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품위유지 위반’이 유행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보도와 관련해 시민들에게 찬밥대우를 받았던 KBS 기자·PD들이 보도·제작·편성본부 수뇌부를 상대로 불신임 투표를 했다. 불신임했다고 해서 본부장들이 사퇴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크다. 그런데도 회사는 “사규상 품위유지 의무 위반에 해당한다”며 엄정조치하겠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 서거에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책임도 있다고 비판한 지방세무서 공무원은 국가공무원법상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파면됐다. 공개된 외부게시판에 비판 글을 쓰거나 언론사에 보낸 것도 아니다. 내부게시판에 글 한번 썼다가 공무원연금도 받지 못한 채 직장을 잃게 됐다.

전교조 교사들이 시국선언을 통해 정부정책을 비판하겠다고 하자 이번에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엄정조치’를 경고했다. 서명운동을 통한 시국선언이 법에서 금지한 공무원들의 집단행동이 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교과부도 "국가공무원법상 품위유지 의무에 어긋난다"는 입장을 곁들였다.

세무서 공무원과 교사들, KBS 기자·PD들의 행동은 조직 내부나 국가정책에 대한 비판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국가공무원법(63조)에는 ‘공무원은 직무의 내외를 불문하고 그 품위가 손상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명시돼 있다. 국가공무원 행동강령이나 복무규정을 보면 공무원은 직장에서나 바깥에서나 사회적 관습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서도 안 된다. 민간인보다 엄격한 도덕성은 물론, 외모도 품위를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 정책이나 조직 내부를 비판하는 것이 품위를 손상한 것이라는 얘기는 국가공무원법 어디에도 없다.

공무원노조나 공기업노조의 정부정책 비판은 성명서와 집회 등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그때마다 품위유지 조항을 들먹일 것인가. 지난해 5월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 양심선언을 해 파문을 일으켰던 농림수산식품부 공무원은 징계를 받지 않고 승진까지 했다. 품위유지 의무가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고,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표적사정에다 지휘체계를 무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국세청. 국민 정서에 반하는 보도로 부하직원들이 돌을 맞게 한 언론사 수뇌부. 그리고 이들을 비판한 노동자들. 누가 품위를 손상시킨 것일까.
 
 
<2009년 6월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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