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언론재단이 운영하는 언론인금고에 대출신청 건수가 부쩍 늘었다. 언론재단은 언론인을 대상으로 생활자금이나 주택자금을 저리에 빌려주고 있는데, 이달 들어서만 224명이 생활자금 대출을 신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대출신청자 87명보다 150% 이상 증가한 것이다. 대출금 규모도 지난달 7억8천200만원에서 이달 17억4천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기자들이 돈을 꾸는 이유는 월급봉투가 얄팍해졌기 때문이다.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경향신문은 지난달 사원총회에서 임금을 25% 삭감하기로 결정했다. 삭감 후 통상임금의 최하·최상한선을 110만원에서 250만원 사이로 잡았다. 지난달 월급은 차장급 이상은 100%, 차장대우 이하 사원은 50%가 삭감된 채 지급됐다. 각종 수당도 50% 삭감하고 대학학자금 등 복지혜택도 없애거나 대폭 축소했다.

이마저도 3개월 무급 순환휴직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경향신문 내부에서는 “98년 외환위기로 한화그룹이 손을 떼고 직원들이 퇴직금을 모아 사원주주회사로 전환했을 당시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오마이뉴스 노사도 지난달 임금·단체협상에서 40~20% 수준의 임금삭감안을 합의했다. 경영진은 40%, 팀장급은 30%, 직원은 20%씩 깎기로 했다.

월급 줄어 대출신청 줄서는 기자들

방송사도 예외가 아니다. MBC는 지난달부터 사장은 30%, 임원은 20%씩 연봉을 삭감하고 일반 사원은 상여금 400%를 성과연동지급체계로 전환하는 내용의 ‘2차 비상경영방안’을 놓고 노사협의를 진행 중이다.
 
MBC는 “복리후생비도 잠정 중단하거나 항목별로 지급한도를 대폭 줄이고, 대체휴가 사용과 휴가 실시로 시간외수당 등 각종 수당을 줄여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제작비와 경비 등 각종 예산을 15% 추가 삭감키로 하면서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 출연자들이 출연료를 자진해 삭감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광고시장 위축 … 언론사 직격탄

불황의 그림자는 언론사라고 예외가 아니다. 미국에서 불어 닥친 세계경제 위기로 ‘고사 직전’이라는 말이 언론계에서 심심치 않게 흘러 나온다. 이미 자본잠식에 들어간 몇몇 신문사는 올해 안에 부도가 날 수도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경향·한겨레는 물론 조선·중앙·동아를 가릴 것 없이 신문업계는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36개 신문사의 지난해 매출액은 2조3천586억원. 2007년에 비해 10.47%(2천847억원)이 줄어들었다.

당기순이익도 2007년 983억원 흑자에서 지난해 531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187억원의 적자를 보였다. 가장 매출이 줄어든 곳은 전국 종합일간지다. 감사보고서를 아직 등록하지 않은 경향을 제외한 9개 신문사의 지난해 매출액 감소 폭은 2천955억2천800만원으로 전년 대비 -17.29%를 기록했다. 방송 3사도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매출액이 2조1천84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3% 감소했다.

언론사의 경영사정이 나빠진 것은 광고시장이 크게 위축됐기 때문이다. 경기침체 여파로 기업들은 광고 홍보비를 앞 다퉈 줄이고 있다. 삼성전자만 하더라도 올 1분기 마케팅비용을 전분기(1조9천481억원) 대비 3분의 1 수준인 6천683억원으로 대폭 축소했다.
HS애드 미디어전략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광고비 규모가 2.4% 축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 광고비가 7조9천897억원이었던 데 비해 2008년에는 7조7천971억원으로 줄어들었다. 광고업계는 올해는 약 8% 이상 더 감소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권에 우호적이거나, 덩치가 크거나 언론생태계 생존법칙

이명박 정부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진보적 언론사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가뜩이나 기업광고가 줄어든 상황에서 정부기관 광고마저 조선·동아·중앙·문화에 집중되고 있다. 중앙 정부부처의 지난해 정부 광고 집행내역을 보면 △조선 406% △동아 432% △문화 511% 등 일부 언론사의 광고수주액이 전년과 비교해 급증했음을 알 수 있다.

10대 일간지의 중앙정부부처 정부 광고 집행 점유율은 동아가 9.6%(2007년)에서 17.6%(2008년)로 수직 상승했다. 조선도 9.1%에서 15.9%로 뛰어올랐다. 반면 경향은 10.8%에서 5.2%로 감소했고, 한겨레도 12.4%에서 5.4%로 줄어들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전병헌 민주당 의원은 “최근 중·소 신문들이 경영난으로 매우 힘든 형편인데 이들에 대한 지원수단 중 하나인 정부광고마저 거대언론에 몰아주는 것은 강자 중심의 시장 논리로 언론의 다양성을 훼손하고 반정부적 언론을 말살하려는 반다양성 언론정책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정부가 내년부터는 한국ABC협회(신문잡지부수공사기구)의 부수 검증에 참여한 신문·잡지사에만 정부 광고를 주겠다고 발표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6일 ‘ABC 공사 제도 개선 종합대책’을 통해 “ABC 검증에 참여한 신문사에만 정부 광고를 배정하고, 유가부수 인정기준을 ‘80% 이상 수금’에서 ‘50% 이상 수금’으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즉각 성명을 내고 “문광부가 거대신문들의 불법 무가지와 경품 제공으로 얼룩진 신문시장의 혼탁한 현실에 면죄부를 주려 한다”며 “ABC공사 제도 개선이라는 미명 아래 1천200여억원에 이르는 정부광고를 거대 신문에 몰아주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부와 여당이 6월 임시국회에서 미디어법 처리를 강행할 경우 사정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한나라당이 제출한 방송법 개정안에 따르면 자산규모 10조원 이상의 대기업과 신문사가 지상파방송사 지분을 20%까지 소유할 수 있다.
 

보도전문·종합편성 채널은 49%까지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삼성과 현대자동차 등 재벌그룹이 KBS·MBC·SBS와 같은 방송사 지분을 20% 소유하고 조선·중앙·동아 등 일간신문도 지분의 20%를 가질 수 있다. ‘삼성 20%+중앙일보 20%’로 이뤄진 지상파 방송 출현도 가능하다. 덩치가 큰 언론사만 살아남을 수 있도록 미디어환경을 확 뜯어 고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언론노조는 “미디어법이 국회를 통과하는 순간 언론의 다양한 목소리는 종적을 감추고, 결국 민주주의마저 위협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하고 있다.

생사기로에 놓인 ‘진보 언론사’

위기는 외부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지나치게 광고수입에 의존하는 언론사의 경영방식이 위기를 자초한 측면도 크다. 미디어경영연구소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전국 종합일간지의 광고와 수입 비중은 76.3 대 23.7로, 심각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 대부분 신문이 제조원가에 비해 판매가격이 낮아 찍으면 찍을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다.

기업과 정부의 광고 없이 언론 스스로 생존하기 쉽지 않다. 국민주주·사원주주회사라도 사장으로부터 자유로울지언정 광고주인 정부와 기업으로부터는 그렇지 못하다. 단적으로 한겨레는 3년 연속 20억∼30억원의 흑자를 기록하면서 경영안정화단계에 이르렀으나 지난해 삼성그룹 광고가 빠지면서 곧바로 26억원의 적자로 돌아섰다. 재벌그룹이 언론사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흔드는 모양새다.

신문구독률도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언론재단이 발표한 ‘2008 언론수용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96년 69.8%였던 신문구독률은 지난해 36.8%로 무려 32.5%포인트나 떨어졌다. 독자들의 종이신문 외면은 심각한 수준이다. 국민에게 ‘가장 재미있고 영향력 있는 매체’는 방송이다. ‘가장 풍부하고 신속한 매체’에서는 인터넷에 밀리고 있다. ‘가장 재미있고 편리한 매체’에서도 라디오에 못 미친다.

인터넷 언론사도 전망은 어둡다. 그나마 인터넷 광고시장이 약진하고 있는 편이다. 인터넷 광고시장규모는 2003년부터 2006년까지 4년간 43.3%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내년이면 신문 광고시장을 앞지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정부의 온라인 규제강화 정책으로 인터넷언론사 역시 보릿고개를 겪고 있다. 인터넷 실명제와 인터넷논객미네르바의 구속, 촛불시위 당시 조중동 광고불매운동 네티즌 사법처리에 이어 사이버모욕죄 신설 등 갈수록 온라인 여론형성의 길이 좁아지고 있다.

온라인 언론사는 오프라인 언론사에 비해 구독료와 같은 안정적인 수입구조가 없다. 규모면에서도 대단히 영세하다. ‘노사모’ 회원들의 발걸음이 잦았던 데일리서프라이즈는 지난달 17일 아예 뉴스서비스를 중단했다. 데일리서프라이즈는 “경영난 타개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며 “6월까지 뉴스서비스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온라인 언론사 상당수는 신문발전기금을 통해 통신망 유지·디지털장비 대여 등 간접적인 정부보조를 받고 있다. 문광부가 올해 신문발전기금 예산을 대폭 삭감해 일부 언론사는 데일리서프라이즈처럼 존폐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다. 다행히 지난달 국회에서 기금이 복원됐지만 언제 똑같은 일이 되풀이될지 모를 일이다. 지속가능한 경영모델을 찾지 못할 경우 미래는 없다.

언론 다양성 사라지면 민주주의도 실종

이달 초 목포의 한 경찰서 지구대에 연행됐다가 입에 수건이 물려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피의자가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경찰서에서 소동을 피운다는 이유로 재갈을 물린 것이 산소부족으로 이어져 뇌경색으로 숨진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정책도 이와 유사하다. 결과적으로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꼴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공기인 언론이 질식상태에 놓이면 사회도 건강할 수 없다. 이달 출범 1년을 맞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PD수첩 ‘광우병’편에 대한 시청자 사과를 비롯한 비판보도에 대한 제재 11건 △인터넷에서 ‘2MB’ 표현 자제 권고 △조·중·동 광고 불매운동 관련 게시글 삭제 요구 등 언론매체에 대한 검열기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언론계는 급변하는 미디어환경과 경제위기속에서 생존전략을 모색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프레스펀드’ 조성이나 신문구독료 소득공제·저소득층 신문 무료구독 같은 공공적 지원방안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언론의 다양성과 공공성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절실하다는 주장이다. 언론사의 자기반성도 필요하다. 직원들의 임금삭감이나 원가 절감 같은 내핍은 임시처방에 불과하다. 위기는 곧 기회다. 기업광고와 정부지원에 의존하는 허약한 기반에 대한 체질개선을 서둘러야 할 때다.


<2009년 5월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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