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보건·의료·사회서비스 부문에서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노동계는 참여정부 시절 제안된 ‘보호자 없는 병원’ 사업을 다시 주목하고 있다. 여성 일자리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고, 의료서비스의 질도 높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매일노동뉴스>가 보호자 없는 병원 사업을 진행 중인 한양대의료원과 인천중앙병원을 찾았다.


#1.간병인 송수희(54)씨. 하루 24시간 환자 곁을 지키다 보면 자신도 환자가 되는 기분이다. 생계를 위해서 집안일은 뒷전으로 미뤘다.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것도 힘든 일이다. 그녀의 생활이 2007년부터 달라졌다. ‘보호자 없는 병원’ 시범사업 병원으로 선정된 한양대의료원에 근무하면서 그녀의 근무시간은 하루 8시간으로 줄었다. 연·월차도 쓸 수 있다. 그녀는 “몸이 가벼우니까 확실히 환자에게 신경을 더 쓰게 된다”고 말했다.

#2.지난해 12월 기계를 설치하다 추락해 하반신을 움직이지 못하게 된 김태섭(52)씨. 산재의료원 인천중앙병원에 입원한 그는 2개월 전 ‘보호자 없는 병동’으로 옮겨 왔다. “일반병실에 있을 땐 간호사가 적어 몸이 아파도 바로바로 치료를 받을 수 없어 답답했죠.”김씨는 보호자 없는 병동으로 옮긴 뒤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상주하고 있는 간병인들 덕분에, 몸에 이상이 생기면 곧바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됐다.

김씨는 비용 부담도 덜었다. 일반병실에 있을 때 그는 산재보험에서 하루 4만2천원의 간병료를 받은 뒤, 개인 간병인을 고용해 6만원을 지급했다. 매일 1만8천원을 사비에서 지출했다. 하지만 이제는 무료로 간병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최근 ‘보호자 없는 병원’ 사업이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노동계는 이 사업을 통해 여성 일자리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보호자 없는 병원은 말 그대로 보호자의 간병이 필요 없는 병원이다. 보호자나 개인 간병인 없이도 병원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보호자 없는 병원 사업은 참여정부 시절 제안됐다. 참여정부는 치매노인 등의 재가 간병을 위한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와 급성기 입원환자를 위한 보호자 없는 병원 사업을 추진했다. 이 가운데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는 3년간의 시범사업을 거쳐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됐다. 제도 시행과 함께 요양보호사 22만여명이 배출됐고, 이 중 5만여명이 취업상태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사설 학원을 통한 보호사 자격 남발, 공급 과잉에 따른 요양보호사 저임금 문제 등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사업이 재가환자를 위한 정책이라면, 보호자 없는 병실 사업은 입원환자를 위한 정책이다. 그러나 이 사업은 제도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돈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했다. 이 사업을 담당했던 보건복지가족부 관계자는 “당초 정규직 간호사를 늘려 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이자는 취지로 제도가 설계 됐지만, 예산이 없어 중단됐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미 중단된 사업에 노동계가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호자 없는 병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간병인 등이 충원돼야 한다.
 
2007년 6월부터 1년간 실시된 시범사업에는 단국대병원·건국대병원·전남대화순병원·한양대의료원 등 4개 병원이 참여했다. 시범사업은 4개 병원의 일부 병실을 샘플로 지정해 진행됐는데, 해당 병실은 간호관리 2등급 수준으로 간호사가 충원됐다.
간호사를 많이 채용할수록 건강보험에서 병원에 지급하는 간호관리료가 늘어난다. 환자 대비 간호사 비율이 가장 높은 1등급 병원은 삼성서울병원과 서울아산병원 등 두 곳이고,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이 2등급이다. 보호자 없는 병원 시범사업 병실도 2등급 수준으로 간호사가 배치됐다.

그러나 문제는 돈. 참여정부 말기에 추진된 보호자 없는 병원 사업은 예산확보에 실패한다. 당초 ‘간호사에 의한 간호서비스’를 표방했던 보호자 없는 병원 사업은 간병기관에서 간병인을 공급받는 사업으로 전환됐다. 간병인 인건비는 노동부의 ‘사회적 일자리 사업’ 예산에서 일부를 지원받고, 환자들에게 간병료 일부를 받아 해결했다.

재조명 받는 ‘보호자 없는 병원’

1년간 진행된 시범사업에 대한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일자리 창출 △병원인력 노동조건 개선 △병원 이미지 제고 △환자 부담 감소 등의 효과가 나타났다. 특히 환자들의 만족도가 높았다. 개인 간병인을 고용할 때 하루 6만~8만원을 지불해야 하지만, 시범사업 병실의 환자들은 하루 1만5천원 정도만 부담하면 됐다.

이 때문에 시범사업에 참여했던 4개 병원 가운데 3곳은 지금도 보호자 없는 병실을 운영하고 있다. 한 번 업무협약을 맺으면 노동부의 사회적 일자리 예산을 3년동안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큰 부담 없이 사업을 계속 할 수 있다. 한양대의료원의 경우 간병인 한 달 급여 113만원 가운데 83만7천원을 노동부로부터 지원받는다. 하지만 노동부 지원이 끝나면 이 사업을 중단하거나 간병비를 인상해야 한다.

뇌종양으로 한양대의료원에 입원 중인 고옥희(54)씨는 “일하는 남편은 시간이 없어 나를 돌봐줄 수 없다”며 “특히 여성환자에게 요긴한 간병인 없는 병원이 계속 운영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산재병원에서도 지난해부터 비슷한 사업을 시작했다. 산재의료원 산하 인천중앙병원이 산재노동자들에게 시범사업으로 실시하고 있는 ‘보호자 없는 병동’ 사업이다. 산재의료원의 시범사업은 ‘산재환자 간병현물급여 서비스’ 제도의 도입과 함께 시작됐다. 기존에 산재보험에서 환자에게 지급되던 간병료가 간병인의 월급으로 지급된다. 간병인 월급은 실수령액 기준 96만3천원(하루 4만2천70원). 조병기 노동부 산재보험과장은 “간병 현물급여를 통해 산재보호자들이 간병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 일차적 목표”라고 말했다.
 

인천중앙병원은 본관 6층 4인실 병동 다섯 곳을 보호자 없는 병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30여명의 간병인이 3교대로 주 40시간 근무한다. 특이한 점은 각 병실마다 전담 간호사가 상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손월심 수간호사는 “병실마다 전담 간호사가 배치돼 있어 환자들의 컨디션을 꼼꼼하게 체크한다”고 말했다.

13년 전 뇌출혈로 쓰러진 김인동(64)씨는 욕창이 생겨 보호자 없는 병동으로 옮겨왔다. 간병인 이한순(57)씨와 동료는 2시간마다 김씨의 체위를 바꿔주고 있다. 요양보호사 1급 자격증을 갖고 있는 이씨는 “환자를 굴려서 체위를 바꾸면 오히려 상처가 커질 수 있다”며 “개인간병인 혼자서는 환자를 제대로 들 수가 없다”고 말했다.
보호자 없는 병동 환자들은 전담 간호사의 세심한 서비스도 제공받는다. 보호자 없는 병동을 전담하는 김성림 간호사는 전담 환자의 세발·목욕에서부터 물리치료까지 꼼꼼하게 체크한다. 김 간호사는 “환자 특성별로 집중 관리를 하니 환자의 회복속도도 빠르다”며 “일반병실에서는 환자들에게 이만큼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지원예산 없어 좌초 위기

하지만 보호자 없는 병원 사업의 운영이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노동부로부터 사회적 일자리 예산을 지원받아 운영되는 한양대의료원의 보호자 없는 병원은 곧 좌초 위기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 관계자는 “사회적 일자리 사업이 사회적기업의 자립을 전제로 설계된 것이기 때문에 3년의 업무협약이 끝나면 동일한 업체와는 협약을 맺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현재의 간병인 공급 업체가 아닌, 새로운 업체가 노동부에 지원을 요청하면 사업이 연장될 수 있을까. 이 역시 쉽지 않을 전망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현 정부의 복지프로그램이 ‘바우처제도’에 맞춰져 있고, 보호자 없는 병원 사업은 전략육성사업에서 제외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참여정부 당시 복지부의 예산 부족으로 ‘간호사에 의한 간호서비스’라는 제도 취지가 퇴색한 데 이어,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간병인 지원 사업마저 중단될 상황에 처했다.

산재보험료로 운영되는 인천중앙병원의 보호자 없는 병동 사업도 일부 보호자들의 반발에 부딪힌 상태다. 간병료를 생계비로 사용해 왔던 보호자들은 간병인 대신 돈으로 지급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계는 재원 마련 방안만 마련되면, 보호자 없는 병원 사업이 여성 일자리 창출의 블루오션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의 보건의료 일자리 창출을 위해 보호자 없는 병원 시범사업 확대와 추경예산 편성을 요구했다. 보호자 없는 병원 시범사업으로 4만3천822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3천857억원의 예산을 확보해 달라는 것이 핵심이다. 노조는 전면적인 제도 도입이 어렵다면 공공병원이자 지역거점병원인 지방의료원부터 보호자 없는 병원을 실시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여성 일자리의 블루오션

우리나라 지방의료원 34곳의 전체 다인병실 수는 약 1천53개. 한양대의료원의 사례처럼 병실마다 4명의 간병인이 투입된다고 가정하면, 총 4천212명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한양대의료원처럼 월 113만원의 임금을 지급한다고 했을 때 총 47억6천만원이 소요된다. 눈에 띄는 고용효과 없는 해외환자유치 사업을 위해 정부가 60여억원의 홍보예산을 책정한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장은 “보호자 없는 병원 사업에 정부 예산이 투입되면 지속가능한 일자리 창출과 의료서비스의 질 향상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보호자 없는 병원 사업은 이른바 ‘장롱면허’ 간호사를 병원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대안으로도 거론된다. 2007년 말 현재 면허를 가진 간호사 24만4천274명의 42.9%(10만4천907명), 간호조무사 38만2천722명의 72.7%(27만8천200명)가 유휴인력이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대 교수는 “보호자 없는 병원 사업이 일자리 창출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으로 평가된다”며 “이 사업에 동참하는 병원들이 간호 인력을 충원할 경우 건강보험에서 지급되는 간호관리료를 높여주는 등 인센티브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건강보험료를 소폭 인상하면 다수 국민의 간병비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제안도 나온다. 박형근 제주대 의대 교수는 “경제위기는 공공서비스 분야의 제대로 된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며 “개인 간병인에 쓸 돈의 일부를 건강보험으로 부담하면, 간호인력이나 간병인 확충에 긍정적 효과를 낼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현미 기자 ssal@
구은회 기자 press79@


 

<2009년 3월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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