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사용자단체 제2호가 공식 출범을 눈앞에 두고 있다. 금융권 사용자단체인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금산협)가 다음달 출범한다. 시중·국책·지방은행과 금융유관기관 34개 단체는 지난 18일 금산협 창립총회를 열고 출범을 공식화했다. 금산협은 노동부에서 설립허가증을 받는 대로 활동을 시작한다.

금융권 노사, 사용자단체 출범에 기대
금산협은 지난 2006년 4월 출범한 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에 이어 두 번째로 설립되는 법적 사용자단체다. 금산협 출범을 주도하고 있는 은행연합회는 노동부 인가를 받기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이다. 보건의료산업사용자협의회는 2007년 5월 출범했지만 노동부의 인가를 받지 않아 임의단체로 활동하고 있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사용자단체를 “노동관계에 관하여 그 구성원인 사용자에 대하여 조정 또는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용자의 단체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금산협 출범에 대해 금융권 노사 모두 환영의 뜻을 밝혔다. 관행적으로 진행했던 금융권 산별교섭이 법률적인 구속력까지 갖추면서 제도적인 틀을 완성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원문희 KB국민은행 노무팀장은 “금융노조가 산별노조로 노동계를 대표하듯이 금융권 사용자들도 사용자단체 구성을 통해 대등한 대표성을 갖추게 될 것”이라며 “산별교섭이 제도적 틀을 갖추면서 효율적이고 실효성 있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광규 금융노조 정책실장도 “사용자단체가 만들어지면 임금·단체협상뿐만 아니라 금융산업 발전에 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용자 대표성 강화, 산별교섭 안정화

개별 기관의 노사업무 담당자들은 △사용자의 대표성과 지도력 강화 △효율적인 임금·단체협약 교섭 진행 △사용자의 노사관계(임단협 포함)에 대한 전문성 및 정책역량 강화 △산별교섭 제도화를 통한 개별 기관 노사관계의 안정화 등을 기대했다. 산별중앙교섭이 안정화하면 지부 노사관계도 좋아지지 않겠냐는 것이다.

고정현 우리은행 인사부 부부장은 “은행연합회가 임단협 교섭을 위해 별도의 위임장을 받지 않아도 되고 이전에 비해 위상이 강화되면서 효율적인 업무 수행이 가능해지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조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오일석 금융노조 금융결제원지부 위원장은 “개별 기관과 지부의 현안을 산업적 차원에서 풀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많아지고 있다”며 “산별중앙교섭이 금융권 전체의 복지 수준을 평준화시키면서 개별 기관 간 차별을 해소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노사가 산업구조 변화나 고용조정 문제를 놓고 머리를 맞대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금융 노사의 대표성과 지도력이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산별 차원에서 합의된 사항들이 개별 기관에서 지켜지지 않으면 금산협 출범에 따른 산별교섭 강화나 노사관계의 안정화는 모두 헛된 꿈이 되기 때문이다.

금융노조는 최근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개별 지부가 임단협 노사합의를 선언을 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징계를 받은 지부도 세 곳이나 된다. 은행연합회는 금융노조와 잠정합의까지 했던 임금협상안에 대한 내부 이견 조율에 실패해 지도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임금협상이 결렬된 지난 18일은 금산협 창립총회가 진행된 날이다. 사용자단체 구성을 계기로 금융 노사 모두가 지도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금산협이 은행연합회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것도 장기적인 과제로 제기됐다. 은행연합회는 은행권을 대표하는 이익집단의 성격이 강한 사업자단체다. 연합회는 교섭 시기에만 노사관계 업무를 하고 일상적인 활동을 진행하지 못했다. 노사가 임단협과 산업적 의제를 발굴해 협상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일상 활동과 전문성 강화가 필수다. 한 시중은행의 노사담당 관계자는 “당장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지는 않는다”면서도 “금산협이 사용자단체로서의 대표성을 갖춰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은행연합회가 관행적으로 사용자단체 역할을 했지만 산별교섭에 참여하는 모든 조직의 이해를 일상적으로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며 “법적인 요건을 갖춘 사용자단체가 설립되는 만큼 사무국 등을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노사 기대감 표출 … 일부 우려도

금산협 회원 기관은 은행연합회보다 많다. 은행연합회는 13개의 시중·지방은행과 5개의 특수(국책)은행을 포함해 21개 기관으로 구성돼 있다. 반면 새롭게 구성될 금산협은 은행연합회 회원 기관에다 금융유관기관을 더한 34개 금융기관을 포괄하는 조직이다. 금산협은 금융기관(회원사)별로 500만원 씩, 모두 1억7천만원의 출자금도 마련했다.

금융권 노사는 대체로 기대감을 표출했지만 일부에서는 우려를 제기했다. 공광규 정책실장은 “사용자들의 교섭능력이 정교해지고 정책역량이 강화되면 노조에 유리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사용자단체 출범에 맞춰 노조도 상응하는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조 일부에서는 사용자단체 출범을 계기로 산별교섭이 강화되지 않을 경우 노사관계가 오히려 후퇴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노조는 사용자단체를 구성하는 대신 단체협약 기간을 현행 1년에서 2년으로 늘리는 양보를 했다. 조상준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 정책본부장은 “금융노조가 산별 차원에서 세부적인 사항까지 조율하지 못한다면 단체협약 갱신 기한까지 내준 지부 입장에서는 협상력 약화로 인해 불리한 입장에 처할 수 있다”며 “산별교섭이나 중앙노사위원회에서 현안을 제대로 풀지 못하면 지부 노사갈등이 심화되면서 노사관계가 후퇴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2009년 3월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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