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경춘선 복선전철 6공구 현장. 이 현장에서의 안전교육은 시청각 자료를 활용한 강의식 교육이 대부분이었다. 딱딱한 강의 때문에 노동자들은 지루해했고 안전교육 효과도 크지 않았다. 실질적으로 몸에 닿는 안전교육을 해보자고 해서 도입한 것이 산업재해체험노동자 초빙 안전교육. 직접 산재를 체험한 노동자가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면서 경각심을 높였다. 실제 추락위험이 높은 곳에서 마네킹을 이용해 실험을 하고 안전대 착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노동자들의 호응은 높았다. 이런 아이디어는 해당 현장의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인 김재명씨가 제안한 것이다.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제도가 도입된 지 올해로 12년이 됐다. 94년 10월 성수대교 붕괴사고와 같은 해 12월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사고, 이듬해 6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등 대형사고가 잇따르자 정부가 95년 도입한 것이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제도다. 산업현장의 여건을 가장 잘 아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안전활동을 벌이자는 취지에서 도입했다.
김재명 명예감독관의 현장처럼 감독관이 제 역할을 다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제도 도입 12년이 됐지만 ‘명예’만 있고 실질적인 안전감독 ‘권한’이 부족하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23일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현재 노동부에서 위촉된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은 총 3천876명. 이 가운데 사업장 내 명예감독관은 제조업 2천854명, 건설업 879명을 포함해 모두 3천733명이다. 사업장 외 명예감독관은 143명이다.

현재 명예감독관이 지역협의회를 구성해 활동을 하고 있는 지역은 안산과 여수·청주·대전 등이다. 안산지역협의회 소속으로 활동하는 명예감독관은 163명, 여수지역협의회 소속 감독관은 90여명이다. 안산지역협의회는 안산시로부터 일정 정도 지원을 받으며 토론회를 여는 등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여수지역협의회는 1년에 4번 모임을 갖고 교육과 함께 모범사례 발표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여경호 여수지역협의회 의장(LG화학)은 “명예감독관으로 활동하면서 가장 보람있었던 일은 2003년 7월 시설 보수 작업 시 벤젠을 최소한으로 노출하게끔 기준을 마련해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여수지역 명예감독관과 민주노총, 단병호 전 민주노동당 의원 등이 합심해서 법안을 마련한 것이다. 한때 사업장 내에서도 ‘입김이 샜던’ 여수지역 명예감독관들도 최근엔 활동이 상당히 위축된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여경호 의장은 “명예감독관 제도가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노동부 산업안전과에서 감독을 나올 때 명예감독관들과 함께 동행해서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명예감독관 위촉 사업장 확대해야

지난해 한국노총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명예감독관의 활동 방해요인 1순위로 정부(노동부)의 소극적인 제도 운영과 지원 부족이 꼽혔다. 두 번째는 명예감독관 스스로의 권한과 책임 부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예감독관의 활동이 활성화되면 산업재해가 감소할 것이라는 조사결과도 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지난 2007년 명예감독관과 사업장 안전보건관계자 1천56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명예감독관 활동이 활성화되면 산업재해 감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응답이 58.3%였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에 따르면 노동부 장관이 명예 감독관을 위촉할 수 있는 사업장은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설치대상 사업장이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설치대상은 상시 노동자 100인 사업장이다. 유해·위험업종은 50인 이상 100인 미만 사업장, 건설업은 공사금액이 120억원 이상인 사업장이 포함된다.
그런데 지난해 산업재해 통계를 보면 5인에서 49인 사업장에서 발생한 산업재해자수가 4만4천132명으로 전체의 46.1%를 차지했다. 정작 명예감독관이 필요한 사업장은 위촉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사외 명예감독관 역할 중요해지는 추세

특히 건설현장의 경우 사외(지역) 명예감독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제조업 사업장을 중심으로 사내 명예감독관의 활동이 중심이 됐다면 최근에는 건설현장을 중심으로 사외 명예감독관의 활동이 늘고 있다. 하지만 사외 명예감독관들도 고민이 많다. 지난해부터 사외 명예감독관을 하고 있다는 김행곤 여수지역건설노조 수석부위원장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직접 건설 현장에 들어가 위험상황 등을 확인하고 노동부에 시정조치를 요구해야 하는데 사업장 출입부터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김 수석부위원장은 “현장에 출입할 수 있는 권한을 주지 않으면 관련법이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제안서를 전달하는 역할밖에 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렇다보니 긴박한 위험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사외 명예감독관들은 노동부 지방관서들이 운영하고 있는 ‘위험상황신고실’(1588-3088)을 활용하고 있다. 그렇게 해야 담당 근로감독관이 현장으로 나와 상황을 살펴보기 때문이다.
건설현장의 사내 명예감독관은 주로 작업반장이나 안전반장이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회사 직원이기 때문에 위험한 작업이 진행돼도 작업 중지를 시키기 어렵다. 반면 건설현장에서 사외 명예감독관의 활동이 활성화되면 산재 은폐 감소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된다.

박종국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은 “특히 공무원(노동부 근로감독관)이 활동하지 않는 휴일이나 심야, 50인 미만 건설현장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며 “350명 정도밖에 안 되는 산업안전근로감독관이 관리·감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2005년 태국이주노동자들의 노말헥산 집단중독 사건이 여론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에 앞선 2002년 이미 중국 이주노동자들의 노말헥산 집단중독을 밝혀낸 사람이 있다. 바로 박태순 명예산업안전감독관안산지역협의회 의장(51·대열보일러노조 위원장)이다.
지난 12일 고대안산병원에서 만난 박태순 의장은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명예’라는 단어를 떼는 것”이라고 말했다.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이라고 하니까 사업장에서 인정을 안 해주는 겁니다. ‘명예’를 차라리 떼자고 건의한 게 10년이 다 돼 갑니다.”
정부가 제도는 도입했으나 소극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박 의장은 “산재가 늘어날 것을 우려하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여기서 산재란 ‘산재통계’를 의미한다. 명예감독관들의 활동이 강화되면 사업장 내에서 공상으로 은폐되던 것도 산재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95년 제도가 도입된 후 명예감독관 활동을 시작한 그는 97년부터 현재까지 안산지역협의회 의장을 맡고 있다. 안산지역 노동자들의 산재상담도 하고 있다.
“최근 사업장이 분사되거나 하청업체에 도급을 주면서 명예감독관 위촉 대상에서 제외되는 사례가 많습니다. 명예감독관이 퇴사했는데 재위촉을 안 해서 줄어드는 경우도 있고요.”
그는 “오히려 활동을 열심히 하면 다시 위촉되지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업장 안의 문제를 제대로 아는 것은 바로 노사 당사자입니다. 문제를 아는 사람이 사전에 산재예방을 하라고 만든 것이 명예감독관 제도입니다. 노동부에서 명예감독관들을 지원해주고, 감독관들은 다시 산업안전보건기관들이 순기능을 할 수 있게 견제하지 않으면 이 제도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조현미 기자
 
<2009년 6월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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