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인파가 많은 길을 걷거나 지하철에서 갑자기 죽거나 미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호흡곤란을 겪은 적이 있다면?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가슴에 심한 통증이나 압박감이 느껴지고 어지러워 때론 실신한 적이 있다면? 이런 증상이 20~30분가량 나타났다가 급격히 사라졌다면 당신은 공황장애일지도 모른다.

대부분 첫 공황발작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다. 약 10분에 걸쳐 급격하게 증상이 심해진다. 증세가 오래 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언제 또 공황발작이 찾아오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게 된다. 불안과 공포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지기도 한다.

지하철 기관사의 경우 공황장애를 앓을 가능성이 일반인보다 무려 7배나 높다. 이유는 사람을 치거나 다치게 한 경험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사상사고 경험이 없는 기관사의 공항장애는 업무상재해로 볼 수 있을까.

전동차 지연사고 이후 공황발작

서울메트로 기관사 김아무개(52)씨는 2003년 3월 기관사로 전직발령을 받았다. 기관사로 일한 지 4년여 만에 전동차 지연사고가 연달아 터졌다. 2007년 7월 초, 출입문 개방 문제로 9분간 전동차가 움직이지 않았다. 며칠 뒤에는 전동차 전기보조장치가 고장 나 20여분간 운행이 멈췄다. 당시 신문과 방송에서 ‘전동차 고장으로 시민들의 발이 묶여 있었다’고 보도됐다.

이후 김씨는 ‘미숙 기관사’로 분류돼 6개월간 전동차 고장처리 교육을 받았다. 사실 20여년 전 서울메트로 입사 당시 김씨는 역무원이었다. 기관사로 발령받기 전까지 건강에 어떤 이상도 없었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이기는 했지만 가족 중에 정신질환을 앓은 이도 없었다.

하지만 전동차 지연 사고 이후 김씨는 목에 무엇인가가 덜컥 걸리는 느낌이 나고 거품이 있는 침이 역류되는 이상증상이 나타났다. 가슴이 빨리 뛰고 숨이 차 열차 운행을 계속하기 힘들었고, 곧바로 응급실로 후송됐다. 그해 5월 김씨는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요양을 신청했으나 거부당했다. 공단은 “업무와의 연관성보다는 개인적 취약성으로 공황장애를 앓게 됐다”며 산재신청을 불승인했다. 김씨는 소송을 제기했다.

"직접적 원인 없어도 스트레스가 질병 악화시켜"

이 사건의 원고는 김씨, 피고는 근로복지공단이다. 서울행정법원은 사상사고를 경험하지 않은 지하철 기관사의 공황장애도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는 이례적인 판결을 내렸다. 판결요지는 이렇다.

“김씨는 기관사로 전직된 이후 고속운행에 대한 불안감과 정확한 시간에 출발과 정차를 반복해야 하는 긴장감과 운행지연으로 인한 경위서 제출, 승객들의 항의와 언론보도와 이로 인한 문책성 교육 등으로 지속적으로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심리적 스트레스를 겪은 것으로 보인다. 김씨가 발병에 따른 전환배치로 기관사 업무를 수행하지 않은 이후 공황장애 증상이 상당히 호전된 점이나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지하철 기관사들 중 상당수가 공황장애를 호소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춰 볼 때 이 사건은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
공황장애의 발병에는 유전적·생물학적 요인과 함께 환경적·심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의 쟁점은 김씨의 공황장애가 개인적인 요인인가, 업무환경적 요인인가를 가리는 것이다.

재판부는 “김씨의 성격이나 유전적·생물학적 요인 중에는 공황장애의 발병원인이 내재돼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보다 김씨가 기관사로 전직한 이후 겪었을 육체적 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에 주목했다. 직접적인 발병원인이 될 수 있는 사상사고가 아니더라도 김씨가 느꼈을 과로와 스트레스가 공황장애를 유발하거나 자연적인 진행경과 이상으로 악화시킬 수 있다는 데 무게를 둔 것이다.

관련 판례
서울행정법원 2009년 5월14일 판결 2008구단702 요양불승인처분취소
 
 
<2009년 6월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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