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전남 해남군 해남축산업협동조합 앞. 옛 '진도개진도축협'에서 해고된 노동자 6명이 해남축협 앞에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진돗개 양축농가를 지원하는 경제사업과 신용사업을 하던 이들은 이날로 747일째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사태가 장기화하고 있지만 노사 간 입장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박정태 축협노조 진도개진도축협지부장은 "노조는 고용승계와 노조승계를 요구하고 있지만 해남축협은 그것만 빼고 다 얘기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고 말했다. 대화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지부의 복직투쟁이 길어지면서 해고자 복직 문제는 지역의 사회 문제로 확산됐다. 이석행 전 민주노총 위원장과 심상정 전 민주노동당 의원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2007년 7월 잇따라 해남을 방문한 바 있다. 이정우 해남축협 조합장은 당시에도 "법적인 절차에 따른 계약이전일 뿐이고 직원의 고용에 대한 책임은 없다"고 말했다.

고용승계 요구…돌아온 것은 법적 대응

지부 조합원들의 투쟁은 노조를 설립한 2005년 5월3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조는 조합의 투명경영과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했다. 지부 관계자는 "일명 카드깡이나 법인카드의 무분별한 사용 등 경영진의 방만한 경영을 문제 삼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조 설립 1년 만인 2006년 5월 농협중앙회는 해남축협과 진도개진도축협의 합병을 통보했다. 경영상태가 좋지 않다는 이유였다. 진도 지역 농민들은 축협이 해남축협과 합쳐진다는 소문에 예금을 빼기 시작했다.
결국 진도개진도축협은 2007년 2월8일 유동성 부족으로 예금지급을 멈췄다. 당시 농림부는 같은달 12일 경영부실을 이유로 업무를 중단시키고 관리인을 선임했다. 합병명령과 행정명령을 내린 후 경영실사를 거친 뒤 진도개진도축협의 경제사업은 해남축협으로 넘어갔다.

이 과정에서 해남축협은 합병의 조건으로 노조 해산을 요구했다. 노조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해남축협은 진도개진도축협 노동자 8명에 대한 고용승계를 거부했다. 현재는 조합원 6명이 남아 복직투쟁을 진행 중이다.
해남축협은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도 해고자들에게 채용기회를 주지 않았다. 해남축협은 2007년 7월 5~6급 일반관리직 경력직을 채용하는 공고를 냈다. 연령은 만 18세에서 27세 이하로 제한했다. 해고노동자들의 나이는 32~37세. 지원조차 할 수 없었다. 축협은 2008년 3월에도 채용공고를 내 직원 5명을 채용했다.

해남축협은 지부와의 대화를 거부하면서도 조합원들에개는 법적 조치로 일관했다. 2008년 7월 50미터 이내 접근금지 명령이 내려졌다. 이후 조합원들은 해남축협 앞에서 집회를 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등으로 이유로 조합원 상당수가 벌금형을 선고를 받았다. 조합원 박양우(37)씨는 "앞이 안 보이는 것처럼 답답하다'며 "이제는 그만해도 되지 않나 라는 주변의 말이 가장 무섭지만 정당한 요구를 이룰 때까지 싸움을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협동조합 공공성은 어디에

지부는 농협중앙회의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경영방향이 진도개진도축협 파산의 중요한 요인으로 꼽고 있다. 유동성 위기에 의한 업무조치가 불가피하게 예견되는 상황에서 농협중앙회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은 채 방치해 결국 업무정지에 이르게 됐다는 설명이다.
지부 관계자는 "한 사업장이 말라죽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농협중앙회는 손에 물도 묻히지 않고 손쉽게 협동조합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구조조정해 왔다"며 "진도개진도축협의 업무정지 사태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품목조합과 지역조합 간 경쟁을 통해 협동조합을 농협중앙회의 의도대로 구조조정하면서도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와 지역사회에 전가했다는 것이다. 양축 농민들의 경우 대규모로 할 경우 협회를 만들어 피해가 덜 하지만, 한두 마리의 진돗개 사육을 하던 영세 양축 농민들의 피해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이윤경 축협노조 위원장은 "협동조합의 공공성은 이 시대에 온데간데없고 구조조정을 통해 합병하고 파산시키고, 농업선진화 명목으로 기업농민을 만든다"며 "이 과정에서 협동조합에서 일했던 노동자는 길거리로 내몰린다"고 비판했다.

지역 시민사회, "얽힌 실타래 풀겠다"

그동안 해고노동자들의 복직 문제는 농민단체와 노동조합 간의 입장차로 어려움을 겪었다. 진도군 농민들은 진도개진도축협이 사실상 파산되면서 수만 원에서 수백만 원에 달하는 출자금을 잃었다. 게다가 진도군의 경제사업도 없어져 3천여명의 농민 조합원들은 축협의 경제사업 지원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결국 이제는 지역의 시민사회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 문경식 민주노동당 전남도당 위원장은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길거리와 천막에서 생존권 투쟁을 해 오신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일을 늦었지만 이대로 볼 수 없었다"며 "각계 진보단체들이 모여 원직복직을 요구하는 대책위를 만든 만큼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 전남본부와 전국농민회 총연맹 전남도연맹 등 5개 단체는 지난달 15일 해남축협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 16일 전남도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공식 출범했다. 박정태 지부장은 "대화를 하다 보면 오해도 풀 수 있고 노조나 축협이나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며 "지역의 어른들이 젊은 사람들의 생계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진돗개축협? 진도개축협?
표준어는 진돗개다. 그런데 노조 명칭은 축협노조 진도개축협지부다. 진도군은 진돗개가 '진도의 개'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진도개'라는 말을 쓰고 있다.
진도군은 진도군 밖에서 서식하고 있는 품종으로 천연기념물(제53호)의 혈통을 유지하고 있지만, 천연기념물 및 진도개보호육성법에 의해 보호받지 않는 개 또는 절차를 거쳐 진도군 밖으로 영구 반출된 개를 '진돗개'로 통칭한다. 반면 '진도개'는 진도군 일원에서 서식하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개로, 법에 의해 보호받는 '진도의 진도개'를 말한다.

 
 
<2009년 6월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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