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시절이었다. 양극화 해소대책으로 제안된 근로소득보전세제(EITC)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근로빈곤층을 지원하는 제도라지만 실효성이 적을 뿐 아니라 저임금노동을 고착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외국에 비해 소득파악이 미비한 탓에 성공적 정착이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노사정은 2006년 12월 EITC도입에 합의했다.

그 제도가 올해 9월부터 시행된다. 지난 1일 신청을 마감한 결과, 대상자의 90.9%에 달하는 72만4천 가구가 신청했다. 가구당 최대 120만원까지 지급된다. EITC는 지난 75년 미국이 가장 먼저 실시했다. 근로자에게 소득을 보전해 주고, 근로의욕을 높여 주기 위해서다.

종전의 유럽식 복지제도와는 맥락이 다르다. 기존 복지제도는 소득이 높아질수록 복지급여가 줄어든다. 반면 EITC는 소득이 늘어날수록 급여도 늘어나도록 설계됐다.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빈곤층에게 복지급여를 지급하면 일을 기피해 조세낭비뿐 아니라 빈곤탈출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식 복지관’이다. 80년대 이후 미국식 복지제도는 ‘일을 통한 복지’라고 포장돼 여러 나라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영국을 포함해 7개 나라가 이 제도를 도입했다. 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가 처음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EITC가 ‘근로장려금’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빈곤층의 근로소득 보전이 일차적 과제임에도 근로의욕 고취에 방점을 더 찍은 듯하다. 물론 경기침체에 따라 생계위기를 겪고 있는 빈곤층에게 일시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행 제도로는 양극화 해소와 빈곤탈출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되레 부정적 효과만 불러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처음 실시된 제도인 만큼 보완해야 할 것이 많다는 얘기다.

우선 신청요건이 너무 까다로워 지원대상이 너무 적다. 최저생계비 이하 빈곤층과 차상위계층을 포함한 근로빈곤층이 최대 500만명으로 추산된다. 그런데도 국세청이 9월 말에 지급을 완료할 지급대상은 79만7천명에 불과하다. 전체가구의 4.3%, 근로자 가구의 7%다. 제도를 '보수적'으로 설계한 탓이다.

차상위계층은 최저생계비(4인가구 연간 1천591만원) 대비 120% 이하 소득자이거나 고정재산이 있어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에서 제외되는 사람들이다. 1천910만원 이하 소득자도 차상위계층에 포함되는데, 이들은 근로장려금 지원대상이 아니다. 근로장려금 지급대상이 1천700만원 이하 소득자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양극화 해소는커녕 ‘근로장려’라는 효과마저 보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근로장려금 지원대상이 되는 가구소득을 최저생계비 120%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지원대상이 적어진 이유는 또 있다. 근로장려금은 ‘근로자’만이 받을 수 있다.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자영업자·농어민은 빠져 있다. 근로빈곤층임에도 소득파악이 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근로장려금을 받지 못한다. 근로장려금이 세금을 환급해 주는 제도이기에 세원파악이 전제돼야 하는데, 그것이 충족되지 않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EITC는 전제조건조차 충족되지 않은 채 도입됐다. 벌써부터 형평성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그나마 이용섭 민주당 의원이 지난 12일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기대를 걸어본다. 근로장려금 지원대상에 1천700만원 이하 소득의 자영업자를 포함시켜 2011년에 시행한다는 것이 이 법안의 뼈대다.

근로장려금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저임금·불안정 일자리를 고착화시킨다는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 정부가 저임금 일자리를 보조하는 성격이 갖고 있기 때문에 괜찮은 일자리 창출에 부정적인 효과를 줄 수도 있다. 사용자가 부담해야 할 임금비용을 정부가 조세로 지원한다는 비판도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대책을 병행해야 한다. 우선 비정규직 남용 억제와 정규직 전환 촉진이라는 노동시장의 구조적 개선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비정규직법을 후퇴시키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로장려금 도입을 빌미로 최저임금 인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면 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 사용자들의 도덕적 해이만 불러올 뿐이라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양극화 해소와 저임금 노동자 지원이라는 취지에 부합하려면 근로장려금 도입과 최저임금 인상이 함께 추진돼야 할 것이다.
 
 
<2009년 6월18일>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