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적인 운동은 심장마비 가능성을 줄인다. 하지만 마라톤처럼 3시간 이상 지속되는 운동을 하던 사람들 가운데 갑자기 심장에 이상이 생겨 사망하는 경우가 종종 나타난다. 한때 유명한 마라토너였던 미국의 한 의사는 “마라톤은 보양식을 과잉섭취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외국의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5만명 중 1명 꼴로 마라톤이나 사이클을 3시간 이상 격렬하게 하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마라톤을 즐기는 것은 비행기를 타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최근 마라톤대회가 열풍이다. 기업이나 단체들이 너도나도 마라톤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홍보효과가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회사 홍보를 위해 마라톤대회에 참여할 것을 권유받고 연습을 하다 숨진 경우 업무상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실적 스트레스에 마라톤하다 사망

포항에 위치한 한 은행에서 일하던 정아무개씨는 2005년 2월부터 채권관리팀장으로 발령받았다. 그의 업무는 구상채권 및 특수채권의 관리·회수 관련 소송을 관장하는 것이다. 그가 맡은 일은 해가 갈수록 늘어났다. 2007년에는 2006년에 비해 관리대상채권 규모가 20%나 증가했다. 채권 회수를 위해 포항뿐만 아니라 경주·영덕·울진으로 출장을 다녔는데, 같은 기간 평균 출장횟수도 25%가량 늘었다. 또 2007년 그가 동시에 담당한 소송건수도 무려 52건에 달했다. 더구나 악성채권을 관리·회수하는 업무다 보니 매일 빚 독촉 싸움을 벌여야 했다.

2007년 1분기 실적발표에서 회사 전반의 순위는 크게 올랐으나 정씨의 부서만 부진한 결과가 나타났다. 이후 직원회의가 열릴 때마다 정씨는 지점장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았다.
정씨의 건강검진 결과도 당연히 나빴다. 의사는 고혈압·당뇨·고지혈증 진단을 내렸다. 정씨는 2007년 4월 초 영덕군으로 출장을 가다 30초가량 호흡곤란과 심한 가슴통증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포항시가 주최하는 해변마라톤대회가 임박했다. 매년 6월 초 열리는 이 마라톤대회를 앞두고 회사는 전 직원들에게 참가 독려방침을 전했다. 전년도 대회에서 경쟁 은행측의 참가인원이 더 많았던 탓이다. 회사는 “경쟁 은행보다 더 많은 인원이 참가해 위상을 높이고 지방자치단체와의 관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며 참가비를 전액 지원하고 대회참가에 대비한 연습도 지시했다. 특히 정씨와 같은 팀장급에게는 마라톤동호회 정기연습에 참가하라고 했다. 이에 따라 정씨는 4월21일 마라톤동호회 연습에 참여하다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회사가 참여 지시, 마라톤 연습도 업무의 일환”

이 사건의 원고는 정씨의 부인이고, 피고는 근로복지공단이다. 1심 재판부는 "만성적인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가 누적돼 급성심근경색이 유발됐거나 (달리기 연습으로 인해) 기존 질환이 통상적인 진행경과 이상으로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며 유족들의 손을 들어줬다.

반면 2심 재판부는 "달리기 연습은 자율적인 동호회 활동의 일환으로 보이고 동호회 활동이나 달리기 연습이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었다고 볼 증거도 없다"며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유족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정씨의 사망은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 및 업무수행성이 인정되는 달리기 연습에 기인해 발생한 것으로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며 원심 판결을 파기, 사건을 대구고법으로 환송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마라톤동호회 연습 참가가 업무인지 여부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2008년 개정 이전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규칙 제37조를 근거로 삼았다. 이에 따르면 ‘근로자가 운동경기·야유회·각종 행사에 참가 중 사고로 사상할 경우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참여하도록 지시한 경우 업무상재해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행사참가를 위한 준비연습 중 발생한 사고’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재판부는 마라톤동호회 연습이 사용자의 지배나 관리를 받는 상태에 있는 것으로 판단, 업무상재해로 인정한 것이다.

관련판례
대법원 2009년 5월14일 판결 2009두58 유족보상일시금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대구고등법원 2008년 12월5일 판결 2008누526
대구지방법원 2008년 4월16일 판결 2007구단3508
 
 
<2009년 6월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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