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워진 경제가 우리에게서 ‘희망’을 앗아가고 있습니다. 2009년 5월, 대한민국의 국민은 ‘핵가족’을 넘어 ‘핵분열’을 하고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을 ‘광장문화’로 뜨겁게 달궜던 것이 불과 7년 전인데도 말입니다. 지난 9일 숨진 ‘희망 전도사’ 장영희 서강대 교수는 생전에 “희망이 없으면 그 싸움은 비장하고 슬프다”고 말했습니다. 힘들고 우울한 시대, 그래도 희망을 품어야 하지 않을까요. 끝 간 데 없는 투쟁을 하고 있는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의 얼굴이 오랜만에 환해졌습니다. 얼마 전 ‘희망둥이’들이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힘드시죠. 저도 그래요. 얼마 전 ‘여친’에게 쓴소리 한마디 했는데요. 요즘 아주 힘듭니다. 다들 허리띠 졸라매고 사니까 외식하지 말고, 군것질도 줄이자고요. 전세방 한 칸이라도 마련하고, 결혼식도 하려면 아껴야 하지 않겠냐는 말도 양념으로 넣었습니다. 여친, 입으로 하지는 않지만 눈으로는 참 많은 얘기를 하더군요. ‘이런 밴댕이, 네가 더 열심히 일해서 더 많이 벌면 되잖아.’

밴댕이의 ‘하루짜리 일탈기’

누가 그러더군요. 요즘 식당가를 가 봤느냐고요. 밖에서 밥 먹는 일이 많아 당연히 자주 갑니다. 한 식당 아주머니는 “가게세에 세금도 못 내는데 뭘, 그냥 죽지 못해 가게 문 연다”고 하십니다. 통계만 봐도 적자에 허덕이는 영세자영업자가 넘쳐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런 불경기에도 호황을 누리는 식당이 있나 봅니다. 한 식당가를 다녀온 제 친구는 “경제위기를 느낄 수 없었다”고 말하더군요. 그래서인가요. 소비를 늘려야 하는 판에 정부와 재계는 임금을 줄이자고 합니다. 북적대는 식당이 있으니, 아직 매를 덜 맞았다는 건가요. 가혹합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가계부를 봤더니 가족들과 외식하는 일이 잦아졌더군요. 가계부 쓰는 일은 경제위기가 심각해진 지난해 10월부터 시작했습니다. 바깥세상이 흉흉하니 눈길이 자꾸 안으로만 갑니다. 힘들 때일수록 가족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애석하게도 대한민국의 가족은 핵가족화를 넘어 ‘핵분열’을 하고 있습니다.

공통의 관심사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오늘도 아버지는 시골에 심은 고추 얘기를 하시고, 어머니는 어제 뉴스가 생각난 듯 “○○는 위험하니까 먹지 말아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핵융합’을 시도했습니다. 내용이 안 되면 형식이라도 만들어 보자는 심정이었죠. 얼마 전에 팔자 좋게 안면도로 꽃구경을 다녀왔습니다.

서울에서 2시간 걸려 도착한 충남 태안군 안면도. 80만제곱미터 부지에 활짝 핀 130만 송이 꽃이 관람객을 맞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꽃박람회’가 아니라 ‘사람박람회’더군요.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는 광고문구가 하루 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더군요. 어쨌든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고, 먼저 결혼한 여동생과 조만간 돌을 앞둔 조카, 저와 여친. 이렇게 6명이 하루를 함께했습니다. 돌아오자마자 가계부를 썼습니다.(자꾸 가계부 얘기한다고 밴댕이라고 부르지는 말아 주세요. 상처 받습니다.-.-;;)

여섯 사람이 먹은 횟값 12만원에 고속도로 통행료 1만원,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쓴 간식비까지…. 이것저것 합치니 15만원이나 되네요. 그나마 수입이 있는 사람이 저 혼자라 그 돈 모두 제가 냈습니다. 며칠 전 어버이날 드린 용돈이 생각나네요. 뭐, 그렇다고 억울하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충남 태안은 2007년 기름 유출사고 당시 피해가 가장 컸던 곳이지 않습니까. 침체된 태안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훌륭한 소비를 하고 왔으니 됐다 싶었습니다. 더구나 가족과 함께 말입니다. 한 달이면 통장에 170만원 찍히는 ‘신문쟁이’에게 가정의 달 5월은 참 가혹한 것 같습니다.

“잘 놀다 왔으면 됐지. 팔자 좋구나” 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맞습니다. 제가 분위기 파악을 잘 못하거든요. 2009년 5월 ‘가정의 달’은 노동자에게 시련과 고통의 시기이니까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메이데이. 그런데 메이데이 하루 전 우리는 한 노동자의 가슴 아픈 죽음을 접했습니다. 고 박종태 화물연대 광주지부 제1지회장. 고인은 지난달 30일 대한통운 대전지점 앞에서 ‘대한통운은 노동탄압을 중단하라’는 현수막을 목에 걸고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대한통운은 택배수수료 ‘30원 인상’ 때문에 택배기사 78명을 무더기로 해고했습니다. 고인은 두 아이의 아빠였습니다. 아들의 생일인 어린이날이면 따뜻한 미역국을 끓여 주던 자상한 아빠였습니다. 고인의 부인 하수진씨는 “아이들은 아직 (아빠의 죽음을) 모르는데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라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절망의 껍질’을 안고 살았지만, 그 속을 희망으로 가득 채웠던 한 분이 또다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장영희 서강대 교수가 지난 9일 암 투병 중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고인은 태어난 지 1년 만에 소아마비 장애인 판정을 받았고, 2001년 유방암 진단을 받고 불굴의 의지로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완치된 것처럼 보였던 암은 척추로 전이됐고, 간까지 번졌습니다.

고인은 “신이시여 왜 나에게만 이런 시험에 들게 하십니까”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고인은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집필활동을 계속했고, 2005년 봄에는 강단에 돌아와 많은 제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암이 재발하기 전 고인은 이런 글을 썼다고 합니다.

“삶의 요소요소마다 위험과 불행은 잠복해 있게 마련인데, 이에 맞서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 불패의 정신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숭고하다. 그러나 희망이 없다면 그 싸움은 너무나 비장하고 슬프다. 희망을 가지지 않는 것은 죄이다. 빛을 보고도 눈을 감아 버리는 것은 자신을 어둠의 감옥 속에 가두어 버리는 자살행위와 같기 때문이다.”

물론 ‘절망을 밥 먹듯’ 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제 주변만 봐도 항상 절망하면서 사는 분들이 참 많더군요. 희망을 이야기해 달랬더니 꿀 먹은 벙어리가 되거나, “이런 시국에 팔자 좋네” 하며 손사래를 칩니다. 그래서 ‘사는 낙’으로 질문을 바꿨는데, ‘이것 때문에 산다’고 말하는 사람이 드물더군요.

투쟁 속에 태어난 ‘희망둥이’

가장 기억이 남는 분은 아이 셋 키우는 40대 남성 노동자였습니다. 말없이 손부터 내밀더군요. 손은 주부습진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는 “육아에 허덕이다 보면 아이를 버리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할 때도 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육아와 교육마저 ‘서비스산업 선진화’라는 야릇한 이름으로 포장되는 ‘시장만능주의’에 물들고 있으니…. 이런 ‘가혹한 상상’을 하는 아빠, 엄마들이 늘어나면 어쩌지요. 오금이 저릴 일입니다. 

 
한 화물운송 노동자가 지난 3월 화물차 주차장에 임시로 마련된 천막 검진소에서 시력측정을 하던 중 웃고 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매일노동뉴스

지난해 이맘때 광화문을 밝혔던 촛불. 그 촛불이 곧 희망이라고 얘기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잠복기이고 언제든 때가 되면 다시 타오를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보시죠. 지난해 촛불집회에서 자유발언에 나섰던 여중생들이 사회구조를 분석했습니까. 그냥 자기 사는 얘기를 했을 뿐입니다.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여중생들이 사회의 한복판에 위치할 10년 뒤를,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이 미리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민주노총의 사회연대선언은 그런 의미에서 적절한 활동방식으로 보이지만 두고 볼 일입니다. 대졸초임 삭감에 동의했거나 침묵했던 어른들은 진지하게 반성하셔야 하고요. 아이들의 눈에서 순수함과 희망을 봅니다. 아이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올 들어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와 동우화인켐분회에서 새 생명이 태어났다고 합니다.

기륭전자분회 조합원 강화숙씨가 2월12일 딸을 낳았는데요. 강씨는 지난 4년간 복직을 요구해 온 이들의 염원을 담아 딸 이름을 ‘복직’이라고 붙였다는군요. 얼마 전 기륭전자 조합원에게 복직이의 안부를 물으니 오랜만에 얼굴이 환해집니다. 역시 아이들은 ‘희망’ 그 자체입니다. 기륭전자의 노사갈등은 2005년 무려 300여명의 비정규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일자리를 잃으면서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기륭전자 해고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노조의 목숨을 건 단식농성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회사는 올해 2월 직원 30여명을 또다시 해고했습니다. 심지어 회사는 최근 기업설명회 자리에서 “기륭전자의 노사갈등은 끝났다”고 ‘말뚝’까지 박았습니다. 금속노조 동우화인켐비정규직분회 고희철 사무국장은 지난 13일 득남했는데요. 아들 이름이 ‘고래’라고 합니다. 고래는 여태 아빠의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고 사무국장이 농성장 강제철거에 맞서다 공무집행 방해와 폭력·도로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됐기 때문입니다. 작업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작업을 거부하다 해고된 노조간부 9명은 지난해 10월부터 회사 앞에서 컨테이너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희망. 우리말로 ‘바람’입니다. 자신이 바라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는 기대나 예측입니다. 다만 언제 실현될 지 불명확합니다. 희망은 지루한 것처럼 보이는 ‘괜찮은 일상’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겁니다. 희망은 찾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아 또 뭘 만들어야 하는 건가.’ 한숨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것 같네요.

여러분 힘드시죠. 사실 이런 얘기를 하는 저도 힘듭니다.



<2009년 5월25일>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