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부 공무원들의 횡령비리 등으로 공직사회와 공무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공무원노조들의 단체협약마저 불법으로 간주되고 있다. 과연 공무원들과 공무원노조들은 불법과 비리의 온상이기만 할까.


“참담했다. 그렇게까지 심각할 줄은 몰랐다. 8년째 해 온 공무원노조의 부정부패추방운동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지난달 서울 양천구청을 시작으로 용산구청·전남 해남과 완도 등 잇따라 터진 공무원들의 공금횡령 사건을 두고 오영택 민주공무원노조 부정부패추방위원장이 한 말이다. 최근 공무원들이 “때려 죽일 놈”이 되고 있다. 언론은 “썩은 냄새가 진동한다”며 연일 공직사회를 공격하고 있다. 금품을 수수하거나 공금을 횡령한 공무원들에게 비리금액의 5배를 물리게 하겠다는 정부 방침도 나왔다.

명절에는 ‘밀착감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달 노동부가 ‘공무원노조의 위법·불합리 단체협약’을 발표하면서 공무원노조도 비리공무원들과 ‘도매급’으로 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다음달 말까지 공무원노조들의 ‘불법관행’을 해소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하지만 ‘비리’와 ‘불법’이라는 말만 붙이기에는 짧은 역사의 공무원노조들이 남겨 온 발자취가 가볍지만은 않다.

95개(2008년 12월31일 노동부 설립신고 기준)로 난립해 있는 공무원노조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공직사회 개혁’과 ‘부정부패 추방’이다. 멀게는 직장협의회 시절부터, 가깝게는 전국공무원노조와 대한민국공무원노조총연맹이 출범했던 2002년부터 관련 활동은 계속돼 왔다. △지방자치단체의 계도지 폐지와 기자실 폐쇄 △명절에 촌지와 떡값 안 받기 △비리공직자 퇴진 △선거감시 △업무추진비 감시 △공익제보 지원 등의 운동이 중앙·지역 차원에서 전개됐다.

캠페인이나 기자회견 등이 중심이었던 사업은 2004년 9월 전공노의 ‘추석 부정부패 감시활동’으로 한층 발전했다. 노조 경남본부에서 선보였던 이 사업은 명절을 전후해 공무원과 국회의원들을 밀착 감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70여개의 감시조는 차량과 캠코더·녹음기·망원경 등의 장비를 갖추고 관청 주차장, 공무원들의 자택 등 금품·향응이 오갈 만한 장소에서 24시간 잠복했다. 그 결과 200여건의 수수사례를 적발, 언론공개와 해당기관에 대한 통보로 이어지면서 공직사회에 경각심을 던졌다. 이런 방식은 전공노와 민공노로 갈라진 현재까지 명절마다 계속되고 있다.

이런 영향으로 공무원·업체·기자들 사이에 노골적으로 금품이 오가는 현상은 많이 사라졌다는 것이 두 노조 관계자들 말이다. 오영택 위원장은 “업체의 선물을 받게 되더라도 노조를 통해 불우이웃을 돕는데 사용하는 사례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까지 지방일간지 기자로 일한 홍성수 전공노 편집부장은 “기자실에서 대놓고 주고받던 돈봉투가 사라진 것은 공무원노조가 생긴 뒤 나타난 뚜렷한 변화”라고 말했다.

관권선거·업무추진비 낭비에 ‘제동’

공무원노조의 반부패 운동역사에 또 하나의 획을 그은 것이 2007년 10월 신중대 당시 안양시장이 불법선거 확정판결을 받고 물러난 사건이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안양시장 3선에 성공한 신 전 시장이 시청 공무원을 동원해 홍보물을 만들고 업무추진비를 선거운동에 유용했다며 전공노 안양시지부가 고발한 것에 따른 결과였다. 공무원노조의 고발이 관권선거를 통해 당선된 기관장의 옷을 벗기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호성 안양시지부 사무국장은 “그 사건 이후 지방선거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선거홍보물을 만드는데 참여했던 공무원들의 관행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비슷한 사건이 조만간 재현될 수도 있다. 민주공무원노조는 지난해 11월 16개 광역지방자치단체장들의 2년간 업무추진비 내역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단체장들이 사회복지시설 방문이나 불우이웃돕기보다는 선물구입비나 접대비에 막대한 업무추진비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당시 업무추진비 공개 내역은 지자체가 제출한 자료에 대해 통계만 내서 발표한 것이었다. 민공노는 지자체가 제출한 자료와 실제 집행 내역을 비교분석하는 작업을 최근 마무리했다. 노조는 조만간 이를 언론에 공개하고 문제되는 10여명의 단체장들을 횡령과 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형사고발할 예정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민공노 관계자는 “지난해 정보공개가 절반은 허위인 것으로 판명났다”며 “업무추진비를 선거운동에 사용한 정황도 다수 확인했다”고 말했다. 2006년 2월부터 공무원노조가 합법화되면서 단체협약으로 공직사회 개혁 등을 제도화하려는 노력도 결실을 맺고 있다. 민공노와 전공노 등 공무원노조들은 표준단체협약안을 만들어 각 지부에 지침을 내렸다. 그 결과 △4급 이상 공무원들의 50만원 이상 업무추진비 내역 공개 △부패신고 공무원 불이익 금지 △감독소홀 상급자 책임 묻기 △청렴도 수준에 따른 포상 등의 협약이 부산·경남·광주·전라남도 지역을 중심으로 체결됐다.

시민을 위한 단체협약

부정부패방지뿐만 아니라 시민의 세금이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것을 막기 위한 협약도 있다. 전남 해남군은 지방언론사의 요구에 따라 무분별하게 구독해 온 신문의 구독기준과 부수를 정했다.

경기도 광명시는 신문광고예산 집행기준을 노사협약으로 마련했다. 지방·지역신문의 횡포와 언론-공무원 간의 유착을 막기 위한 조치다. 부산 영도구는 동사무소를 통해 기준없이 지급되던 지역 사회단체 지원보조금을 구청 담당부서가 집행토록 해 지급기준과 사용내역을 명확히 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노조 요구에 따라 시민들의 공익을 직접 겨냥한 단체협약도 있다.
경남 거창군은 △공공건물의 장애인시설 확충 △관내 학교 무료급식 확대 등을 단체협약에 포함했다. 거창과 진주시는 △비상·재난시 시민안전 등을 위한 원격재난경보(통합방송망) 구축 △납세자의 민원처리 등 권익보호를 위한 납세보호관제도입도 명시했다. 각종 운동과 단체협약을 통해 부정부패 방지나 시민공익 향상을 위한 공무원노조들의 노력이 계속돼 왔지만 한계는 있다.

발목잡힌 공익활동
 
최근 하위직을 중심으로 잇따라 터진 공금 횡령사건을 보면 철저하게 개인적으로 이뤄진 비리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다. 부정부패 방지와 관련해 웬만한 단체협약은 갖췄는데도 횡령사건을 경험한 민공노 해남군지부 관계자는 “해당 직원은 부서 내에서도 평판이 좋은 직원이었기 때문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공무원노조들이 부정부패추방 운동의 무게를 자정운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오영택 위원장은 “그동안 노조의 사업이 상급자를 감시하는 데 중점을 뒀다면 이제는 하위직들의 내부 자정운동도 신경써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반면 일부 극소수 비리 때문에 도매급으로 불신을 받고 있는 대다수 선량한 공무원들의 반감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많은 기관에서 공직사회 개혁이나 공익행정 실현을 위한 노사단체협약을 맺었지만 실제 시행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학교 무료급식 확대와 납세보호관제도 도입 등을 단협에 포함시켰던 민공노 거창군지부 관계자는 “노사 모두 준비부족으로 단협이 실제 적용되는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부정책이나 예산집행 등에 대한 교섭을 금지하고 있는 현행법의 한계도 지적된다. 부정부패 방지와 공정한 예산집행 등의 내용을 담은 단체협약 상당수가 비교섭 사항으로 분류되면서 시정돼야 할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최근 행정안전부와 노동부가 ‘불법관행 해소’를 추진하면서 최소한의 장치인 단체협약마저도 위협받고 있는 셈이다.

서원석 한국행정연구원 박사는 “공무원노조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단협을 맺는 것은 긍정적”이라며 “그런 것이 과연 위법사항인지 여부는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2009년 4월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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