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지방은행의 실적은 눈부셨다. 금융위기의 여파로 시중은행들의 순이익이 절반으로 뚝 떨어진 반면 일부 지방은행은 사상 최대의 실적을 거두기도 했다. 그렇지만 올해 경기침체의 여파는 지방은행을 뒤흔들 것으로 보인다.

경기침체가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 수도권보다는 산업구조가 취약한 지역경제를 먼저 강타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각 지방은행은 올해 화두를 위기극복·내실강화로 내걸고 바닥부터 다지고 있다. 지난해 부산·대구·경남·광주·전북·제주은행 등 6개 지방은행의 순이익은 9천억원으로 전년보다 1천억원(11.1%)이 늘었다. 2007년 15조원의 순이익을 거뒀던 시중은행들이 지난해 7조1천억원으로 순이익규모가 절반 가까이 떨어진 것과는 대조적이다. 특수은행 역시 같은 기간 순이익이 4조8천억원에서 1조7천억원으로 64.6%나 급감했다.<관련인터뷰 15면>

느리게 간 것이 오히려 위기를 피할 수 있는 길이었다. 시중은행이 키코와 프로젝트파이낸싱 등 파생상품에 투자하면서 상당한 손실을 냈지만 상대적으로 금융상품 투자에 더뎠던 지방은행들은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아울러 지방은행들은 충분한 담보설정과 저원가성 예금을 통한 예대마진 획득이라는 기본에 충실했기에 실적이 늘어날 수 있었다.

지방은행, 느리게 간 것이 ‘전화위복’

은행별로는 전북은행이 지난해 전년 대비 32.8% 늘어난 418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하면서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거뒀다.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도 12.88%를 기록했다. 광주은행도 지난해 1천34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뒀고, BIS비율도 12.1%로 시중은행에 뒤지지 않는 건전성 지표를 획득했다.

대구은행은 지난해 2천612억원의 순이익을 거둬 2007년(2천608억원)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며 선방했다. BIS비율도 13.5% 내외를 기록하면서 높은 건전성을 보였다. 부산은행도 지난해 2천75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 전년에 비해 43억원(1.6%) 늘었다. BIS비율은 13.19%로 전년에 비해 1.01% 상승해 은행 중 상위권을 기록했다. 정석민 금융노조 부산은행지부 위원장은 “지방은행들이 투자한 파생상품이 적었기에 지난해 수익률에서 선방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규모의 경제에서 밀리는 지방은행들이 예대마진이라는 기본 수익구조로 계속 살아남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실제 지역경제는 급속히 악화하고 있다. 지역경제와 밀착돼 있는 지방은행들도 지난해 성과에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제조업 생산 위축이 지역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제조업 생산은 전년동기대비 12.2%나 감소하면서 85년 통계가 작성된 이후 가장 큰 폭의 하락을 나타냈다. 조선을 제외한 자동차·반도체·컴퓨터·영상음향통신·철강·화학 등 대다수 주력 업종의 부진이 심화했다. 지역별로는 대구·경북권이 18.2%, 인천·경기권이 16.7% 감소하면서 경제침체의 직격탄을 맞았다.

올해 1월에도 국내외 수요의 급격한 위축으로 전 지역 부진이 심화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역경제의 주축인 건설업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지난해 4분기 중 건축착공면적이 전년동기대비 25.1%나 급감한 가운데 선행지표인 건축허가면적(-40.3%)과 건설수주액(-11.9%)도 감소세를 지속했다. 미분양아파트 적체가 계속되고 건설업계 구조조정에 따른 금융기관의 대출 축소 등으로 신규 건설자금 조달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공공부문 공사 조기발주 등이 최근 늘어나면서 부진을 다소 완화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산업구조 취약 연쇄도산 위기

건설 대기업의 부진은 곧바로 하청업체까지 이어져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하희섭 금융노조 광주은행지부 위원장은 “1차 구조조정에서 지역 건설업체 한 곳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관련 하청업체까지 위기국면을 맞고 있다”며 “이 업체들이 한꺼번에 무너질 경우 지방은행도 상당한 어려움에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은행들은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대출 확대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리스크 관리 필요성이 증대하면서 전체적인 대출 규모는 줄이고 있었다. 금융위기로 안전자산 선호 경향이 확대하면서 수신은 증가했다. 지난해 지방은행의 전체 예금은 3분기에 5조3천억원이 늘어난데 이어 4분기에도 11조1천억원 증가했다. 요구불예금이 증가세로 전환됐고 안전자산 선호 경향 등으로 저축성예금도 늘었다. 지방은행들의 리스크 관리 강화로 기업대출을 중심으로 한 여신은 지난해 3분기 12조2천억원에서 4분기 6조2천억원으로 증가 폭이 줄었다.
그렇지만 지방은행들은 실물경제 침체에 대비해 기본자산을 늘리는 한편 각종 중소기업 대출 상품을 출시하면서 지역경제 살리기에도 나서고 있다. 부산은행은 올해 1분기 2천억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해 BIS비율을 13.6%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올해 경영목표를 ‘안정과 내실 중심의 지역밀착 경영’으로 정한 부산은행은 지역중소기업에 대한 자금지원과 대출금 만기연장을 실천하면서 지역 살리기에도 나서겠다고 밝혔다.

광주은행은 지역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방안으로 ‘만기도래 대출금 기한 연장’과 ‘지방자치단체 및 지역산업단지별 금융지원협약 체결 강화’ 등을 마련, 지역 업체를 지원할 계획임을 밝혔다. 지난해에는 중소기업 사전채무재조정(프리워크아웃) 27개 업체, 패스트트랙 프로그램을 통해 63개 기업에 423억원을 지원하기도 했다. 광주은행은 올해 은행자본확충펀드에서 1천700억원가량을 지원받으면서 BIS비율도 14%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도 세웠다.

경남은행은 자금난을 겪고 있는 지역 전통시장의 소상공인들을 대상으로 225억원 규모의 자금지원에 나섰다. 또 지역중소기업을 위한 ‘중소기업 신용보증 우대대출’ 시행을 통해 총 2천억원의 자금을 지원할 예정이다. 대구은행은 올해 1월 4천억원 규모의 하이브리드 채권을 발행하면서 자본확충에 나섰다. 대구지역 산업 중심지인 성서공단의 가동률이 최근 60%까지 떨어지면서 기업사정이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부도율이 올라가고 있고 대출연체도 늘고 있는 상황이다.

지역 살리기·리스크 관리 ‘이중고’

김기만 대구은행지부 위원장은 “부도업체가 늘어나면서 은행에 부담을 주고 있고 선제적 위기관리 차원에서 대손충당금을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현재까지는 견딜 만하지만 경기침체가 지금보다 심각해질 경우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방은행노조 위원장들은 지역경제 활성화가 지방은행이 자라나는 기반이 될 것이라는데 이견을 달지 않았다.

산업과 자금의 수도권 집중화를 막고 지역도 자금(투자)이 돌면서 경제(산업)가 성장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방은행노조 위원장들은 “그 핵심에 지역재투자법이 있다”고 말한다. 지역재투자법은 금융의 수익성 논리가 가장 앞섰던 미국에서 탄생한 법이다. 낙후지역의 금융배제가 해당 지역뿐 아니라 국민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는 지난 77년 법안을 만든 이후 95년법을 개정하면서 금융기관이 수신활동을 벌이는 지역에 대한 개발참여를 의무화했다. ‘예금주가 있는 곳에 돈이 흐르게 한다’는 취지다.

지역재투자법 제정해야

우리나라에서도 외환위기 이후 금융기관에 예탁된 자금이 해당 지역 내에서 돌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제기됐다. 지방은행 육성도 그 일환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형진 전북은행지부 위원장은 “지역에서 벌어들인 자금들이 지역에서 돌지 않는 것이 지역경제를 악화시키는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지역에 대기업이 있어도 수익은 모두 서울에 있는 본사로 보내지기 일쑤다. 주로 시중은행과 거래하면서 지역 자금 유통(투자)에는 별다른 보탬이 되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반대로 지역에 있는 시중은행(지점)들은 높은 금리를 제시하면서 지역 자금을 끌어 모으지만, 결국 수도권 중심의 대기업들과 거래를 하면서 지역 투자는 외면한다. 규모의 경제에서 밀리는 지방은행들은 경쟁 자체가 어려운 구조다. 두 위원장은 “지역에서 만들어진 자금은 당연히 지역에 투자돼야 한다”며 지역재투자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기만 대구은행지부 위원장도 “지역기업과 서민금융에 밀착해 있는 지방은행이 지역자금을 유통시키는 매개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며 “지역재투자법을 만들어 지역 내에서 자금이 순화할 수 있도록 촉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지역과 지방은행의 특성을 고려해 BIS비율을 차등하는 등 시중은행과는 다른 규제(혹은 지원)를 적용하면서 운신할 수 있는 폭을 늘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2009년 3월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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