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불황으로 명예산업안전감독관들의 활동이 위축되고 있다. 안전을 대비한 시설물조차 설치가 안 되고 안전보호구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있다. 일감이 줄어서 구조조정 대상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이런 스트레스가 차후에 직업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임금과 고용도 중요하지만 안전예방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의식전환이 필요하다.”

지난 12일 경기도 안산시 고잔1동 고려대안산병원 대강당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 참가한 박용국 삼목강업노조 위원장은 최근 반월·시화공단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박 위원장은 “일하다 다쳐 막 수술을 받고 나오는 여성노동자를 봤는데 수술하고 나오자마자 산재처리가 되느냐고 물었다”며 “된다고 하니 너무 기뻐했다”고 말했다. 그는 “영세한 반월·시화 공단 재해자와 가족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전했다.

이날 오후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안산지역협의회(의장 박태순)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경기서부지도원 공동 주최로 ‘경기불황에 따른 사업장 자율안전보건 재해예방활동과 산업보건 활성화 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노사뿐만 아니라 산업안전보건 대행기관 관계자들도 나와 경기 불황 속에서 안전보건활동을 하는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날 토론회는 공단의 민간단체 산업재해예방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재해율 높은 안산·시흥지역

16일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지난 3월 현재 반월공단과 시화공단의 입주업체는 각각 3천976개, 7천283개다. 고용인원은 반월공단이 9만4천504명으로 시화공단(8만9천950명)보다 많다. 석유화학업종과 대기업 비중이 높은 여수(90.1%)와 울산(82.4%)·온산(82.1%)단지는 가동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반면, 중소기업 밀집단지인 반월(68.9%)·시화(68.2%)단지의 가동률은 60%에서 70%대 초반에 그쳐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올해 3월 현재, 전국의 사업장에서 발생한 재해자수는 2만1천509명이다. 이 중 안산·시흥지역에서 발생한 재해자수는 751명. 노동자 100명당 발생한 재해자수(재해율)가 전국 0.16명인데 비해, 이 지역은 0.24명이었다. 약 1.5배 높은 수치다.
안산에 위치한 반월·시화공단은 국내 최대의 중소기업 단지로 알려져 있다. 경제성장에 차지하는 비중도 크다. 반면 전국 산업단지 중 재해가 가장 많은 공단으로도 알려져 있다. 반월·시화공단에서만 매년 4천명에서 5천명이 재해를 당하고 이 가운데 50~70명이 사망하고 있다. 이처럼 산재가 많은 이유로는 도금·피혁·화학제품 제조업체처럼 작업환경이 취약한 사업장이 밀집돼 있는데다가,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이 98%를 차지하기 때문인 것으로 지적된다. 지난해 전체 재해자인 9만5천806명 가운데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전체의 78%(7만5천51명)를 차지했다.

그런데 경기불황을 이유로 이 지역 사업장의 산업안전보건이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 박종태 안산고대병원 산업의학센터 교수는 “산업보건사업은 기업활동에 있어 후순위 사업”이라며 “특히 경기불황이라는 특수상황에서 안전보건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우려했다. 박 교수는 “기업 입장에서 최대관심사는 이윤의 극대화이기 때문에 산업보건사업은 최소한의 법적 요구사항만 준수하는 형태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도급 사업장 재해율 두배”

중소규모 사업장 가운데 하청도급을 준 사업장일수록 재해율은 더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안산지역총무부서장 협의회가 200개 회원사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0% 정도가 공장 내에서 하청도급을 주고 있다. 원청기업과 하청기업을 비교하니 하청기업의 재해율은 2배가량 높았다.
 
심정옥 협의회 부회장은 “하청도급 사업장의 목적이 원가 절감이다보니 노동자들의 급여 수준이 낮아 이직이 자주 발생한다”며 “신입사원이 들어올 때마다 해당 기업에 적응하는 초기 3개월 이내에 재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분석했다. 10명 이하의 하청도급 업체에서는 대부분 산업재해에 대한 관리가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심 부회장은 원청기업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원청회사에서 (산업안전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재해율이 떨어지는 것은 요원한 일”이라며 “하청도급 사업장의 안전보건을 개선하지 않으면 재해율이 높아져 결국 기업에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전·보건대행업체도 어렵긴 마찬가지

산업안전보건 대행기관들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사업주들이 안전보건비용을 최소화하려다보니 대행기관들끼리 덤핑 경쟁을 하고, 대행기관들까지 경영악화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권희봉 대한산업안전협회 차장은 “갑과 을이라는 계약관계 때문에 사업주 의도대로 가야하는 애로사항이 있다”며 “안전업무 대행 수수료 삭감을 요구해 서비스를 질적으로 개선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권 차장은 “사업주도 안전비용을 반드시 필요한 비용으로 인식해야 한다”며 “재해를 감소시켜 기업 브랜드의 자산 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전도 남는 장사’라는 인식을 사업주가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종서 고대안산병원 산업의학센터 작업환경측정팀장은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어도 사업주는 어떻게 정확하게 측정해줄 것이냐 보다는 얼마에 해 줄 것이냐고 문의한다”며 “수주를 고민하는 시간이 더 길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털어 놓았다. 시장경제 논리에 맡겨서는 작업환경측정의 당초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산업보건사업 ‘3자 지불제’ 대안도 떠올라

김종서 팀장이 지적하듯 산업보건사업을 시장경제 논리에 맡겨둬도 되는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앞으로 계속 제기될 전망이다.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사업주들은 산업보건비용을 계속 줄이려 할 것이고, 이는 재해율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종태 교수는 “산업보건서비스의 가격경쟁은 무리한 수주활동과 도덕적 해이로 이어져 서비스 질을 저하시킬 가능성이 높다”며 “근본적인 재원조달 방식을 검토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산업보건사업을 노동자의 생명과 직결된 공공사업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산업보건사업 비용 제3자 직불제 확대’를 제안했다. 산재보험 재정을 이용해 사업주가 부담하는 산업보건서비스 비용의 일부를 보험료로 징수하자는 것이다. 현재 1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작업환경측정과 특수건강진단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이 사업을 면밀하게 분석해 제3자 지불방식을 확대해 나가자는 것이다. 물론 이 방법에 대해서는 노사정 합의가 필요하다.

산업재해로 인한 손실이 예방에 드는 비용보다 훨씬 많다는 점을 사업주가 인식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난해 산업재해로 인한 근로손실일수는 7천만일로 노사분규로 인한 근로손실 일수의 약 86배에 달했다. 지난해 산재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약 17조원.
변임근 공단 경기서부지도원 팀장은 “17조원은 지난해 서울시 예산인 19조4천억원보다 2조원 가량 부족한 액수”라며 “100억원 규모의 공장을 1천700여개 지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라고 말했다.
노사정이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를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여주는 사례다.


<2009년 6월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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