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지난 23일 이명박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을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전 대통령이 했다던 노변담화(爐邊談話·Fireside Chat)로 불렀다. 노변담화는 마치 난로 옆에 모여 얘기를 나눈다는 뜻이다. 루즈벨트는 소통을 위해 당시에는 선진적인 도구였던 라디오를 활용했다. 실험은 성공해 30여차례의 라디오 연설로 국민들로부터 2천만통의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대공황이 본격화된 32년 당선돼 뇌일혈로 사망할 때까지 대통령 자리에 있었고, 내리 4선을 했다.

루즈벨트 찾아낸 MB

경제위기 상황에다, 촛불시위로 궁지에 몰린 이명박 대통령이 루스벨트에게서 리더십의 해답을 찾은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국회 시정연설에서는 “문제는 오히려 심리적인 것”이라며 루스벨트 대통령이 취임연설에서 했던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는 말을 인용했다. 특히 루즈벨트의 뉴딜은 정부의 경제회복 프로그램에서 자주 인용하는 메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광복절 연설에서 ‘새로운 60년의 비전’이라며 제시한 저탄소 녹색성장은 ‘녹색뉴딜’로 이름을 바꿨다. IT뉴딜, 교육뉴딜 등 부처마다 ‘뉴딜’ 바람이 불었다. 정부는 최근 휴먼뉴딜을 추진해 녹색뉴딜과 양대 축으로 정책을 기획하겠다고 발표했다. 바야흐로 뉴딜의 계절이다.

‘잊혀진 사람들을 위한 뉴딜’
그런데 뉴딜을 이렇게 사용하는 것을 루즈벨트가 안다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것이다. 루즈벨트표 뉴딜과 이명박표 뉴딜은 정반대의 길로 향하고 있다. 뉴딜의 공식 명칭인 ‘잊혀진 사람들을 위한 뉴딜’을 보면 그 이유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뉴딜정책 과정에서 추진됐던 제도개혁은 단기간에 착수했지만 80년대 레이건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이후 미국의 중심 가치로 남았다. 1933년 3월 ‘긴급은행법’ 통과를 시작으로 100일 동안 진행된 제도개혁의 내용은 광범위했다. 상업은행의 방만한 경영을 규제하기 위한 은행법과 증권거래소법이 제정됐다. 실업자 구제정책을 위해 ‘긴급구제법’이 제정돼 빈곤가구에 현금과 현물을 주는 실업부조제도를 시작했다. 특히 기업간 과당경쟁을 제한하고 노동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을 인정하는 ‘전국산업부흥법(NIRA)’이 제정됐다. 산업부흥법에 따라 노동시간 단축이나 최저임금 의무지급 같은 개념이 등장했다.

기업은 규제, 노동권은 강화

소득분배 불평등을 개선하고 재정지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누진제도를 도입해 소득세를 강화했다. ‘사회보장법’을 제정해 빈민에게 월 20달러의 정부 보조를 시작했다. 사회보장법 역시 기업인들로부터 강한 저항을 받았다. 황덕순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뉴딜 정책의 추진자들은 전국민 의료보험제도와 고용보장제도가 35년 사회보장법에서 제외된 뒤 다시 추진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정치기반 약화와 2차 세계대전으로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만들어진 사회안전망은 이후 미국 복지제도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임기를 시작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전국민 의료보장제도 도입을 추진하는 것 역시 뉴딜정책을 완성하는 과정의 하나다. “자유방임주의의 종언, 독점자본주의 모순 시정, 미국복지제도의 토대형성 등 철학과 이념, 제도의 대전환을 가져왔다는 데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는 평가는 그래서 온당하다.

‘올드딜’만 가져온 MB뉴딜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하는 뉴딜은 루즈벨트의 뉴딜과 정확하게 대척점에 서 있다. 제도에서 특히 그렇다. 금산분리 완화를 비롯해 잇따른 금융규제 완화 조치를 취했고, 노동시장 규제도 완화하고 있다. 기업 감세와 종부세 등 부유세 완화도 마찬가지다. 사회보장 예산을 깎고 실업부조제도에 강한 불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 역시 뉴딜과 다르다. 결국 정수는 빠뜨린 셈이다. 대신 토목공사를 통한 경기부양이라는 낡은 제도를 선택했다. 이마저도 “국부의 분배를 공평하게 나눌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만들기 위해 뉴딜에 헌신하겠다”던 루즈벨트와는 다른 길이 될 모양이다.

경실련은 지식경제부가 일자리 만들기를 위해 앞으로 5년간 투입할 재정의 90.1%는 대기업과 토건재벌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기업에게 돌아갈 돈이 무려 105조7천억원에 달한다. 특혜성 토건사업만 벌인다는 주장이다. 나머지 돈은 중소기업이 1.4%(1조7천억원)을, 노동자와 자영업자가 8.5%(10조2천억원)를 가져간다.
경실련은 “사업타당성 조차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려 한다”며 “급조된 사업권한을 토건재벌에게 넘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그래프 참조>
 

대책이 부풀려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 1년간 정부가 발표한 일자리 대책을 망라해보니 무려 5년간 288조원을 부어 446만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120조6천억원은 정부가 투자하고 나머지 167조3천억원은 민간이 투자한다. 446만개 가운데 43%인 193만개는 건설공사장 일자리였다. 그런데 경실련은 건설산업구조를 감안하면 실질 일자리는 105만개에 불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7% 성장 대 300만개 일자리 창출을 공약으로 내걸었는데, 경기악화로 마이너스 2% 성장할 때 446만개 일자리를 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지적했다.

일자리는 임시일용직이 대부분

일자리 질도 문제다.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대표적인 사업인 녹색뉴딜에서 보면 알 수 있다. 정부는 녹색뉴딜을 통해 95만6천여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밝혔는데 그 중 91만6천개는 건설·단순생산직이다. 24일 발표한 추가경정예산도 마찬가지다. 일자리 창출 예산에 2조7천950억원이 배정됐는데 그 중 2조5천605억원은 한 달 85만원짜리 단기 공공근로다. 취업기회를 확대한다며 중소기업 청년인턴에 644억원, 학습보조 인턴교사 478억원, 대졸미취업자 323억원 등 8천억원이 배정됐다.

박주현 시민경제사회연구소장은“중소기업인턴, 학습보조인턴 등의 일자리 15만개에 1인당 553만원이 배정됐다”며 “고스란히 인건비로 지급된다고 해도 월평균 46만원 일자리”라고 지적했다. 학습보조인턴교사는 1인당 191만원이 배정돼 월 평균 16만원짜리 일자리다. 추경에도 건설예산을 26% 늘려 2조8천414억원이 배정됐다. 금융기관 출자와 대출을 확대해 6조5천676억원을 배정했는데 대부분 서민과 중소기업 지원에 쓴다. 박 소장은 “현 상황에서 융자확대는 대책 없이 미래의 빚을 끌어 쓰는 것”이라며 “거품이 꺼질 때 경제에 부담을 줘 신용불량자를 양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추경의 초점이 기업지원에 쏠려 있다는 것이다.

이는 1936년 재선에 도전하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선거 하루 전에 매디슨 스케어 가든에서 했던 연설을 떠오르게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평화를 위협하는 적, 산업과 금융 분야의 독점·투기, 분별없는 은행의 관행, 계급 간의 대립, 파벌주의, 전쟁으로 부당이득을 챙기는 이들과 투쟁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미국정부를 자기 사업을 돕는 조력자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조직적으로 조성된 자금 위에 세워진 정부는 조직범죄단이 만든 정부만큼 위험한 법입니다.” 
 
<2009년 3월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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