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개혁의 핵심인 신용사업-경제사업 분리(신경분리) 논의가 수면 위에 떠오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농협 신경분리를 농협중앙회와 국내 농업의 운명을 좌우할 최대 화두로 꼽고 있다. 결과에 따라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확보할 것인지 아니면, 협동조합 역시 기업의 효율성이라는 기준에 따라 재편될 것인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농협에 ‘농협개혁’의 폭풍이 불고 있다. 농협중앙회장의 권한을 축소하는 농협 지배구조 개편은 이달 말 임시국회에서 논의할 농협법 개정을 통해 마무리될 전망이다.


MB 가락시장 발언, 농협개혁 시동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12월4일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을 찾았다. 좌판에서 무시래기를 팔던 박부자 할머니는 “하루에 2만원, 많이 팔면 3만원 정도 판다”며 이 대통령의 팔을 잡고 울음을 터뜨렸다. 이 대통령은 “하다하다 어려워지면 언제든 나한테 연락을 달라”고 말한 뒤 시래기 네 묶음을 샀다.

이명박 대통령의 이른바 ‘가락시장 발언’에 이어 지난해 말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 회장의 ‘휴켐스 게이트’ 등 비리사건으로 농협개혁은 급물살을 탔다. 4월 임시국회 본회의 처리를 앞둔 농협개혁의 내용의 핵심은 직선제인 현 중앙회장 선출방식을 간선제로 바꾸고 조합장을 비상임화하는 등 주로 지배구조에 관한 것이다. 정치권과 농민단체, 노동계도 이 같은 지배구조 개편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농협개혁의 핵심은 지난 94년부터 25년을 끌어온 신경분리 문제다. 농협 신경분리는 금융을 담당하는 신용사업과 농축산물 유통 등을 담당하는 경제사업을 분리하는 것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지난 2004년 이후 신경분리를 주장했다. 전농은 “농협중앙회가 경제사업을 등한시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사업을 활성화해서 농가소득을 올리고 농민들의 농협이라는 제 역할을 찾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농협중앙회 ‘2연합회 2지주회사’체제로 

농협중앙회의 자회사인 농협경제연구소는 지난 2월 컨설팅업체 맥킨지와 법률사무소 김앤장 등에 연구용역을 준 이른바 ‘맥킨지 보고서’를 제출했다. 맥킨지 보고서의 분리방안은 농협중앙회를 NH금융지주와 NH경제지주로 분리하는 것이다. 분리 후 농협중앙회 운영은 각 지주회사 출자에 따른 배당과 상호금융부문 운용 수익으로 자금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농민단체와 노동계가 요구하던 연합회체제와 정반대의 내용이다. 결국 농림수산식품부 산하 농협개혁위원회(농개위)는 지난달 31일 정부에 연합회체제와 지주회사체제를 절충한 ‘신경분리 추진 건의안’을 제출했다.


 

농협중앙회를 ‘농협경제연합회’로 바꾸고 그 밑에 경제지주회사와 금융지주회사를 두는 것이다. 현재 농협중앙회 안에 ‘상호금융 총본부’로 있는 지역 농협의 상호금융부문도 별도의 연합회로 분리해 ‘2연합회, 2지주회사 체제’로 바꾸는 방식이다. 농개위는 자본금 배분 문제에 대해 경제연합회가 12조2천억원 규모의 농협중앙회 자본금 전부를 넘겨받아 경제지주에 5조3천억원, 금융지주에 6조1천억원씩 출자하고, 상호금융연합회에 8천억원을 배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경제사업에 손 떼나

이렇게 되면 금융지주가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 8%를 충족하려면 자본금 6조원이 더 필요한데, 이는 농협 내부에서 우선 조달하되 부족할 경우 정부가 출자하도록 했다. 농식품부는 “개혁위 방안을 토대로 이해당사자들과 협의, 연내 신경분리를 골자로 하는 농협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농협중앙회·농민단체·농협관련 노조 등과 협의하겠다는 것으로, 현재 정부는 신경분리 추진의 시기와 속도를 저울질하고 있는 셈이다.


 


농개위의 안은 그동안 농민단체와 농협관련 노조들이 주장한 연합회체제와 정부가 주장한 지주회사체제를 절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농협 신경분리의 핵심이 경제사업 활성화를 통한 농업 살리기가 아닌 ‘농협중앙회 신용사업의 NH금융지주로의 분리’라고 지적한다.

분리의 형식보다는 분리의 내용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창한 전농 정책위원장은 “전농이 주장했던 기본 틀은 수용했지만 지주회사 방식에 대한 이견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그는 “주식시장에 상장을 하지 않는 지주회사로 출발한다는 내용지만 경영여건이 어려워 상장을 할 경우 차단막은 전혀 없는 상태”라고 우려했다.

농민단체와 노동계는 농협중앙회 사업에 농협 본연의 역할을 하는 지도사업(교육지원)을 하나의 핵심사업으로 분리해 내고, 중앙회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은 두 개의 연합회로 분리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농협중앙연합회는 지역조합과 연합회가 공동으로 비용을 분담하는 비사업법인으로, 신용사업연합회는 지역 농축협이 공동으로 출자해 신용사업만을 담당하는 것이다. 경제사업연합회는 지역 농축협과 품목조합이 공동으로 출자해 경제사업만을 담당하는 방식이다. 지역농협 전체가 농협중앙회의 회원이면서 동시에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주회사 방식의 신경분리는 지역조합을 주주로 보고, 지배권은 금융지주회사가 갖는 방식이다. 까닭에 농민단체와 노동계는 현재 방식의 신경분리가 될 경우 신용사업의 경쟁력은 확보할 수 있지만 경제사업의 경쟁력은 확보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서필상 농협노조 위원장은 “지주회사가 핵심인 이번 방안을 아무리 살펴봐도 농민들의 삶을 좋게 하는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며 “농협중앙회 신용사업이 어려워진다는 이유로 경제사업을 자르고 나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농민단체 일각에서는 농협중앙회를 주식시장에 상장해 매각하자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상장에 따른 매각차익으로 추산되는 20조원을 경제사업에 투자하자는 것이다. 농민들이 이번 개혁안을 농협중앙회의 개혁안이지 농업과 농민을 위한 개혁안으로 보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주회사 설립도 가시밭길

“지주회사가 수익을 많이 내서 경제사업에 투자하면 좋은 것 아니냐”는 이른바 스필오버(넘쳐 흐리기) 효과가 농협중앙회의 금융지주회사 설립의 주된 근거다. 은행이 돈을 많이 벌어야 농민도 좋아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2006년 옛 재경부는 지주회사의 자회사로 나올 이른바 농협은행에 BIS비율 기준 완화와 함께 현재 농협이 하지 못하는 자동차보험업 허가까지 거론하면서 신용사업의 분리를 주장했다.


 


신경분리를 위해서는 금융지주회사법· 은행법·공정거래법·보험업법·법인세법 등 개정해야 할 관련법이 너무 많다. 게다가 지주회사체제가 될 경우 금융지주회사의 수익이 경제사업으로 가는 구조도 막힌다.

현재 농협중앙회는 영업이익의 43%가량을 경제사업에 투입하고 있다. 농협은 조세특례법으로 고유 목적사업비라는 비용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일반 회사에서 이같은 일이 벌어지면 바로 분식회계로 불법이 된다. 연합회체제로 가면 이 통로는 계속 유지할 수 있지만 지주회사체제로 가면 이 통로는 끊긴다. 대신 농민조합원들은 모두 주주가 되어 지주회사에 투자한 대가의 배당만 받는다. 농협중앙회의 재정 안정성에 기여하는 시군 금고 수익도 지주회사체로는 어려워진다.

 분리의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

농협중앙회는 지자체 예산을 유치한 시군금고에서 전체 수익의 30%가량을 내고 있다. 지주회사 중심의 체제로 신경분리가 이루어질 경우 일반 은행과의 경쟁도 불가피하다. 농협과 관련한 노조는 5개다. 금융노조 농협중앙회지부와 사무금융연맹 산하 전국축협노조, NH농협중앙회노조, 농협노조, 농협중앙회노조(비정규직)가 있다.

신경분리와 관련 노조마다 약간의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농민단체와 달리 농협노조·전국축협노조·금융노조 농협중앙회지부는 신경분리에 반대해왔다. 신경분리가 될 경우 신용사업에 종사하는 농협중앙회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전축노 관계자는 “신경분리가 이뤄질 경우 경쟁력 있는 점포만을 골라 통폐합하는 과정에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농민단체와 노동계 등 엇갈렸던 입장들은 최근 잇단 정책 토론회 등으로 하나로 모아지고 있다. 단순한 신경분리의 찬성과 반대를 넘어 협동조합 정신을 살리는 신경분리에 대한 모색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농협개혁의 핵심이 분리의 형식보다는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박진도 충남대 교수(경제학)는 “이번 농협개혁은 농협중앙회 자체의 사업 합리화를 위한 개혁이지 농민과 회원조합을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원래 농협개혁 신경분리 취지는 회원조합을 위한 중앙회를 만들자는 것”이라며 “위기에 처한 신용사업만을 살리기 위한 개혁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2009년 4월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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