면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사진출처= blog.mirror.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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