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일반사업장이나 농업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만 적용되고, 재해 발생률이 높은 농업인은 배제돼 있다. 한·미,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FTA)이 추진돼 농업개방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피해가 예상되는 농업인을 위한 사회안전망 강화차원에서 산재보험을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노동연구원과 농촌진흥청·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이 2일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개최한 ‘산재보험 발전과 사회안전망 확충’ 국제세미나에서 이 같은 주장이 나왔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공공부문재해보험·농민사회보험 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해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학생재해보험과 농민재해보험에 대해 소개했다. 윤조덕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한국 산재보험의 사회안전망 기능’, 이경숙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농업공학부 농업연구관이 ‘농업인 업무상재해 현황과 국가관리의 방향’,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가 ‘한국의 농업인재해보장제도 도입’에 대해 발표했다.

농업재해율 제조업보다 높아

업종별 산업재해현황에 따르면 농업은 제조업이나 건설업보다 높은 재해천인율(천명당 재해율)을 보였다. 2007년 농업사업장 3천818개에서 일하는 노동자 3만4천528명 가운데 444명이 재해를 입었다. 천명당 12.86명이 재해를 당한 것이다. 제조업의 천인율은 11.02명, 건설업은 6.6명으로 나타났다.

농촌진흥청에서 2000년부터 연구한 결과, 농업인의 근골격계 질환 유병률은 비농업인보다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2001년도 국민건강조사 원자료를 이용해 농림어업인과 비농림어업인의 질환발생양상을 분석한 결과에서는 농림어업인이 비농림어업인에 비해 의사진단 만성질환이 1.45배, 근골격계질환은 2.4배 높은 것으로 보고됐다.
이경숙 농촌진흥청 농업연구관은 “농업은 일반 산업현장에서 발견되는 모든 유해요인이 존재한다”며 “농업인에 특화된 제도마련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농업인 재해 보장제도 없어

민간차원에서 농협은 안전공제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정부의 재정보조를 통해 농업인 재해를 직접 보상하고 있으나 임의가입 형태고, 보장대상 범위도 일부 계층에 국한돼 있다.
지난 2004년 제정된 ‘농림어업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산어촌지역 개발촉진에 관한 특별법’에는 농업인 업무상재해에 대한 국가적 지원을 명시하고 있다. 농림어업인 삶의 질 향상 5개년 기본계획에도 농업인의 직업성 질환과 사고에 관한 관리가 포함돼 있다.
하지만 자영농업인의 업무상재해를 관리할 법적·행정적 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다. 이경숙 연구관은 “농업인의 업무상 재해 발생률이 타산업군보다 높고 작업 관련성이 높다”며 “직업적 보호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는 농업인 재해보장의 관리·운영의 최종책임자로 농림수산식품부를 지목했다. 다만 사업 집행기관은 노동자재해 사업을 관장해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는 근로복지공단이나 농업인 안전공제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농협을 제안했다. 다만 공단은 행정적 측면에서는 제도 운영에 장점이 있지만 농업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하는 취약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농협은 기존에 안전공제제도를 시행하고 있어 관련 업무라는 점은 유리하나, 사회보험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연관성이 낮다고 지적됐다.

김 교수는 “새로운 기관을 만들어 불필요한 관리운영비를 지출하거나 별도 기관을 설립한 후 이를 해체하는 것보다는 농업인 관련 기관에서 관장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농업인에 특화된 제도 구상 필요

김 교수는 또 농업인 재해의 성격은 일반 노동자들의 산재와 차이가 있기 때문에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반 산재와 다른 차이점으로는 △재해 발생 위험 증가가 인원수보다는 농사규모(면적)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 △전업농·겸업농·부업으로 하는 농업인이 있어 적용대상 기준을 정해야 한다는 점 △농업인은 재해가 발생해도 소득손실이 바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는 점 △농업인들 중에는 고령자가 많아 질병이 노령화때문인지 농업활동으로 인해 발생한 것인지 구분이 어려운 점 등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농민재해보장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농민재해의 성격과 특성을 충분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며 “근본적으로 사회보험의 형태이면서 다른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OECD 국가 60%, 자영농업인도 산재보험 적용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0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가운데 자영농업인에게 산재보험을 강제적용하는 국가는 18개국이다. 그리스와 이탈리아·스페인·프랑스·독일·헝가리·룩셈부르크·오스트리아 등 유럽 국가들이다.
1887년 산재보험을 도입한 오스트리아는 1929년부터 농업인에게도 산재보험을 적용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농림업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재해보험법이 1886년부터 실시됐다. 농작업 재해가 발생했을 때 농업인들의 치료는 물론 재활과 농업경영급여·상해급여를 제공한다.
임의적용하는 국가는 노르웨이·스위스·포르투갈·일본 등 4개국이다. 한국과 호주·영국·캐나다 등 8개국은 자영농업인을 산재보험 적용에서 제외하고 있다.
OECD 회원국의 60%가 농업인에게도 산재보험을 적용하는 배경에 대해 이경숙 농촌진흥청 농업연구관은 “농업이 상대적으로 저소득계층이고 국가전략상 농업·농촌 보호가 국가의 식량안보와 지속적인 경제발전의 근간이라는 점을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조현미 기자


 

학생에도 재해보험 적용하는 유럽 국가들
독일에서는 노동자·농업인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재해보험을 적용하고 있다. 독일의 학생재해보상보험(GSUN)은 산업재해보상보험의 한 부분으로 1971년 제정됐다.
독일연방법원이 67년 판결을 통해 GSUN이 제정되는데 역할을 했다. 당시 법원은 “사회적 법치국가는 체육시간과 같은 학교의 교육과정에서 생긴 신체의 중대한 상해에 대해 아동에게 적절하고 공적이며 법적인 보상을 보장할 수 있는 사전 예방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후 4년 만에 법이 제정되면서 학생들의 교내사고는 산업재해로, 등·하교길 재해는 출·퇴근길 재해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재해보험은 주간보호시설을 이용하는 아동과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대학생에게 모두 적용된다. 비용은 학교기관과 주에서 부담한다.
지난 2007년 독일에서는 140만건의 사고가 교육시설 또는 등·하교길에 발생해, 총 7억3천만 유로를 재활치료와 손해보상금으로 지급했다. 4천550만 유로는 예방조치를 위해 사용했다.
요제프 미하(Josef Micha) 독일 노르드라인 베스트팔렌주 공공부문재해보험 이사장은 “재해가 발생했을 때 상해를 입은 학생은 사고책임과 상관없이 신속하게 질 좋은 서비스를 보장받고 있다”며 “교내화합을 보장하고자 하는 목표를 달성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가족부의 ‘아동·청소년백서’에 따르면 지난 98년부터 2007년에 국내에서 발생한 어린이 안전사고 사망자는 총 10만930명이다. 이 중 교통사고가 48.1%(5천254명)로 가장 많았고, 익사(18.5%)·추락(9.8%)·질식(9%)·화상(4.7%)·중독(0.9%) 순이었다.
윤조덕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어린이부터 사고와 질병에 대해 체계적으로 예방하고, 사고 후 신속한 요양과 재활을 위한 학생재해보험제도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조현미 기자

 

<2009년 6월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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