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침의 시대다. 정부에서 내려오는 각종 지침에 기업체와 기관은 울고 웃는다. 그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나온 정부조직개편
지침부터 최근 노동부 산하기관에 대한 단협개선 지침이 나오기까지, 노동자들은 많이도 울었다. <매일노동뉴스>가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미친 정부 지침을 살펴봤다.


작은 정부를 지향한 새 정부가 출범하고, 얼마 안 가 경제위기가 시작되면서 정부의 지침은 꼬리를 물었다. 지난해 3월 정부는 중앙부처의 감원을 시행하는 내용의 부처 정원감축 지침을 내렸다. 앞서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3천427명의 중앙부처 정원을 감축하기로 했다. 이들 가운데 초과정원은 명예퇴직·자진퇴직·전직유도 등 방법을 통해 줄여 나갔다.

중앙부처의 정원감축은 지자체로 이어졌다. 그해 5월1일 행정안전부는 지자체 조직개편계획을 확정하고 지자체에 1만386명의 정원을 줄일 것을 권고했다. 일반직 공무원의 총액인건비도 지자체별로 5~10% 절감토록 했다. 사실상 명령이었다.

지침은 지침을 낳고

출범 전부터 공기업 구조개편을 강조해 온 정부는 이번에는 공기업 선진화방안을 내놓기 시작했다.

지난해 8월11일 인천국제공항공사 등 41개 기관의 민영화·통폐합·기능조정을 내용으로 하는 1차 공기업 선진화방안을 시작으로 올해 3월31일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공기업 선진화방안을 발표했다. 선진화방안에 따른 정원감축 지시로 2만2천명의 공기업 정원이 줄게 됐고 민영화가 되면 1만2천명이 추가로 감축되는 등 2012년까지 3만4천명의 공기업 정원이 줄게 됐다.

지침이나 다름없는 공기업 선진화방안은 추가적인 지침을 낳았다. 1만9천명의 정원감축이 포함된 4차 선진화방안을 2012년까지 마무리한다는 당초 계획과는 달리, “연내에 마무리하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공기업들은 앞 다퉈 정원 감축을 위한 이사회를 열었고 이사회를 막으려는 노조와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을 벌였다.
지식경제부 등은 지난 4월 ‘공공기관 선진화 진도점검회의 결과’라는 공문을 공기업에 내려 보내 6차에 걸쳐 발표한 선진화방안을 마무리하라고 독촉했다.

지난해 8월 시작된 미국발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위기로 전이되면서 지침이 남발되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 이후 나온 각종 지침의 백미를 이뤘다. 경제를 살리기 위한 몸부림이었지만 일방적인 희생강요와 의문시되는 실효성 때문에 반발을 샀다. 방향은 일자리 나누기였다.

행안부와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11월 중앙부처와 지자체에 1만6천명의 행정인턴 채용을, 공공기관에는 1만2천명의 청년인턴 채용을 각각 지침으로 내렸다. 고용기간이 10개월밖에 안 되는 인턴은 낮은 급여수준, 커피나 복사 따위의 잔심부름 등으로 초반부터 실효성에 의심을 받았다.

경제위기가 낳은 ‘부실한’ 지침들

이런 지적을 의식해 행안부는 올해 1월 우수 인턴에 대한 장관 입사추천, 각종 교육강화 등을 내용으로 한 ‘행정인턴십 내실화 지침’을 각 부처에 내려 보내야 했다. 문제는 인턴채용을 위한 재정마련이었다. 서울시를 필두로 일부 지자체에서 기존 공무원들의 기본급이나 상여금을 반납해 행정인턴채용 등에 사용하려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위에 있는 돌을 빼 아래에 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기재부와 행안부는 이런 흐름을 단일한 지침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였지만 공무원 노동계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없던 일이 돼 버렸다.

인턴을 채용하라는 정부지침을 민간기업이 따라 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민간기업인 금융투자협회는 지난해 11월 46개 국내 증권사에 전체 직원 2%에 해당하는 청년인턴 채용을 지침으로 내려 논란이 됐다. 공기업 선진화방안·정부조직개편으로 정원을 줄이면서 행정인턴을 채용하라는 정부지침은 경제위기 시대에 역행하는 일자리 나누기 정책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일자리를 나누기 위한 정부지침은 대졸초임 삭감으로 연결됐다. 지난 2월 기재부는 대졸 초임 2천만원 이상인 114개 공공기관에 대졸초임 조정 권고안을 제시했다. 2천500만~4천만원 수준인 기본 연봉을 민간기업 수준인 2천만~3천만원 수준으로 하향 조정하라는 내용이었다. 같은 일을 하고도 후배들이 적은 임금을 받는 설명하기 힘든 일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초유의 경제불황에 공직사회는 예산 조기집행에 나섰다. 기재부는 ‘2009년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을 2008년 12월30일 각 중앙관서와 지자체에 통보했다.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긴급입찰제도를 적극 활용하고 중소기업 제품 공공구매를 올해 상반기에 70% 집행하라는 내용이었다. 후속조치로 1월에는 ‘예산 조기집행 10대 준수지침’을 하달했다. 이 때문에 멀쩡한 보도블럭을 뜯었다가 다시 설치하는 연말의 풍경을 상반기에도 볼 수 있었다. 업체로부터 미리 구매해 놓은 복사용지가 관청에 산더미같이 쌓이는 웃지 못할 모습이 연출됐다.

하도급업체의 부도책임을 뒤집어쓰기 싫은 원도급업체가 선금을 주겠다는 지방관서의 제안을 거절하는 등 부작용도 속출했다. 선금을 받은 뒤 하도급업체가 부도나면 원도급업체가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구내식당 이용금지’ 황당한 지침들

황당한 지침도 잇따랐다. 언제나 그 대상은 공무원들이었다.
연초에 정부는 광화문과 과천·대전정부청사 공무원들에게 매주 또는 격주에 한 번씩 구내식당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지침을 내렸다. 주변 음식점을 이용해 지역경제를 살리자는 취지였다. 과천과 대전청사는 주변 음식점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공무원들은 수 백 미터를 걸어 지역경제 살리기에 동참해야 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정부청사에 외국계 커피전문점 입점을 허용해 비난을 받았다. 앞뒤가 맞지 않는 전시행정의 본보기가 된 셈이다.

경제위기와 무관한 지침도 있었다. 지난 1월 공무원들은 느닷없이 자신의 휴대번호를 각 기관에 제출해야 했다. 대통령이 공무원들에게 신년인사 문자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공무원들은 사생활 노출이라고 반발했다. 정부는 각자 개인의 판단에 맡긴다며 강제성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공직사회는 지침으로 받아들였다. 공무원들의 신상정보를 수집하라는 정부 지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행안부는 3월 공무원뿐 아니라 그 가족들의 명단과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단체협약 바꿔”…‘노조’ 겨냥

쌀직불금 부당수령과 음주운전 등 각종비위를 적발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댔다. 가족까지 합쳐 750만명의 정보유출 위험에다가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받은 공무원 노동계는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는 정부의 명분 앞에 정보제출 거부 등의 행동에 나서지는 못했다.

지난해와 올해 공무원 노동계를 강타한 정부지침은 행안부의 ‘공무원노조 불법관행 해소 지침’이었다. 지난해 5월 처음 나온 이 지침은 △공무원노조의 유급 전임자 △해고자의 노조가입 △일부 6급 공무원들의 노조가입 활동 △법에서 교섭을 금지한 사항에 대한 단체협약 체결 등을 시정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같은해 12월에 이어 올해 3월 추가 지침이 나왔다.

이달까지 정부에서 지적한 불법관행을 고치지 않으면 해당 기관과 노조원에게 행정·재정적 불이익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기존에 맺은 단체협약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이런 지침들은 각 기관의 노사관계에 중앙정부가 무리하게 개입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공무원노조를 겨냥했던 정부 지침은 최근 공기업노조로 방향을 돌리고 있다.
공기업의 몸집을 줄이자는 선진화방안에서 출발했지만 결국은 ‘노조’가 화살의 과녁이 됐다.

1~6차 공기업 선진화방안 후속조치와 2단계 공기업 선진화계획을 위한 사전단계로 정부와 감사원은 공기업 노사의 단체협약에 메스를 들이대고 있다. 감사원은 지난달 공공기관 선진화과제 점검을 명목으로 각 기관에 단체협약·전임자·노조운영비 지원·노조사무실 등에 대한 현황자료 제출을 요청했다. 이를 토대로 감사를 벌인 뒤 탈법행위가 적발되면 경영진 해임권 등을 행사할 방침이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에도 반영할 예정이다.

같은달 ‘공공기관 선진화 추진점검 워크숍’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맡은 조직을 스스로 개혁하고 자신 없으면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며 기관장들을 압박했다. 공무원노조의 불법관행 해소 실적을 바탕으로 교부금 등 재정지원을 제재하겠다는 행안부 입장과 유사하다. 이런 움직임은 노동부 산하기관에서 가장 먼저 가시화되고 있다.
노동부는 산하(유관)기관의 단체협약을 분석하고 4~5월 두 차례에 걸쳐 단협 시정을 요구했다. 해당 기관의 노조들은 “자율적 노사관계를 해친다”며 소송도 불사한다는 계획이다.
 
노동부 산하기관에서 다른 부처 산하기관으로, 이어 민간기업 노사관계까지 정부지침이 적용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2009년 5월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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