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전이되면서 제조업·건설업의 구조조정이 심화되고 있다.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구조조정은 규모가 적은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외환위기 시절 재벌그룹들의 ‘대폭발’이 국가경제를 흔들어 놓은 것과는 달라진 현상이다.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 때문이다. 대기업은 부채율을 낮춰 자금력에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반면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처했다.



LG경제연구원은 지난해 9월 기준으로 우리나라 상장기업의 부실 현황을 평가한 자료에서 1천576개 상장사 가운데 628곳을 부실기업으로 분류됐다. 가장 직접적으로 구조조정에 노출된 곳이 건설업종이다. 건설업종은 ‘살릴’ 기업과 ‘죽일’ 기업에 대한 옥석가리기가 가장 먼저 시작됐다.
채권은행들은 지난 1월20일 시공능력평가 100위 내 건설사 92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신용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신용평가단은 대주건설을 퇴출대상(D등급)으로, 경남기업·풍림산업·우림건설·삼호·월드건설·동문건설·이수건설·대동종합건설·롯데기공·삼능건설·신일건업 등 11개사를 워크아웃 대상(C등급)으로 확정·발표했다.

살생부 나도는 건설업

대동종합건설은 워크아웃 대상인 C등급을 받았지만, 채권은행의 자금지원 거부로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채권은행들은 1차 신용위험 평가 결과, 워크아웃 대상에 오른 건설사에 대해 지난달 9일 실사에 들어갔다. 실사를 마치면 신규 자금지원·대출금 출자전환 등 정상화 방안을 이달 중으로 마련하게 된다. C등급 기업은 워크아웃이 개시되면 대출원리금 상환유예·이자율 조정·신규자금 투입·대출금 출자전환 등 혜택이 뒤따른다. C등급을 받은 업체들은 정상화 방안이 나오기도 전에 조직을 축소하고 인력 구조조정·임금 삭감에 들어갔다.

경남기업은 임원(40여명)의 25%를 감원하고, 팀장과 현장소장급 직원 110여명에게 일괄적으로 사직서를 요구해 20여명의 사표를 수리했다. 우림건설도 9개 본부를 7개 본부로 통합하고 사옥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동문건설은 직원의 30%씩을 4개월씩 무급 휴가를 보내고 있다. B등급을 받은 건설사들도 자구책을 내놓고 있다. 동일하이빌은 임원 20%·직원 10% 급여 반납과 본사 지방 이전·보유택지 매각·임원용 승용차 처분 등 자구책을 내왔다.
 
이달 중으로 희망퇴직을 받고 순환휴직제도를 병행하겠다는 방침이다. 대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대우건설·GS건설·삼성물산 등은 이미 지난해 말 임원 10%가량을 감원한 데 이어 희망퇴직을 실시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현재 앞다퉈 구조조정에 나서는 이유는 외환위기의 학습효과 때문이다.
외환위기 시기와는 달리 대규모로 인력을 감축하는 건설사는 눈에 띄지 않는다. 개별기업의 인건비 절감 차원에서 소규모의 인력감축이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안중언 건설사무노조 정책국장은 “인력감축이 겉으로는 희망퇴직이라고 하지만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권고사직인 경우가 많다”며 “처음부터 회사측이 해고 리스트를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노조가 없는 사업장은 인력감축 자체가 외부로 잘 알려지지 않는다. 무노조기업이었던 한일건설은 직원 500여명 가운데 40여명에게 대기발령을 내린 뒤 10여명을 정리해고했다. 또 비정규직인 현장사무계약 노동자들은 최근 건설경기가 악화되면서 기간종료와 함께 계약이 해지되고 있다. 문제는 건설업종의 구조조정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시공능력평가 순위 101~300위권의 건설사 94곳에 대한 신용위험 평가가 이달 말에 실시된다. 2차 신용위험 평가 대상 건설사들은 대부분 비상장·중소기업이다.

이달 말에 2차 구조조정 업체 선정

중소업체들은 자금난에 경기악화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상당수 업체의 구조조정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신용위험 평가를 통과한 기업이라고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ㅎ증권사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으로 상위 100대 건설사 중에 신용등급이 BB+ 이하로 투기등급인 업체가 34곳이나 됐다. 투자등급 중에서도 한계선인 BBB- 업체가 14곳이었다. 한 차례 시험을 통과한 건설사들이라고해도 ‘재시험’이 불가피해 보인다.

전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수출기반마저 무너져 버린 제조업은 구조조정의 순번을 기다리고 있다. 특히 내수와 수출의 동반판매부진으로 감산 폭이 확대되고 있는 자동차업종은 원청에서 1차 납품업체, 2차 납품업체로 이어지면서 구조조정의 강도가 더해지고 있다. 인력감원은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금속노조가 소속사업장을 대상으로 실시해 1일 발표한 자체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75곳 가운데 57곳이 감산 또는 휴업을 실시하고 있다. 금속노조에는 완성차 4사를 포함해 부품사들이 가입해 있다. ‘완성차 감산→부품사 휴·폐업’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업계 1·2위 현대차와 기아차는 지난해 12월부터 각 공장별 조업단축으로 생산물량을 조절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금융위기가 동남아와 브라질 등 신흥시장으로 확산됨에 따라 추가 감산이 진행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달 26일부터 수출용 투싼을 생산하는 울산 5공장의 생산을 중단했다. 5공장의 가동중단은 오는 6일까지 계속된다. 그랜저와 쏘나타를 하루 평균 900대 생산하고 있는 아산공장은 3일부터 6일까지 4일 동안 가동을 중단한다. 스포티지를 생산하는 기아차 광주 2공장도 지난달 25일부터 27일까지 조업을 중단했다.

쌍용차 앞길 ‘설상가상’

GM대우·르노삼성·쌍용 등 해외로 매각된 3사는 현대·기아차보다 더 큰 시련을 겪고 있다. 자체 경영능력이 없어 모회사의 위기가 그대로 전이되고 있다. 자체 판매망이 없는 GM대우차는 미국 GM의 상황에 따라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GM대우차가 잠재된 뇌관이라면 쌍용차는 도화선에 불이 붙은 상황이다. 법원은 지난달 6일 쌍용차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개시를 결정했다. 쌍용차가 당장의 파산위기는 모면했지만, 앞길이 만만치 않다. 쌍용차가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직전에 보유한 현금은 74억원으로 알려졌다. 공장가동 자체가 쉽지 않은 자금이다. 납품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부품사들의 경영난도 심화되고 있다.

쌍용차 1차 협력업체인 대구 달서구 소재의 대신산업은 지난달 12일 최종부도 처리됐다. 대신산업은 직원 40여명이 쌍용차에 플라스틱 차량 내장재를 납품하는 업체였다. 대신산업의 부도는 유동성위기를 겪고 있는 납품업체의 줄도산을 예고하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쌍용차 1차 납품업체는 213곳에 달한다. 업계 관계자는 “긴급지원이 없으면 유동성 문제를 겪고 있는 6~7개 업체가 조만간 추가로 부도를 맞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자동차 불황, 철강·타이어로 확산

전후방 연관효과가 큰 자동차산업의 불황은 재료를 공급하는 철강산업과 부품산업의 경기악화를 촉발시키고 있다. 완성차업계의 감산·휴업으로 인해 부품사 대부분이 생산물량을 줄이고 있다. 타이어업계와 주물업계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광주의 금호타이어는 재고량이 늘어나자 지난달 21일부터 5일 동안 휴업을 실시했다.

철강업종은 수요처인 자동차업종과 건설업종의 불황여파로 흔들리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 1월에 37만톤의 생산량을 감산한 데 이어 지난달에도 20만톤을 감산했다. 현대제철도 1월에 20만톤을 감산한 데 이어 지난달에 10만톤을 감산했다. 철강업계의 감산은 쌓여 있는 재고가 어느 정도 소진되는 올해 상반기까지 지속될 전망이다. 특히 국내 철강업계는 2004년부터 앞다퉈 미니빌·고로건설에 나섰다. 설비들이 완공되는 올해부터 2011년 사이에는 공급과잉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위기대처를 위해 철강업계가 앞다퉈 내놓고 있는 ‘비상경영선언’이 대기업 노동자에게는 임금·노동조건 악화로, 사내하청과 연관 중소기업 노동자에게는 정리해고 등 고용불안으로 연결될 것이라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중소조선사도 줄도산 우려

수출금액 면에서 여전히 호황세를 이어가고 있는 조선산업은 중소형 조선사를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파급되고 있다. 경기불황의 여파는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취약한 중소형 조선업체의 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대형조선업체는 경기호황기에 축적한 수조원대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지만, 은행권 대출에 의존하고 있는 중소업체는 버틸 수 있는 체력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채권은행들은 지난 1월20일 9개 조선사에 대한 신용위험 평가를 실시해 녹봉조선·대한조선·진세조선 등에 대해 워크아웃을 결정하고, C&중공업은 퇴출을 결정했다. 퇴출된 C&중공업은 지난해 말 수주잔량 기준으로 세계 56위, 워크아웃이 결정된 진세조선과 대한조선은 각각 65위와 38위였다.

중소조선사들은 2~3년 전부터 ‘묻지마 투자’에 나섰던 곳이다. 중소조선소의 가동중단과 함께 퇴출·인수합병이 예상된다. 80년대 말의 조선산업 합리화처럼 조선업계 전반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선산업 전반에 자리 잡고 있는 하도급업체 소속 노동자(비정규직)를 대상으로 한 인력 구조조정도 불가피해 보인다. 조선산업에는 현재 기능직과 기술직을 합해 13만여명이 종사하고 있다. 기능직 11만여명 가운데 직영업체 소속(정규직)이 3만7천여명, 하도급업체 소속이 7만3천여명이다. 비정규직 비중은 규모가 작을수록 높다. 비용절감 차원의 몸집 줄이기는 비정규직에 집중될 공산이 크다.

은행권은 비정규직 먼저 잘라내

제조업과 달리 은행을 중심으로 한 금융기관 노동자들은 아직까지는 인위적 구조조정의 위협에 직접 노출돼 있지 않다. 시중·지방은행들은 금융위기 이전인 지난해 상반기까지는 상당한 수익을 거뒀다. 또 지난해 말부터 희망퇴직을 통한 선제적 인원감축을 했기 때문이다. 국민은행 340명, 하나은행 330명, 씨티은행 300여명 등 1천900명가량이 희망퇴직을 통해 은행을 떠났다.

올해 들어 분위기는 더욱 악화하고 있다. 기업 구조조정이 가속화하면서 부실채권이 늘어날 전망이고, 동유럽발 제2의 금융위기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최근에는 가계 부채마저 빨간불이 켜졌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올해 들어 내실경영을 강조하면서 통폐합을 통해 점포 수 줄이기에 나섰다. 신한은행이 105개, KB국민은행이 52개, 하나은행이 26개 등 시중은행 점포 숫자가 한 달여 만에 185개가 줄었다. 이같은 흐름이 인력 구조조정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은행권 노동자들 사이에 팽배해지고 있다.

반면 금융공기업의 경우 경제위기로 역할이 더욱 강화되면서 오히려 업무가 늘어나고 있다. 국책은행인 산업·기업·수출입은행은 물론 보증기관인 신용·기술보증기금도 경제 살리기에 앞장서면서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판 배드뱅크로 불리는 자산관리공사(캠코)도 마찬가지다.

증권사, 자통법 시행에 전전긍긍

2~3년 전 호황을 누렸던 증권사들은 자통법을 앞두고 점포와 직원을 늘리는 등 공격적인 경영을 펼쳤다. 하지만 실물경기 침체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 속에 증권사들의 거품도 가라앉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증권노동자들이 구조조정의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는 우려다.

지난해 하나대투증권의 희망퇴직 신청을 시작으로 우리투자증권의 조직개편 등 은행과 증권사를 겸업하고 있는 곳에서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하나대투증권은 지난해 대규모 희망퇴직에 이어 올해 상반기 은행과 증권의 IT부문을 별도 법인으로 분리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우리투자증권은 ‘영업실적 부진자’를 한 곳으로 집중할 별도의 부서를 만들어 노조의 반발을 사고 있다.

미래에셋·삼성·대우·우리·현대·대신증권 등 주요 10대 증권사들이 지난해 11월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증권사의 지난해 상반기(4~9월) 전체 영업이익은 5천72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조6천890억원)에 비해 66.11% 감소했다.
증권가 구조조정은 자통법 시행에 따른 인수합병 가능성과 증권업 불황이 겹치면서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2009년 3월2일>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