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촉즉발. 한번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 것처럼 위태로운 상황. 6·10민주항쟁 22주년을 맞은 2009년 6월10일,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일촉즉발에 놓여 있었다.
광장은 10일 폭발했다. 6·10 범국민대회 주최측이 지난 9일 서울광장에 집회차량 진입을 시도하자, 서울시는 잔디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경찰에 시설보호를 요청했다. 시민들이 잔디보다 못한 취급을 받은 셈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광장은 확성기를 통해 나오는 정치구호가 아니라 시민들의 평화로운 담소와 아이들 웃음소리가 넘치는 곳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인이 정치를 혐오하는 발언을 한 셈이다. 하기야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있는 대통령의 친형은 정치인이면서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희한한 말을 해도 아무도 뭐라지 않는 현실이다.

오 시장 말처럼 아이들 웃음소리가 넘쳐나는 사회가 되면 좋겠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한국에서 '아이낳기'는 정말 어렵고 무서운 일이 되고 있다. 오죽하면 정부가 나서 '아이낳기 좋은세상 운동본부'라는 것을 만들었겠는가. 사상 최악의 빈부격차, 1천만원의 등록금, 급등하는 사교육비…. 이런 현실 앞에서 정부 주도의 아이 낳기 운동은 그 옛날 새마을운동처럼 있으나 마나 한 것이고, 하나 마나 한 소리로 들린다.

특히 경기도 평택에는 시한폭탄이 떨어져 있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는 10일 현재 20일째 옥쇄파업을 벌이고 있다. 1천500여명이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났음에도 회사는 남은 976명을 더 잘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력 투입은 노동자들의 폭발을 재촉하는 촉매제가 될 것으로 우려된다.

어딜 봐도 하나 나아진 것 없는 현실에서 최근 한국 경제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한다. 대통령과 경제관료는 2분기 실적을 기대하면서 벌써부터 경제위기 탈출을 전망하고 있다. 그런데 나아졌다는 사람 하나 찾아보기 힘든 요즘이다. 다만 은행들은 자기자본비율을 높여가면서 튼튼해지고 있다. 반대로 은행 문을 두드리는 서민들은 갈수록 대출받기 어려워지고 있다. 한국의 금융시장이 아무리 '함께 살자'를 포기한 '딴 나라 금융'이 돼 버린 지 오래라지만 해도 너무한다. 빈부격차는 사상 최악을 기록하고 있고, 주가는 오르지만 서민들의 주머니는 텅텅 비어간다.

아이린 칸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은 최근 연례회의에서 "세계 경제위기는 단순히 경제의 문제가 아니다"며 "폭발 직전의 인권의 시한폭탄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세계의 지도자들이 경제에 투자하는 만큼 인권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버스로 광장을 막고, 시민들을 때려잡는 순간 폭탄이 터질 수 있다는 경고음이다. 경고음은 이미 곳곳에서 울리고 있다. 제거되지 못한 폭탄은 가장 먼저 '지도자'를 향해 터질 것이다.
 
 
<2009년 6월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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